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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근처엔 늘 불행과 행복이 있다

아주 작은 희망을 통해 감춰진 행복을 찾아라

어린 시절 우리 집은 형편이 좋지 못했다. 아버지는 건강이 악화돼 일을 할 수 없었고, 어머니는 화장품 방문 판매를 하며 아버지의 병원비와 우리 세 남매의 양육비를 책임져야 했다. 그리고 하나의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가정의 빈곤은 불화로 이어졌고, 얼마 안 가 부모님은 이혼하게 됐다. 


가정의 빈곤과 불화 그리고 부모님의 이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모두 불행한 기억뿐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때의 나는 웃음이 많고 작은 일에도 행복해하는 아이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나보다 더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 아이는 어떻게 항상 웃을 수 있었을까?


그건 아마 모든 게 나아질 거라는 자신만의 희망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학교에 갈 때나 집으로 올 때나 항상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곤 비행기가 지나가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다.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만든 작은 사진기 안에 하늘을 부유하는 모든 비행기를 담아냈다. 누가 말해줬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사진기로 비행기 100대를 찍으면 소원이 이뤄진대”라는 말을 듣고 철석같이 믿었다. 아이는 열심히 하늘을 뒤적인 끝에 그 작은 손안에 100대의 비행기를 담아냈다. 그리고 두 손을 꼭 쥔 채 소원을 빌었다.


“부모님이 다시 같이 살게 해주세요.”


아이가 하늘을 보며 매일같이 빌었던 소원은 끝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찾아다녔던 것은 소원을 이뤄줄 비행기가 아니라 자신을 지탱해 줄 하나의 희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거다. 희망이라는 것이 힘든 상황에서도 행복을 잃지 않게 해준다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는 모르는 게 많았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작은 일에도 즐거워하고 행복해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희망을 잃은 채 불행에 익숙해져 있다. 너무도 상반적인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나는 삶을 살아갈수록 불행에 집중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접하게 되는 기준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회에는 행복과 불행에 대한 수많은 기준이 존재하고, 그 기준 속에서 불행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고 행복은 너무도 먼 곳에 있다. 그렇기에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린 채 늘 가까이에 있는 불행에 집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행복 또한 불행만큼 우리의 삶 가까이에 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행복했던 이유는, 어떠한 능력이나 지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아주 작은 희망이 있었기에, 불행한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웃을 수 있었다.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작은 희망. 어쩌면 그 희망이 우리의 삶 속에 감춰진 행복을 찾아내는 열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행복을 되찾기 위해, 헛된 꿈일지라도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자신만의 희망을 쫓아라. 


마치 자신의 두 손을 사진기라 믿으며 자신만의 희망과 행복을 담아냈던 아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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