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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여행의 속도 - 리칭즈

속도에 따라 달라지는 여행의 풍경

by 장형

# 속도에 따라 달라지는 여행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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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여행의 속도

◎ 저자 : 리칭즈

◎ 여행지 : 일본, 프랑스, 스페인, 미국

◎ 3줄 개요

ㅇ 속도에 따라 달라지는 여행의 풍경(고속철도, 자동차, 기차, 선박, 도보, 멈춤)

ㅇ 한편의 건축 다큐멘터리

ㅇ 색다른 일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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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의 다큐멘터리

" 여행의 공간이동은 우리 내면의 동경을 자극한다. 어딘가에 존재할 더 멋진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것만 같다. 여행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죽는 그 순간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책 ‘여행의 속도‘를 읽으며 내내 들었던 생각은 한 편의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여행할 여행지에 대해 급조한 짧은 지식의 나열 수준을 넘어 전문분야에 대한 치밀하게 기획된 여행 다큐멘터리이다. 여행은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설렘이 원동력이다. 원동력을 만드는 공간의 이동 수단이 주는 느낌과 콜라보를 이룰 수 있는 여행지의 건축물, 예술품들에 대해 수준 높은 설명이 있다. 이동 수단이 주는 감성은 물론이거니와 이동 수단의 감성과 건축물의 연결이 자연스러워 글을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여행의 속도‘를 읽으며 한가지 더 인상적이었던 점은 책 전반에 흐르는 여행의 이동 수단이 주는 느낌과 건축물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정된 주제로 한 권의 책을 꾸릴 때 만들어질 수 있는 억지스러움이나 부자연스러운 흐름들도 나는 전혀 느끼질 못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상식적 감정 속에서 건축이라는 전문적 분야와 연결하여 풀어내는 과정을 물 흐르듯이 연결해낸 훌륭한 여행서이다.


# 속도에 따라 달라지는 여행의 풍경

고속철도
나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다시 네온사인이 현란한 도쿄로 돌아왔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하루만 무려 2,400km를 달렸다. 도시와 농촌이 이어졌고 봄과 가을이 공존했다.


작가 리칭즈는 도쿄에서 고속철도로 일본 북쪽 아키타현에 있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아키다 현립도서관에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다. 따뜻한 봄 날씨의 도쿄와 서늘한 가을 날씨가 연상되는 아키타현의 날씨를 고속철도가 이어준 셈이다.


90년대 중반 프랑스와 독일에서 고속철도를 처음 타봤다. 곧이어 일본의 신칸센이 생겼고 한국의 KTX가 생겼다.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중국을 여행할 때 침대열차를 즐기곤 했지만 중국에도 고속철도망이 생겨 이전에 침대열차는 낭만으로만 남겨지게 되었다. 이제 여행수단의 발달로 우리는 봄과 가을을,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 결정의 주체가 내가 되는 도로여행

도로여행(자동차 여행)
도로 위의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 고독한 길 위에서 앞으로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한다. 갈림길에서 몇 번의 잘못된 선택을 한 후, 다시 돌아와 도로 위를 전진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던 도시를 만나게 된다.

철도여행은 고정된 철로 위를 많은 사람들이 철도라는 매개를 이용해 같은 목적지를 향해 이동한다. 표를 사는 행위로써 목적지가 결정되고 중간에 목적지를 변경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자동차를 이용한 도로의 여행은 목적지를 정하고 출발하지만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이 다를 수도 있다. 여행 중에 아름다운 벚꽃길을 발견한다던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핸들을 틀어 다른 길을 향할 수 있다. 순간의 선택으로 잘못된 길에 들어 고생을 하기도 한다. 물론, 목적지에 도착하면 고생이 추억이 될 수도 있다. 작가 리칭즈는 '도로의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라고 말한다. 소극적 성격을 가진 사람도, 적극적 성격을 가진 사람도 나름의 주체적 결정을 통해 인생이라는 도로를 운전해 나간다. 고독한 길 위에서 주체적 결정을 통해 여행(인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추억의 소환, 열차(전차)

완행열차(전차)
전차는 신기하다 덜컹거리며 천천히 달리면서도 시공을 초월해 아들과 어린 시절의 나를 이어주는 힘을 지녔으니 말이다. 사실 기차를 타는 줄거움은 석양이 열차 위에 골고루 내려앉는 것처럼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없다. 앙증맞은 전차 안에서 시간은 느려지고, 사람들은 제각각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에 시침을 멈춘다.

국내 기차여행도 좋아하지만 해외 기차여행도 무척이나 즐기는 편이다. 처음 해외에서 기차를 탄 것은 유럽의 철도였다. 한 달짜리 U-rail pass를 구매하여 영국을 제외한 모든 유럽 국가들을 여행하는 데 사용하였다. U-rail은 숙소였고 식당이였고 카페였다. U-rail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정보를 주고 받고 헤어져 여행을 했다. 며칠이 지나고 다른 나라, 다른 도시의 U-rail에 올랐을 때 같은 친구들을 만나면 죽마고우를 만난냥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누곤 했었다. 어쩌면 유럽은 땅 위에서 본 경치보다 철도에서 본 경치가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에게 열차여행은 사람들과 만나고 풍경을 즐기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이다.


