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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도움 없이 서울에서 결혼하기

by 박모씨

이제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예물 예단 없이 서울에서 결혼하기로 한 우리. 결혼준비를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몇 가지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우리나라의 결혼식 관습은 어쨌든 계속될 것이다.

나는 사실 결혼식보다는 결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축의금 때문에 여는 결혼식이라는 행사가 기이해 보였다. 사회생활 하면서 버는 돈 몇천만 원을 예식 비용으로 고스란히 지출하면서 '결혼식 자체 비용은 축의금으로 충당된다'라고 말하는 게 이상해 보였다. 안 받고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모두를 귀찮게 하는 이유가 뭘까? 가뜩이나 나도 바쁜데. 그래서 사실 결혼식을 별로 안 하고 싶었다. 우리가 사귀는 햇수만 늘어가고 결혼 소식이 없자 양가 부모님들은 스몰웨딩도 괜찮다고 하셨다.

스몰도 괜찮으시죠? 하고 내가 진짜 양가 친지들만 모여서 식사만 하고 끝낼 것 같으니 절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셨다. 남들 하는 건 다 해야만 한다고 하셨다. 어른들이 괜찮다고 했던 스몰웨딩은 그냥 야외에서 하는 야외 웨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예식장을 예약했다. 어른들이 계속해서 원하시는 이상, 우리나라의 결혼식 풍습은 계속될 것이다.


2. 부모님의 금전적인 도움이 없으면 조금은 자유로울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우리는 부모님의 금전적인 도움 없이 알아서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내가 살던 집에, 내가 가지고 있던 가전가구가 있어서 가능했다. 예물 예단 교환 없이 알아서 하기로 했다. 좋은 것 걸쳐봤자 내가 하면 가짜 같아 보일 거고, 필요도 없다.

내가 이런 방식을 선택한 건 첫 번 째는 우리 집이 예물이고 예단이고 자시고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집이기 때문이었고, 두 번 째는 돈이라도 안 받으면 간섭이라도 덜 받을 것 같아서였다. 이거 해야 된다 저거 보내야 된다 말이 계속 나오면 너무 귀찮을 것 같았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나는 축가가 없는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별로 잘하지도 않는 사람 불러다가 30만 원 주고 노래 불러달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차라리 마음을 담은 축사를 하고 결혼식을 끝내는 게 좋아 보여서 축사만 하겠다고 했더니 그런 법이 어딨냐고 방방 뛰셨다. 그런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며 당장 바꾸라고 하셨다. 예식장 위치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오가시기 편한 기차역 앞의 예식장을 봐뒀는데, 여기는 이래서 안 된다 저기는 저래서 안된다 하셔서 결국엔 어른들이 원하시는 곳으로 했다. 더해서 직장까지 내가 돈을 더 잘 벌어도 내가 남편 쪽으로 옮기길 바라신다.

시댁만 나에게 그러는가?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내가 난색을 표하니 조금 덜하긴 한데, 우리 집에선 '아들 결혼식' 이니까 나한테 손님을 부르지 말라고도 했다. '남의 집 아들'이 우리 집에 들어오는 거라서 혼수를 새로 해야 운수가 좋다고 했다. (물론 해주지 않았음) 아빠 양복이 없다고도 했고, 언니도 가방이 없다고 했다. 뭘 해줄 순 없어서 안타까워하시긴 해도 구색은 맞춰야 된다며 (내 돈을 써서 모든걸 준비하라고) 나를 들들 볶았다.

3. 사람들은 자기 생각밖에 할 줄 모르고, 나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

사람들은 본인들 생각 밖에 할 줄 모른다. 상대편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기가 나이가 들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혼주 차량 주차는 신랑 신부를 포함해서 여섯 대였는데, 남편 쪽에서 당연하게 네대를 쓴다고 했다. 뒤편으로 불러서 불쾌하다고 남편을 타일렀다. 남편이 사는 서울에서 결혼을 하다 보니, 내가 부를 사람이 굉장히 적었는데, 축사 축가 화동 모두 남편 쪽에서 한다고 했다. 또 남편을 불러서 불쾌하다고 타일렀다. 이건 '우리'행 사고 '우리'가 같이 준비하는 것임을 계속해서 일깨워 주었다.

청첩장을 주면서도 계속 됐다. 멀리 사는 친구들에게 청첩장을 보내며 정성스럽게 선물을 꼭 하나씩 끼워 넣었다. 정중히 초대하는 마음과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손수 담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청첩장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서류 봉투에 간 청첩장은 그래도 눈에 띌 텐데 봉투라도 열어보면 좋으련만, 열어달라는 말을 하기도 좀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이렇게 다들 결혼한다고 하면 이래저래 말을 한마디씩 하지만 사실 별로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들 말 듣고 기분이 나쁘고 좋고 할 필요가 없다.


4. 내가 주인공이고 나의 인생에 있어 큰 행사지만, 주체는 내가 아니다.

신부가 주인공이라고들 으레 말한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눈에 띄긴 하고,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지만 사실 내가 주인공은 아니다. 나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시녀다. 남편은 나보다는 신경이 덜 쓰여서 조금 편하게 있다가 마지막에 와서 의견을 얹는 눈치 없고 도움이 안되는 동료 포지션이다. 우리는 주인나으리 (양가 부모님들과 친척들)의 괜찮다는 거짓말을 간파하며 눈치껏 다들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내야 하는 하인들이다.


5. 서울에서 결혼하는 건 돈이 많이 든다.

나는 참 돈을 아끼려고 노력했다. 내 돈이 허투루 쓰이는 게 싫어서 여기저기 많이 알아보고 덜 쓰고자 노력했다. 그래도 오시는 손님들의 식대를 포함해서 부모님 양장비, 한복, 메이크업, 차비, 상견례 식사비 등등을 합치니 2,000만 원은 훌쩍 넘게 든다. 신혼여행까지 합치면 3,000만 원이 간당간당 한다. 속된 말로 창자가 빠지는 느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돈을 주고 내 시간을 써가면서 하지만 내 마음대로는 잘 되지 않는다. 열심히 벌어서 항상 소중히 쓰는 내 돈인데, 이렇게까지 불만족스러웠던 적이 있을까? 싶다. 차라리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 돈 쓸 거면 내 마음대로 좀 됐으면 좋겠는데 그게 참 힘들다. 나한테 쓰는 돈이 없으니 더 그런 것 같다.


우리 둘이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우리 둘이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내서 독립하는 과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럭저럭 잘 지내는 삶만 원할 뿐인데, 어려운 것이 많아 걱정이다. 다들 으레 하는 우리나라의 공장식 결혼식을 만만하게 봤지만 크게 데인 느낌이다. 나는 동물원 철창 아래 갇힌 동물처럼 신부대기실에 앉아 전시되는 것도 너무나 부끄럽다.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 싶기까지 한 요즘이다. 얼른 결혼식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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