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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여행, 혹은 여행처럼 - 정혜윤

여행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by 장형

# 여행, 혹은 여행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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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제목 : 여행, 혹은 여행처럼

ㅇ 저자 : 정혜윤

ㅇ 여행지 : 캄보디아, 미얀마 등

ㅇ 3줄 개요

-. 여행 인터뷰집

-. 여행이란 어떤 의미인가

-. 삶과 여행의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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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행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여행과 같은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여행을 주제로 한 인터뷰집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한 번도 고향을 떠나지 못한 그러나 누구보다 아름다운 시의 여행을 떠나는 할머니들, 해마다 캄보디아로 떠나는 사진작가, 고향을 떠나 끝나지 않을 여행 속에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 시를 쓰기 위해 서울로 온 시인, 나무박사와 진딧물 박사의 여행, 지도를 그리기 위해 여행하는 지도 제작자, 라틴어를 읽는 시간여행자와의 인터뷰집이다.


여행의 확장.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상상 속 세계로의 여행,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공간여행, 이제는 삶이 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행, 시간 속 여행으로 여행은 확장된다. 작가는 여행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그 연결 안에서 여행과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 중요한 것은 What 아니고 How


여행은 인생을 닮았다. 여행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프놈펜의 난지도에 갔다면 나는 먼지와 파리 떼와 오물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임종진(캄보디아를 여행하는 사진작가)은 아내의 얼굴에 달라붙은 파리를 막아주는 남편의 손길을 봤다. 사랑을 보았다.
(* 사진작가 임종진은 캄보디아의 쓰레기 더미에서 식사하는 부부의 모습을 본다. 남편은 급하게 식사를 마치고 쓰레기 더미에 파리떼를 쫓아내며 아내의 식사를 돕는다.)

미얀마 양곤에는 순환철도가 있다. 서울지하철 2호선과 같은 도시 순환선이다. 약 3시간 동안 미얀마인들의 실제 삶을 엿볼 수 있는 여행이다.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자주 만나게 된다. 쓰레기 더미 위에는 어김없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오물 냄새와 함께 안타까움과 씁쓸함에 말을 잃게 되지만 산더미같이 쌓인 쓰레기 인근에도 기차역이 있다. 그리고 타나카(미얀마 인들이 얼굴에 바르는 노란색 분말)가 만큼이나 수줍은 미소를 가진 미얀마인들이 열차에 오른다. 무색무취한 서울의 2호선 모습과는 달리 가난하고 냄새나는 양곤 순환열차의 미얀마인들은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사람이 있다. 사랑이 있다.


같은 사물이나 현상을 보더라도 어떤 시각으로 관찰하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여행도 삶도 마찬가지이다. 사진작가 임종진은 산더미같이 쌓인 쓰레기 더미에서 들끓는 파리떼에서 혐오를 읽지 않고 사랑을 보았다. 미얀마의 쓰레기 더미 위에도 고통과 가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네의 삶이 있고 행복이 있다. 작가는 여행이란 어디에 가느냐보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고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종교(religion)란 말이 라틴어 religio에서 파생했다고 읽었다. 그 religio는 연결하다(religare)라는 동사에서 파생했다. 그러니까 종교는 연결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종교의 반대말은 무신론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읽었다.


# 여행, 선택과 포기의 연속


우리도 여행지에서 수많은 선택과 포기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해볼 수도 없고 다 가질 수도 다 먹어볼 수도 없다. 여행지에서 선택을 한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 선택과 포기 ‘뒤‘에, 선택과 포기를 ’통해‘서만 우리는 모두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누구도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 누구나 선택과 포기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지나온 길이다. 모든 것을 다 갖지 못한다고 슬퍼하면 안 된다.


삶은 유한하므로 소중하다. 여행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삶이 그렇듯 여행은 수많은 선택과 포기의 연속이다. 삶이 모두 선택하고 모두 가질 수 없기에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선택과 포기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삶은, 여행은 똑같은 것이 없고 모든 삶은 소중하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전부 가질 수 없고 모두 가지지 못한 선택에 대해 후회할 필요도 없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내 삶은 유니크한 것이다.


여행을 기억함이란 무엇일까? 그건 사진을 들여다보기, 지나간 일정을 회고하기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건 그 여행이 이미 내 영혼의 일부가 되었단 뜻이다. 나에게 내 영혼을 만든, 이미 내 일부가 된 여행의 시적 순간들이 있다. (중략) 눈에 보이는 세계 뒤편,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순간들이다.


# 여행이란 어떤 의미인가


칸이 폴로에게 물었다.
다른 사신들은 내게 기근이나 착취, 역모 들에 대해 미리 주의할 것을 보고하거나 새로 발견된 터키석 광산, 좋은 값으로 거래할 수 있는 담비가죽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자네는 다른 사신들과 똑같이 먼 고장을 다녀왔는데도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저녁에 집 현관 앞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쐴 때 찾아드는 생각 같은 게 전부일세. 그렇다면 자네의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폐하도 아시다시피, 긴 여행 도중 흔들리는 낙타 등이나 정크 선에서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폐하께서는 지나간 추억들을 모두 하나씩 곱씹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돌아오실 때면, 폐하의 늑대는 다른 늑대가 되고 폐하의 누이동생은 다른 누이동생이 될 것이며 폐하의 전투는 다른 전투들이 될 것입니다.


작가는 매번 여행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다른 영혼이 되어 돌아오기를 꿈꾼다고 말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내 기억도 조금씩 다른 기억이 되고 나도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고, 할 수만 있다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그런 식으로 세상의 일부가 된다고 한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10년의 여행과 모험을 거쳐 집으로 돌아온다. 여행이란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어차피 집으로 돌아오기 위함이 여행이라면 당신의 여행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여행은 나를 바꾼다. 여행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내 여행은 목적 지향적 행위가 아닌 과정 지향적 행위이다. 여행은 내 추억을 바꾸고 내가 가진 사람과 기억을 바꾼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이전의 내 모습이 아니다. 여행을 통한 경험과 선택은 내 모습을 바꾸고 나는 그 모습에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집을 떠난다. 집에 돌아오기 위해. 그것이 내 여행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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