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먼저 ‘쿵 쿵’ 뛰어야 시동이 걸린다.
가슴이 먼저 뛰지 않는데 달리라고 하는 건
기름도 넣지 않고 차가 달리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아이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 시동을 걸까?
작은 것부터 스스로 선택하고 마음대로
해볼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자율성'이야말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든 인간이 원하는 행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아닐까?
"엄마! 프라모델 주문한 거 언제 도착해요?"
택배차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언제 들어오나.. 몇 시간째 들락거리며 창문밖만 내다보는 중이다. 우리 집 꼬맹이는 그랬다. 뭐 하나 가 꽂히면 그때부터 정말 피곤하게 묻고 또 묻고, 해결이 될 때까지 물었다. 무언가 안된다고 ‘노’를 할라치면 "왜 안 돼요? 이렇게 하면 안 돼요? 나중에도 안 돼요?" 납득이 될 때까지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줘야 하는 아이였다. 호기심도 많아 본인이 정말 하고 싶어 하는 건 누가 뭐래도 끝까지 물고 늘어졌지만,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은 ‘ 네~ ’ 대답만 하고 대충대충 넘어가기 일쑤였다.
어릴 적이야 하고 싶은 건 노는 것이고 하기 싫은 건 공부하고 숙제하는 일이었을 테니, 보통 어릴 적 잡아야 한다는 공부습관은 하나도 못 잡아준 체 키웠다. 글씨는 개발새발 알아보기 힘들었고 백날 얘기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쓰기 귀찮은데 자꾸 쓰라니 지렁이처럼 쓰윽 휘갈겨버리고 노트 군데군데 적어놓기 일쑤였다. 수학도 마찬가지. 답만 나오면 됐지. 왜 식을 길게 잘 써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다.
어떤 아이들은 왜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도 선생님이 하라고 하니까 우선은 하고 보는 아이들도 많은데 우리 아들에겐 안 통했다. 무엇보다도 이 아이는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만 발동이 걸리는 아이였다. 본인이 직접 부딪히고 방황하고 세상을 빨리 경험해 보며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었다. 2년여의 사춘기시절동안 아이는 재미나고도 격하게 세상을 경험했다. 자신의 선택에 실패도 맛보고 더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후회도 해보면서 말이다.
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고등학생이 된 지금 아들은 180도 다른 사람이 됐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꼼꼼하게 필기를 하고 예쁘게 글씨를 쓴다. 모범상을 받을 만큼 반에서 제법 바른 아이가 되었다. 처음 이 아이의 달라진 노트를 봤을 때의 그 소름 돋는 황망함은.. 배신감까지 들정도였다.
'못하는 게 아니었구나! 안 하는 거였구나.'
머리가 띵~했다. 난 유난히 힘이 없는 필력을 보며 우리 아들 손가락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줄 알았다. 쓸데없는 걸 고민했던 나 자신이 무안했다. 방법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나하나 가르쳐주려 했던 나의 잔소리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수업시간 나눠주는 학습프린트만 모아서 잘 내도 받을 수 있다는 수행점수를 대부분 0점으로 받아내던 이 아이가 이제는 알아서 파일을 구입해 차곡차곡 과목별 스티커까지 붙여가며 정리를 한다. 코로나시국 교과서 한 번을 안 펴고 온라인 수업을 듣던 아이가 작은 포스트잇까지 붙여가며 색색깔 볼펜으로 꼼꼼하게 필기를 하며 수업을 듣는다. 우리 아들의 필기를 친구들이 빌려가기까지 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아이는 사춘기를 기점으로 정말 다시 태어났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이렇게 달라지게 한 이유가 뭘까?
'사춘기'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어른이 되는라 애쓰는 시기.
사람인가 싶게 꼬락서니를 부리며 온갖 속을 다 썩이는데 이걸 참아주긴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도 나름 어른이 되느라 용을 쓰는 시기였던 것이다. 이 시기를 가급적 많이 부딪히지 말고 아이가 깊이 고민할 수 있게 놔둬야 하는 것 같다. 사춘기 이후 훌쩍 커버린 이 아이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달라졌다.
동네를 나갈 때면 엄마손을 잡고 늘 함께 다니던 아이가 언덴가부터 슬며시 손을 빼고 팔짱 끼려는 엄마 손을 밀쳐낼 때부터.. 아이는 서서히 어른이 될 준비를 했던 거 같다. 아이가 더 이상 엄마말을 듣지 않고 엄마의 걱정이 소용 없어지던 시기. '내가 알아서 해요.'라는 말을 달고 살던 시기. 그때부터 아이는 스스로 자기 인생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 것 같다.
독수리의 훈육
어미 독수리는 때가 되면 그동안 푹신하게 해 준 둥지의 부드러운 깃털들을 내버리고 뾰족한 가시와 돌들로 둥지를 더 이상 안락하지 않은 곳으로 만든다.
스스로 둥지밖으로 나가는 새끼독수리들도 있지만
둥지 가장자리에서 버티며 용기 내지 못하는 새끼는 일부러 둥지를 뒤흔들고 쪼아서 둥지밖으로 밀어 버린다.
놀란 새끼들은 어설픈 날갯짓을 하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그 찰나 어미 독수리는 새끼독수리를 잡아챈다.
이런 혹독한 훈련으로 어미 독수리는 새끼독수리를 강한 독수리로 키워낸다.
이게 자연의 섭리인가 보다.
하지만, 나약한 인간인 엄마는 독수리만큼 매섭지 못하다. 자식과 포개 잡은 손을 놔줘야 하는 시기가 왔다는 걸 직감하면서도 매섭게 손을 놓지 못한다.
오히려 마음이 약한 엄마보다 먼저 세상밖으로 나갈 준비가 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엄마품을 떠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 그게 사. 춘. 기 같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당연한 과정.
지독한 방황이 끝날 즈음 아이의 마음에는 강렬한 흔적이 남았다. 마음속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스스로 충분히 방황을 했기에 얻은 결과라 생각한다.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인지, 인생에 대한 고민의 실마리라도 찾게 된 건지.. 아이의 마음을 다 알 순 없지만, 기나긴 방황 덕분에 아이는 마음속 깊이 시동을 ‘부릉부릉’ 걸기 시작했다. 아이의 두 눈이 생기 있게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스스로 벌떡 일어나 샤워를 하고 푸시업과 턱걸이, 윗몸일으키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른 시간 아침밥이 먹히지 않아도 기운을 내려고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게 정말 신기할 뿐이다. 이 모든 것들이 누가 시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이지 않나? 누가 만들어준 것이 아닌 스스로 찾은 인생의 방향과 목표이기에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 목표를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그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 결심한 순간 이 아이는 스스로 뛸 준비가 된 것이다.
하루가 너무 바쁜 것 같아 '아들! 힘들지 않아?' 하고 물었더니, 오히려 눈을 똥그랗게 뜨며 "엄마! 진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 요즘 정말 행복하게 공부를 하고 있다니까요!"하고 말한다.
프라모델을 만들며 좋아하던 그 어릴 때처럼 진심으로 아이가 설레하는 게 보인다.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