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해 보니 생각보다 아이들의 상태가 다양했다."엄마 이상해요. 중학교 때보다 애들이 더 공부를 안 해요." "엥? 말이 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우리 아들은 바짝 긴장한 채 수업에 집중을 하려 하는데 애들이 책상밑으로 핸드폰게임을 하고, 고등학교 입학 첫날부터 엎드려 자지를 않나.. 수업을 듣는 애들이 고작 서너 명 밖에 되지 않는단다. 이게 뭔 일일까? 그래도 대치동바닥에 존재하는 고등학교인데, 이러려고 이사 온 게 아닌데? 정말일까? 믿기지가 않는다.
다닐 수 있는 학원이 없네요...
대치동에 처음 입성했을 때, 우리 아이들은 다닐 수 있는 학원이 없었다. 나름 이전 동네에서 수학선행도 하고 비싼 돈 내고 영유도 다녔는데, 뭔 놈의 구멍이 이리도 숭숭인지.. 이 동네 학원가 정보가 다 있다는 디스쿨을 뒤져 유명한 학원으로 뻔질나게 테스트를 보러 다녔지만, 지금까지 뭘 한 건가 싶게 줄줄이 탈락이었다.
지금까지 쏟은 시간과 돈은 모두 증발해버렸나 보다. 아무것도 쌓인 게 없었다. 정말 아. 무. 것. 도..... 물론 격변의 사춘기라 가방만 둘러메고 학원을 다녔던 게 가장 큰 문제 이긴 했지만, 짐작했던 것보다 현실은 심각했다. 아이나 나나 기초부터 차근차근 전부~ 다시 해야 한다는 걸 빨리 받아들여야 했다. 아이는 대치동의 기라성 같은 멋진 학원들을 다니지 못한다는 사실에 다소 실망하긴 했지만, 조그맣고 허름한 개별 진도 학원에서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을 하기로 굳게 결심해 주었다.
그랬다. 우리 아이들이 해 온 공부는 공부가 아니었다.
난 그 시절 퇴근하면 곧 해가질까 시간이 아까워 원피스도 못 벗은 채 휘리릭 볶음밥을 해 도시락을 쌌었다. 집에 앉아 먹고 나가는 시간도 아까워 아이들 손을 잡고 재빨리 놀이터로 나갔다. 놀다가 돗자리에 앉아 도시락도 까먹고, 간식도 먹고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드는 걸 함께 보며 황홀해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몸은 힘들었지만 분주히 나갈 채비를 하던 아이들의 설레는 표정과 쪼꼬만 한 운동화를 신고 공원을 휘집고 다니며 깔깔대던 웃음소리는 잊지 못할 행복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커서 자식을 낳으면 어릴 때는 대치동에서 키우지 않겠다고 벌써부터 선언한다. 주변 친구들을 봐도 수학에 질려 버려 손 놓은 아이, 아무 의욕이 없어 보이는 아이, 공부는 정말 잘하는데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 등.. 아직까지는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나 보다. 여기선 집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간혹 아이들이 보인다면 선생님과 함께 줄넘기를 배우거나 삼삼오오 모여 인라인이나 농구등 스포츠를 배우는 아이들일 확률이 높다. 노는 시간조차 허투루 쓰지 않는 이 동네. 젊은 아빠들이 참 잘 놀아주네.. 했는데 알고 보니 선생님이었다. 난 이곳에 녹아들 수 있을까?
대치동 아이들은 유치원, 초등 때부터 입시를 치른다.
