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우리 미국 위앙종 도량이 단순히 결가부좌 자세를 강조하는 선 명상 센터와 같은 곳으로 보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절에 찾아와서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 전체를 보고는 놀라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 위앙종 도량에서는 선 명상뿐 아니라 다양한 수행법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매일 새벽과 저녁 예불을 하는데, 각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예불을 마치고 나면 능엄주, 약사주와 같은 진언을 외우는 주력수행을 합니다. 일요일은 정토법회를 하는데, 아미타경을 함께 독송하고, 정토 염불법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영화 스님은 매주 5시간 정도 대승경 강설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 스님은 한국에 있는 우리도 경전 강설을 실시간으로 듣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할애해서 실시간 화상회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미국 위앙종 도량에서 하는 다양한 수행 중 중요한 하나가 있는데, 바로 약사 부처님의 다르마입니다. 약사부처님은 사실 '약사유리광여래', '대의왕불', '동방 정유리 세계의 교주' 등 다른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아미타 부처님이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인 것처럼, 약사 부처님은 동방 세계의 스승입니다.
원주 학성동 철조 약사여래좌상, 보물 1873호.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요즘 시대에는 약사 부처님의 가르침이 마치 미신인 것처럼 전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요즘 시대야말로 약사 부처님의 다르마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때입니다. 여러분이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고, 직장이 안정적이지 못하면 수행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약사 부처님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약사 부처님의 대서원
약사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사바세계의 교주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가져온 주요 불법 중 하나입니다. 다른 부처님들과 마찬가지로 약사 부처님도 대승 수행을 통해서 부처님이 되었습니다. 그건 약사 부처님도 역시 보살도를 수행하는 동안 많은 서원을 세웠다는 의미입니다. 그게 바로 대승법의 특징입니다. 대승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서원들을 세웁니다. 아주 비현실적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는 세세생생 이곳으로 돌아와서 이 서원을 따라 더 멀리까지 나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더 앞서간 부처님이 하셨던 것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입니다. 약사 부처님은 12가지 대서원을 세워서 부처님이 되었습니다. 약사 부처님은 각 서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12가지 서원은 모두 우리들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대서원은 모든 중생을 구할 수 있게 우리와 연을 맺게 해 줄 것입니다. 사실 약사 부처님이 보살도를 행하고 있을 때, 서원의 대부분은 필요성에 인해서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수행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그를 돕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이 중생들의 도움과 후원 없이는 불과(佛果, Buddhahood)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사 부처님은 그걸 기억해서, 후에 돌아와 이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약사 부처님은 이 서원들 덕분에 사바세계와 인연이 아주 깊은 부처님으로 알려진 것입니다.
약사 부처님이 세운 십이대원은 크게 두 역할을 합니다. 바로 재앙을 없애고, 수명을 늘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약사 부처님의 불법을 실행하면 재앙이 없어질 것입니다. 미래에 큰 재앙이 있을 운명이라면 재앙이 작아질 것이며, 작은 재앙이 올 운명이라면 그 재앙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지진, 쓰나미 같은 자연 재앙이나 누구나 흔히 겪을만한 교통사고와 같은 각종 사고사 등 뜻밖의 재앙으로부터 죽을 운명을 모면할 수 있는 겁니다. 게다가 수명도 늘어날 것입니다. 약사경에 따르면 각종 질병도 치유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약사 부처님과 만난다면, 어떤 병이든 고쳐달라고 청하십시오. 그러면 그 순간 질병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하는 일입니다.
약사 부처님 VS. 관세음보살
약사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법의 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심지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조차도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왜 약사 부처님에 대해서 가르쳤을까요? 매일 관음보살님의 명호를 외우고, 천수경을 외우는데 약사부처님이 무슨 필요가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으로 약사부처님의 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시대에서 약사부처님의 법이 사라지고 있다는 게 놀랄 일도 아닙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약사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이 우리가 원하는 걸 얻게 해 줄 힘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건 탐진치를 없애야 한다는 불교의 기본적인 교리와 반대되지 않나요? 탐락을 추구하도록 부축이지 않나요? 불교 교리는 탐진치를 없애는 데 있지만, 사람들은 무언가 도움이 되는 것이 있어야만 절에 갈 것입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여러 수행법, 기도, 제사 등 또한 우리에게 이롭기 때문에 실행합니다. 선 명상을 배우고, 절에 자주 가는 것도 뭔가 좋은 게 있어서 합니다. 간단한 원리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이런 걸 더 잘 파악할수록 더 많은 이득을 얻고자 노력할 겁니다. 이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탐심에 빠져서 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바르게 수행하지 않고, 탐심만 추구한다면 곤란에 빠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스승에 대한 완전한 신심이 있어야만 우리가 바르지 못한 길로 갈 때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개인적으로 선 명상을 시작한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영화 스님에게 의지했습니다. 스승님은 나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길을 제시하면서도, 늘 더 이기적이거나 탐욕스러워지지 않도록 이끌어줬습니다. 보통 옳은 길은 더 힘들고, 그게 반드시 더즐겁지는 않지만 우리는 모두 마음 깊숙이 어떤 게 바르고 옳은 길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영화 스님이 보여준 길은 더 많은 희생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길이었지만 궁극적으로 나에게 더 이로운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스승이 있다면 수행을 통해서 원하는 것을 얻고, 자신에게 이로움을 취해도 괜찮습니다. 그건 수행의 필수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수행을 위해서 탐심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 보살들도 탐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탐심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탐심도 있습니다. 그런 탐심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탐심은 우리가 불과에 가까워질수록 더 멀리까지 가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불과에 가까이 도달할수록 우리는 복이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탐심이 줄어들고, 결국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약사 부처님의 불법에는 다른 불법에는 없는 중요한 한 기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계율을 어겼을 때 약사 부처님의 다르마를 사용하면, 그 계율의 체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약사 부처님. 그림: 서주스님
우리들이 곤란에 처했을 때, 우리는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불러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장보살님, 대세지보살님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약사 부처님께 도움을 청하면 다른 부처님과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약사 부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인지를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해결해 준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질병이 있다면, 증상이 일어나기도 훨씬 이전에, 의사가 진단하기도 훨씬 전에 약사 부처님은 그 문제를 제거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서 알 필요조차 없이 말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는 수많은 질병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차리기도 이전에 약사 부처님의 다르마는 이런 질병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줄 것입니다. 도와달라고 물어볼 필요조차 없습니다. 약사 부처님은 도와줄 것입니다. 그게 가장 큰 차이입니다.
하지만 불행히 약사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세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영화 스님은 제자들에게 약사 부처님의 불법이 다시 널리 알려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약사 부처님의 불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부처님의 다르마는 우리에게 불가사의하고, 엄청나게 이로운 일들을 해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배꼽에 집중하고 "약사여래, 약사여래, 약사여래"라고 외워보십시오. 좋은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