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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웨딩도 괜찮다는 거짓말

by 박모씨

"작게라도 하면 어떠니? 요즘은 스몰웨딩이 유행이라던데."


처음부터 나는 결혼식을 거창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결혼식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돈 써가며 시간 써가며 잔치를 벌이는 것도 귀찮았고, 하얀 드레스 입고 "호호호 저는 새신 부예요~" 하는 퍼포먼스는 생각만 해도 부끄러웠다. 해야 한다면 그냥 가족들끼리 조용히 모여서 식사만 하고 끝내고 싶었다. 더군다나 내가 원하는 식순과 행사를 진행하려면 시간도 돈도 더 드니까, 적당히 작게 작게 끝내는 게 좋아 보였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갑자기 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우리 집안과 신랑 집안의 부모님 네 분은 모두 은퇴하신 상태다. 우리 엄마 아빠는 둘 다 늦둥이라 형제자매들이 대부분 돌아가셨고, 덕분에 친척들도 별로 없는 상황. 그래서 작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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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스몰웨딩도 괜찮다던 부모님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요즘은 스몰웨딩이 있다며 알아보라고 하시던 시어머니는 아니 예식장에서 사람 조금만 부르면 그게 스몰웨딩이라고 하셨고, 올 사람이 없다며 크게 하지 말자던 엄마는 '그 집에는 아들이 하나뿐이라 크게 해줘야 한다'라고 했다. 부모님들은 역시, 내 자식이 이렇게 됐다는 걸 보여주시고 싶어 하셨고, 부모님들이 생각하시는 스몰 웨딩은 그냥 야외 웨딩이었던 것이다. 나는 하게 되더라도 의미를 남기고 싶었고, 부모님들은 모양을 남기고 싶어 하셨다.


부모님들이 하시는 말씀은 좋았다. 남들 하는 건 다 해봐야 한다며 이럴 때 해보는 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런데 옷 한 벌 1시간 30여분을 입는 옷 한 벌에 적어야 150만 원 이상을 쓸 수 없을 것만 같다. 내가 열심히 노동하고 소중히 여기는 돈인데, 드레스를 입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그냥 이 돈으로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턱턱 사주고 축하인사를 받고 싶었다. 사실 중요한 건 결혼식이 아니라 결혼인데!


처음에는 부모님들이 거짓말쟁이들이라고 느꼈지만, 결혼식이라는 건 사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모양이나 형식이 다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드레스도 싫고, 이렇게 이렇게 식순과 동선을 정해주는 예식장 문화도 싫고, 워크인보다 웨딩플래너 업체를 껴야 더 싼 웨딩 업계도 싫다. 내 친구들과 동료들은 이런 나를 이해해 줄지도 모르지만, 자식들 결혼시키는데 부모님들께서 모시는 손님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역시나 무난한 남들이 하는 것을 다 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 결혼이 누구에게도 부족하지 않고, 미안하지 않도록 준비를 하기 위해서 최근에 예식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적당히 저렴하지만- 적당히 품격 있어 보이는- 어쩌면 힘들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생각하는 결혼의 모양에 조금이라도 부합할 수 있도록 나를 아주 조금 내려보기로 했다. 결혼 자체는 우리가 알아서 써 가야 하는 삶이니까! 결혼식은 아주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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