오늘은 침대맡에 놓아둔 생일 선물로 받은 꽃을 버렸다. 벌써 2주나 지났었나-. 잠시 신경을 못 썼을 뿐인데, 꽃이 이미 시들고, 곰팡이까지 피고 있었다. 참 예뻤던 꽃인데 속상하다. '잘 말렸으면 간직할 수 있었을까?'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신이 시들어져 버린 꽃을 안타까이 여겨 이 세상 모든 꽃을 떨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기로 한다면?
우리가 매해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이전 해의 꽃이 시들어지고, 자연으로 돌아가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땅에 떨어진 꽃이 썩고, 거름이 되어 나무에 영양을 공급해 주면 나무는 그다음 해에 이전 해의 꽃이 내어준 자리에 새로운 꽃을 찬란히 피운다.
한때는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빛이 바랜 옛사람들과의 추억도 비슷하지 않을까. 20대 후반, 방 청소를 하다 책상의 첫 서랍에서 잘 말린 장미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 그 꽃에는 카카오 98% 다크 초콜릿과 같은 달콤 쌉싸름한 첫사랑과의 기억이 담겨 있었다.
사랑이 뭔지도 잘 몰랐던 열여덟, 나는 첫사랑에게 분홍 장미꽃 한 다발을 선물했었다. 그러자 나의 첫사랑은 그 꽃다발에서 꽃 한 송이를 뽑아 내게 다시 선물해 주었다. 지금 다시 돌이켜 보아도 달달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의 첫사랑은 2%의 달달함 끝에 98%의 쌉싸름함을 남기고 떠났다.
이후로 나는 처음 맛본 초콜릿을 쉬이 잊지 못하는 아이처럼 나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한참을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7년을 책상 서랍에 붙잡아 두고 있던 그와의 기억. 그 기억이 담긴 바삭 마른 장미꽃 한 송이를 버릴 때, 참 아쉽고도 후련했다.
이제는 지나간 사람과 그 사람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떠나 보내는 것이 예전보다는 수월해졌다. 아니, 수월해졌다기보다는 떠나보내기로 마음을 다잡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 예전보다 빨라졌다고 해야 하나.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 좀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지나간 사람의 자리에는 새로운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 새로운 사람을 위한 자리를 비워 놓아야지만 그 사람과 새로운 추억을 만들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안다. 이전 해의 꽃이 시들어지면, 그 자리에 새로운 꽃이 피듯 말이다.
과거의 아름다움은 기억하되, 그것을 마냥 꼭 붙들고 있지 말고 놓아주자. 그래야 다시 찬란한 꽃을 맞이할 수 있다. 떠나보내는 추억을 너무 아쉬워 말자. 그 추억이 있기에 새로이 나를 찾아오는 꽃들을 더 소중히 잘 보살필 수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