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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seohyeon Aug 20. 2023

돌아보지 말지어다

[다짐일기]


 다짐에는 두 종류의 다짐이 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선언하게 되는 공개적인 다짐과 오직 일기장에만 쓰게 되는 비공개적인 다짐. 주로 전자는 "오늘부터 금연할 거야!"와 같은 행동을 바꾸겠다는 마음이 앞서고, 후자는 "이젠 그 사람을 놓아줘야지." 하는 식의 마음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다짐 중독자인 만큼, 공개적인 다짐만큼 비공개적인 다짐도 많이 할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진 않다. 전혀 안 한다고 할 순 없지만, 오늘부터 일찍 일어나겠다, 쇼핑을 금하겠다, 식단을 챙기겠다, 기억조차 못할 만큼 많은 다짐을 내뱉는 것과 달리(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도면 다짐이 아니라 습관일 뿐인 것 같긴 한데), 내적인 다짐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지난 반년 간은 똑같은 다짐만 끊임없이 쓰곤 했다. 하루에 몇 번씩 똑같이 되뇌고 다짐을 해도, 그 다짐을 잊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일이 있는 법이다. 


 잠깐 옆길로 새어보면, 자고로 에세이의 매력은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타인의 일상을 담담히 말하는 것에서 울림이 온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소설을 쓰기 때문인지 두려움이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역시 나는 아직은 완전히 내 삶을 내보이는 것이 쉽지가 않다(쓰다보면 언젠간 되겠지). 고로,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를 괴롭힌 다짐에 얽힌 이야기는 생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안타깝지만, 자의인지 타의인지 그저 상황 때문인지 얼마 전 그 상황은 비로소 끝이 났고, 그 여파로 또 다른 다짐을 일기장에 쓰기 시작했다. 


 뒤돌아 보지 말자. 


 돌아보기 때문에 애써 얻게 된 소중한 것을 잃고, 물바다가 되고, 돌이 되는 것은, 그리스 신화, 설화, 영화, 수많은 이야기에서 등장한 말이다. 절대 뒤돌아선 안 된다는 말에도 기어코 뒤를 돌아보는 게 인간의 본성인 건지, 본성을 들먹일 만큼 위험한 행위인지 굳이 정도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견디기 힘든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미래를 바꾸고 싶은 욕심이지 않을까. 


 나 역시 지난 몇 개월 동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떤 순간에 바로 잡을 수 있었던 건지, 내게 또 다른 선택지가 있지 않았을까, 되짚고 또 되짚어봤다. 그럴 때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저 내가 잡았어야 할 순간만이 안타까울 뿐이다. 돌아본다는 건,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구하기 위해 지옥으로 내려갔던 것처럼, 스스로를 지옥으로 몰아넣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뒤돌아봤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야 비로소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 걸까.

 이제야 나는 돌아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다짐은 필요하다. 언제 또다시 뒤돌아보고 싶어 질지 모르니까. 그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었다고 화를 내고 변명하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어리석고, 바보 같고, 후회스럽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가 그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나는 그 시간을 존중까진 할 수 없더라도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놓치고 온 것, 잡아보려고도 했지만 잡히지 않았던 것, 놓고 싶었지만 놓지 못했던 것을 지난 시간 속에 두기로 했다. 어쨌든 그 상황 속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한 거라고. 어떻게든 상황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한 발자국 나아가려 해 보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저 내 것이 아니었을 뿐이라고. 


 그러니 뒤돌아 보지 말자. 

 부디 이 다짐만은 반복도 하지 말자. 지나간 것에서 의미는 찾을 수 있겠지만, 인생은 다가올 것에서 찾아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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