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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므 Sep 15. 2022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습한 바람 한 줄기가 훑고 지나갔고 주변에는 야자수가 가득하다.

오늘도 유난히 푸르고 쨍쨍한 햇볕, 그리고 구름 가득한 하늘이 종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 오늘도 왜 이렇게 더운 거야.' 종호는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날씨에 속으로는 짜증과 함께 안도감이 뒤섞이는 감정이 들었다.

검은색 사각형의 백팩을 멘 종호의 이마에는 어느덧 송골송골 땀 방울이 맺혔고, 이내 종호는 팔뚝으로 땀방울을 열심히 닦으며 전철역으로 향했다. 전철역까지는 도보로 20분. 왼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본 종호는 이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섭씨 33도를 육박하는 온도이지만 종호의 옷차림은 주변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긴팔 후드티와 두꺼운 청바지, 마치 혼자서 주변의 냉기를 품은 냥 어울리지 않는, 누가 봐도 낯선 이방인의 모습을 한 종호는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육교 아래 인도를 지나가던 종호의 곁으로 7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하얀 피부를 가진 종호와는 다르게 목 주변이 늘어난 나시티를 입고 며칠 동안 씻지 못한 것인지 꾀죄죄한 모습의 소년이었다. 그의 오른손은 자신의 배를 쓰다듬고 있었고 왼손은 종호의 얼굴을 향해 쭉 내뻗고 있었다. 소년의 행동에 종호는 잠시 주춤하였지만 이내 익숙한 듯 동요하는 기색 없이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렸다. 종호는 무엇인가 열심히 뒤적거리려고 노력은 하였으나 이내 지폐만 만지작 거리는 것을 느낀 뒤 아이의 모습을 게슴츠레 훑고는 마치 전철역에 중요한 물건을 두고 온 것 마냥 가던 길을 재촉해 나아갔다. 소년은 종호의 몸짓을 보곤 잠시 기대하는 눈치였으나, 이내 종호가 큰 보폭으로 앞으로 나아가자 이내 체념한 듯 그늘 저편으로 향했다.

전철역에 다다른 종호는 본인이 메고 있던 백팩을 열어 전철역을 지키고 서 있던 경비원에게 보여준 뒤 이내 백팩을 앞으로 고쳐 메고는 전철역 플랫폼에 서서 전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전 7시 10분. 이번에 도착하는 전철에 탑승해야만 8시에 시작되는 수업에 도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전 7시 50분, 가까스로 행선지에 도착한 종호는 뒤에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한 마냥 종종걸음으로 플랫폼을 내려갔고, 학교 정문이 보이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 숨을 내쉰 뒤 지갑에서 ID 카드를 꺼냈다. 'Han Jong Ho' 덥수룩한 머리의 증명사진 아래로 종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학교 정문 출입구에는 아까 전철역에서 봤던 경비원과 동일한 유니폼을 입은 한 남성이 매의 눈으로 출입하는 모든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종호는 익숙한 듯 ID 카드를 찍고 이내 교실을 향해 뛰어갔다.

오전 7시 58분이 되어서야 도착한 교실에는 종호와는 사뭇 다른 이목구비를 가진 학생들이 이미 이곳저곳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종호는 비어있는 자리 중 한 곳으로 가 가방에 있던 노트와 펜을 꺼냈다. '오늘은 누구랑 밥을 먹을까.' 도착하자마자 종호는 공강에 누구와 함께 밥을 먹을지 고민에 빠졌다. '동수는 오늘 수업이 있다고 했나? 상민이는 공강이 몇 시지?'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종호는 어느새 들어온 교수님을 확인하고는 정신을 차리고 노트를 펼쳤다. 'De La Salle University'. 종호의 노트 앞에 큼지막하게 학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명문대. 2008년 종호는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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