설명회 예약부터 1초 컷 마감이다. PC방에 가 재빨리 클릭을 하고 설명회 예약을 하면 겨우 학원 테스트를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아주 가관이다. 고작 7살 아이들인데.. 테스트는 대체로 지필시험, 에세이, 인터뷰를 보는데 이걸 준비해 주는 학원을 또 다닐 정도다. 몇 년 사이 영유 3년이 기본값이 되어 2년이나 1년 나와서는 들어갈 학원도 없다고 한다. 왜 이렇게 점점 빨라지는 걸까? 이 모든 게 다 수학 때문이다. 영어를 초등 저학년까지 어느 정도 해놔야 수학을 미친 듯이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황*수학 테스트가 있었다. 집에 초등아이가 없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는데, 유난히 길이 막히길래 오늘 왜 이러나? 했더니만, 황소 테스트가 있는 날이었다. 길가는 대기하는 차들로 주차장이 되어있었다. 그 근처 카페들도 테스트 넣고 기다리는 학부모들로 꽉꽉 들어찼다. 초등 때 황* 시험 한 번 안 본 아이는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인터넷에 이름만 쳐도 입학후기며 테스트준비사항에 대한 후기담으로 넘쳐난다. 대입도 아니고 고작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일 뿐인데, 어렵게 한 고비를 넘겨 입학을 하고 나면 솔직히 그때부터 엄마와 아이의 고난은 시작이 된다. 밤새 단평준비를 시켜야만 하고 아이는 질문 횟수가 정해져 있는 학원에서 혼자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집에 오지 못한다. 개념예습은 먼저 되어있어야 수업을 이해할 수 있고, 숙제 외에 따로 문제집 한두 권 정도는 더 풀어줘야 웬만큼 따라갈 수 있다. 이때부터 가족여행은 고사하고 아파서 결석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 질리도록 수학을 해야 하는 쳇바퀴의 시작!! 이 동네 아이들의 공부는 한번 시작되면 쉼표가 없다.
잠들지 않는 대치동 아이들..
우리 가족은 초등학생 때는 두말할 것도 없고, 중학생인 딸아이는 11시 반, 고등학생 아들은 12시 반이면 잠이 든다. 나부터도 최소 하루 7시간을 자지 않으면 다음 날 일과에 지장이 있을 정도인 사람이다. 그런데, 주변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새벽 2~3시까지 숙제를 하느라 잠 못 자는 아이들이 허다하다. 아이들만 잠을 못 잘까. 엄마 또한 아이 곁에서 숙제를 함께 하고 봐줘야 하기에 잠들지 못한다. 이 아이들의 부족한 잠은 어디서 채워질까. 이러니 수업시간에 조는 놈, 아예 엎드려 자는 놈 , 학교 수업은 너무 쉬워 들을 게 없고 학원 숙제하느라 바쁜 게 아이들의 현실이다. 수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잠자는 게 뒤죽박죽이니 불면증 약을 먹는 아이도 있고, 심지어 잠 안 오는 약을 먹으며 버티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진통제며 두통약을 달고 사는 아이들. 대치동 아이들은 약물 중독이다.
번아웃이 온 걸까? 퀭한 아이들의 눈빛이 눈물겹다.
은마파출소 사거리 신호를 받고 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가방을 둘러메고 걸음을 재촉한다. 어떤 아이들 손에는 단어장이나 프린트물이 들려있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 손에는 삼각김밥이, 핸드폰이 들려있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손을 지나 얼굴로 고개를 올려보면, 아이들의 퀭한 눈빛엔 뭔가 중요한 게 빠져 있어 보인다. 어느 주말인가.. 딱 봐도 초등 2~3학년으로밖에 안 보이는 꼬맹이가 세상 느림보 걸음으로 베베 몸을 꼬며 지나간다. 그 아이가 향한 곳을 올려다보니 00 수학! 학원 가기 싫어 학원 밑에서 미적거리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날따라 날도 화창하고 바람도 선선하니 딱 놀기 좋은 그런 날씨였는데, 내가 다 아쉬웠다.
이런 대치키즈들이 사춘기를 보내고 고등학생쯤이 되면 다양한 모습을 띄게 되는 것 같다. '더 이상은 달릴 힘이 없어요.' '조금만 쉬면 안 돼요?' 10년 넘게 밤을 새워가며 쉴 새 없이 정해진 대로 공부만 했다. 맘 놓고 놀아본 적도, 맘 편하게 여행을 가본 적도, 실~컷 잠을 자 본 적도 없을 것이다.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데, 월. 화. 수. 목. 금. 토. 일 하루도 단 하루도.. 아니! 단 몇 시간도 마음 편하게 쉴 수가 없었을 텐데.. 이 아이들 어쩌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