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이 결혼 3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이제 따로 산 날보다 함께 산 날이 더 오래 되었습니다. 무릇 30주년 정도씩이나 되었으면 모히또 가서 몰디브 정도는 마셔줘야 하겠....은 아니고, 조촐하게 며칠 연차를 내서 가까운 데라도 다녀오자고 의논하였으나 의대증원으로 촉발된 학교 안팎 상황이 급박하여 월욜일날 하루 연차가 되었다가 여의치 않아서 월요일 오전 반차를 쓰는 것으로 바꾸었고 결국은 그마저 취소하고 정상출근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주말에는 움직여 보기로 해서 어디를 갈까 하다가 대구와 대전에서 지내고 있는 자녀들을 보러 가는 것으로 의논이 되었습니다. 대구에 있는 아들집에 들러서 하루를 지내고 일요일날 실습 때문에 대전의 원룸에서 머물고 있는 딸한테로 가는 일정입니다. 원래는 주일날 교회에 가야 하지만, 담임목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아주 오랜만에 일요일을 교회가 아닌 곳에서 보내는 일정이기도 합니다.
가족이 모이면 함께 밥 먹고 자녀들 필요한 거 쇼핑하고 하는 일상적인 일과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결혼 30주년이니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없을까 궁리하다가 요즘 유행이라는 ‘인생네컷’을 찍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온 가족(이래봤자 아들 딸 합쳐서 네 명입니다만^^)이 함께 그 유명한 성심당을 들러서 빵도 사고, 저녁 시간이 되어서 대전의 특색 음식이라는 두부 두루치기를 ‘대선칼국수’ 식당에서 칼국수와 수육을 곁들여서 배부르게 먹고 난 후 마침내 식당에서 얼마 멀지 않은 인생네컷 사진점에 입장하였습니다.
파티 가발이며 선글라스, MBTI 명찰까지 아기자기하고 재미난 소품들이 가득입니다. 무얼 장착하고 사진을 찍으면 인생샷을 건질까 각자 고민 삼매경을 거친 후 나는 소머리 모자와 선글라스, 가족들은 각자 고른 선글라스를 끼고 촬영실에 들어갑니다. 포즈는 어찌할지, 위치는 어떻게 잡을지 다시 한 번 의논한 후 본격적으로 촬영에 돌입하였습니다. 일단 촬영을 시작하면 10초 간격으로 자세를 바꾸어 잡아야 하므로 먼가 정신 없고 재미나게 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자녀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첫 번째 인생네컷 사진을 완성하고 나니, 이것은 결혼기념일 활동이므로 부부끼리만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자녀들의 강력한 권유로 또 한 번 사진을 찍었습니다. 인생 처음으로 해 보느라 어리버리하고 있는 부모님이 답답했는지 촬영 시작부터 포즈며 위치며 자녀들이 감독이 되어서 진행해 줍니다. 그렇게 정신없고 분주하게 사진을 찍고 나니 역시 또 한 장의 인생네컷 사진이 바로 인화되어서 나왔습니다.
호오, 먼가 생각보다 멋지고 화목하게 나온 사진입니다. 사진관에서 각 잡고 찍는 가족사진보다 오히려 더 정감 있고 예쁘게 나온 것 같습니다. 사진에 붙어 있는 QR 코드를 촬영하니 사진 원본 파일과 촬영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 파일도 다운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모두 장성하여 직장으로 학교로 떠나고 보니 함께 모일 시간도 함께 하는 활동도 많지 않게 되었는데, 참 오랜만에 함께 모여서 밥도 먹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지금부터 또 시간이 많이 지나면 이 시간들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겠지요. 각자의 사정대로 힘들고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만 이렇게 같이 할 수 있는 일상의 시간들이 있어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꽤 긴 거리를 운전하고 다니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그렇게 짧지만 소중했던 1박 2일의 30주년 결혼기념일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