유럽 열차여행의 행복한 잔상이 남아서인지 나는 여러 나라에서 열차 여행을 즐겼다. 가족 모두 함께 밤새 달렸던 중국 윈난에 리장까지 9시간의 침대 기차여행, 중국의 발전상을 느끼게 했던 350km/h의 시안-뤄양 간 고속철도. 빠르고 깔끔한 일본의 신칸센. 기찻길 옆 즐비한 가난이 마음 아팠지만 열차 속 행복한 미소를 가진 사람들이 아름다웠던 미얀마 양곤의 순환열차, 배달음식을 들고 열차에 올라 인도네시아의 음식과 함께 즐겼던 자카르타 - 욕야카르타 기차여행. 대만 타이베이에서 지우펀과 스펀까지의 완행열차. 덜컹덜컹 울림에 맞춰 창밖을 바라보는 기차여행은 시절의 소환이고 새로운 시절의 생성이다.


#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것들

도보여행(골목여행)
젊은 시절, 나는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최대한 두 발로 걸어 도시 구석구석을 누볐다. 왜냐하면 두 다리야말로 그 도시를 이해하는 최고의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내 발자국을 찍어야만 진정으로 그 도시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자동차 여행도 즐겁고, 낭만적인 기차여행도 좋지만 천천히 걸어서 여행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자동차나 열차여행에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들이 있다. 숲속나무가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 들판에 외롭게 피어진 들꽃의 향기, 허기 속 우연히 찾은 내 인생의 맛집, 무엇보다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깊어지는 사색의 즐거움이 있다.


동해안의 길을 따라 국토종주를 하다가 강원도의 산 길에서 한 부부를 만난 적이 있었다. 숲길을 지나다 인사를 했더니 같이 간식을 하자는 말에 냉큼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아주머니는 남편의 반 강권으로 주말 도보여행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남편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바로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라는 것이다. 해파랑길(동해안 해안길) 끝까지 가겠다거나 빨리 가겠다는 생각보다는 남편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숲길을 나누고 사진을 찍는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도보여행길만큼이나 흥미로운 여행이 골목여행이다. 중국의 후퉁(도심 이면의 작은 길)이나 일본 교토의 아기자기한 길을 걷는 것도 재미있는 여행이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여행지의 새벽길 산책을 좋아한다. 이른 아침 고양이 세수에 모자를 눌러쓰고 산책길을 나선다. 번잡스러운 도심지라도 새벽길은 한적하다. 복잡한 낮 시간과는 다른 색다른 아침 풍경을 보여준다. 운 좋게 새벽시장이라도 만나게 되면 시장구경에, 사람구경에 복권에 당첨된 양 뿌듯하기만 하다. 시장 노점에서 아침거리를 찾아 손에 들고 숙소로 돌아오면 금방 일어난 아내에게 식사거리를 풀어내며 무용담을 풀어낸다. 한 걸음 한 걸음 찍어낸 내 발자국을 따라 여행지는 새로운 것을 조금씩 내어놓는다.


# 책 속에서 발견한 여행

ㅇ 세토내해의 섬들

세토내해는 일본의 가장 큰 섬인 혼슈와 시코쿠 사이에 형성된 바다를 의미한다. 이 바다 7개의 섬에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들이 산재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유명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한국의 미술가 이우환의 박물관이 건설되었다. 이외에도 각종 예술작품과 박물관들이 있어 소박한 여행객들을 유치하고 있다고 한다. 직업상 우리나라 남해안의 섬들을 답사하는데 이런 시설들을 외진 섬에 설치했다고 하니 최근 한국의 섬 사정을 생각할 때 부럽기 그지 없는 일이다.


이우환의 작품 특색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단순함’이다. 그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대부분 수평의 선을 이용한 것을 보고 하늘 높이 치솟은 직각의 조형물을 만들어 미술관 앞 광장에 배치함으로써 미술관의 전체적 느낌을 조화롭도록 했다. 이렇게 안도 다다오의 설계에 ‘감히’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역사상 이우환이 처음이다.

ㅇ 일본 열차여행

‘여행의 속도‘에는 여러나라의 고속열차와 일반열차, 전차들이 소개된다. 그 가운데 테마여행으로 기획하여 경험해 보고 싶은 여행이 일본의 기차여행이다. 책에서는 고양이 열차, 딸기 열차, 장난감 열차, 치바시의 현수식 모노레일, 바다를 달리는 에노덴 전차, 교토의 노면전차 에이잔 등을 소개한다. 일본의 기차역에서 지역의 도시락을 사들고 고양이 열차여행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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