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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seohyeon Aug 31. 2023

신경 좀 꺼줄래

[내가 사랑한 소설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있듯이, 읽기 전부터 사랑에 빠지지라 예감에 빠지는 소설이 있다.

 나는 틀림없이 이 이야기를 좋아할 거라고.

 물론 그때마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첫인상과 전혀 다른 사람이 있듯이 소설 역시 예상과 다른 전개를 보게 될 때에도 종종 있으니까. 실망하긴 하지만 딱히 좌절하진 않는다. 책도 사람처럼 내게 꼭 맞는 것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은 법이다. 그저 이전의 역사를 통해 실패 확률을 줄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흥분하면 몸이 불타오르는 아이들 어쩌다 이 아이들을 돌보게 된 한 여자.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는 세 사람의 다크 하게 웃기고 무시무시하게 아름다운 이야기' 


 책의 짧은 소개글을 읽자마자 케빈 윌슨의 '신경 좀 꺼줄래 Nothing to see Here'을 주문했다.

 상처받은 아이와 삶의 기대가 없는 어른의 조합은 내가 늘 열광하는 소재다. 가끔 궁금하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친구들과 함께 자라난 내가 왜 그런 소재만 보면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걸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내가 과연 어른인 걸까 품고 있는 의문 때문일까. 몸과 달리 마음은 자라지 않는 기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 때때로 태연함을 연기해야만 하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까. 가끔은 멋대로 화를 내고 엉엉 울어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책을 펼쳐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를 대신해 제 멋대로 날뛰어줄 어른이 필요해서.


 신경 좀 꺼줄래의 주인공 릴리언은 스물여덟의 여자다.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릴리언은 십 대 시절의 상처와 온갖 불만을 품고 살아가면서도,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릴리언은 미래를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참을 만하게 만드느라 애쓰면서 살았다. 그게 내 삶이라는 말과 함께.

 

 "너는 똥을 쥐고 나왔지, 그건 알아."... "똥을 가졌는데 넌 그것보다 더 나은 걸 원하잖아. 하지만 똥을 금으로 만들려면, 그러려면 정말 정말 힘들 거야. 잘 해내길 빈다."


 엄마의 냉정한 조언과 달리 릴리언은 똥을 금으로 바꾸지 못한 채(심지어 엄마는 똥을 금으로 바꿀수 없도록 만든 장애물을 자처한다), 그 실패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십 대 때 만난 친구(릴리언의 삶에 첫 실패이자 여태껏 극복하지 못한 상처를 안긴) 매디슨이 도움을 요청한다. 매디슨, 지금은 미시즈 로버츠로 불리는 친구는 릴리언과 달리 부잣집에서 태어나 탄탄대로의 삶을 살다가 정치인 로버츠와 결혼해 아이를 두었다. 로버츠에겐 전처와의 사이에 쌍둥이가 있고, 매디슨은 릴리언이 당분간 그 아이들을 케어해 주길 바란다. 때때로 몸에 불이 나는 그 아이들을. 몸에 불이 나서 옷을 다 태워버리면서도, 자신들의 머리카락조차 타지 않는 그 아이들을.


 이상한 일이지만, 이 악마의 자식 같은 애들이 내 눈앞에서 활활 타올랐는데도 흉하게 깎은 머리는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게 정말 놀라운 마법 같았다. 어쨌든 사람 마음이 그런 모양이었다. 엄청난 것은 너무 말이 안 되다 보니 정작 사소한 기적이 더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릴리언은 매디슨의 부탁을 받아들여 24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엿 같은 세상에서 외면받는 기분이 어떤 건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아빠, 엄마, 그리고 새엄마인 릴리언, 쌍둥이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쌍둥이들을 포기하고 삶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눈앞에서 치워 버리려는 것과 달리 릴리언은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하고, 그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온갖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불이 나는 이유를 분석하고, 명상과 요가를 해 아이들의 분노를 다스리려 하고, 그럼에도 불이 나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소방젤과 소방옷을 입히는 방안까지 시도한다. 몸에 불이 나는 판타지적인 설정이 들어가지만, 실제 아이들을 대하는 삶 역시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배워야 하는 존재다. 아이들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보기도 전에,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본다. 위험하고 사라져야 할 존재가 되어 버리는 건, 타고난 본성뿐만 아니라 그 본성을 대하는 타인의 자세 때문이기도 하다. 본성이 사라질 수 없는 성질이라면, 그 본성을 조절하는 건 노력이다. 성장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이다. 결코 홀로 해낼 수 없는 것. 쌍둥이와 함께 지내는 동안 릴리언 역시 어른이 되어 간다. 아이들을 위해서 중요한 것,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이 애들은 제멋대로였다. 나처럼. 이 애들은 더 나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나처럼. 나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심을 굳게 다졌다. 망치지 않을 것이다. 씨발, 그건 절대 안 된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태우며 살아왔을까. 기분이 상할 때마다 화가 날 때마다 무엇을 망쳐왔을까. 그렇게 내 곁에서 떠나보낸 일이, 관계가 몇이나 될까. 불이 날 때마다 사라진 아이들의 옷처럼, 수많은 것들이 내 곁을 사라졌을 것이다. 그때마다 홀딱 벗은 것처럼 좌절하고 우울했지만 어쨌든 다시 옷을 입고 추스르며 살아왔다. 성공적이었는지 아닌 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시도를 했다는 거겠지.  뒤돌아 보지 말자고 수없이 되뇌면서도,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재생할 때가 있다. 하지만 사라진 것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어떤 마음이건 얼마나 노력했건. 망치지 않기 위해선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그때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이다.  

 

 나는 아이들을 잡으려 하지도, 불을 끄려 하지도 않았다. 그냥 타게 내버려 두었다. 완벽한 날에, 포치에 앉아서 아이들이 타는 걸 봤다. 왜냐하면 이게 끝나면, 불이 사라지면, 바로 아이들이 나에게 돌아오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완벽한 해결도 완벽한 결말도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완벽한 결말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으로 존재해야 하니까. 드라마 같은 해피엔딩은 없어도 괜찮다. 그저 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는 법이다. 가끔은 불에 타올라도 또다시 방법을 찾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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