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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랄라 Jun 06. 2023

8. 마트 적립금이 삶에 미치는 영향

진짜 경제활동은 전업주부의 손 끝에서 시작된다

헉.


오전이 좀 덜 붐빌까 싶어 서둘러 온건데 안 하느니만 못한 시도였다. 50개 가까운 계산대마다 늘어선 대기줄을 보는 순간 기가 턱 막혔다.


아들 학교 점심 시간에 맞춰 동네에 다시 돌아가려면 주어진 시간은 불과 1시간 여. 마트에 들어서면서부터 사야할 품목들 위치를 머릿속으로 스캔하기 시작했다.


카트를 밀고 매장에 들어서는데 순간, 숨길 수 없는 나의 비장함에 콧방귀가 새어나왔다. 


'장보는 게 뭐라고 이렇게 어깨에 힘주고 난리야.'


그렇다. 하나님이 의식주 중에 가장 번거로운 '식'을 하루에 세번이나 하도록 만드셨다는 데 대해 안타깝다는 평소 생각과 별개로 이곳에서 장보기는 나에게 단순한 식재료 구입 이상의 의미를 깆는다. 


첫째, 내가 프랑스에 적응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척도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장보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었다. 사실 프랑스어 까막눈인 초보 전업주부가 쇼핑 카트에 뭔가를 담는다는 행위 자체가 스릴 넘치는 일이기도 하다. 


섬유유연제를 사겠다며 세탁세제만 3통(이럴 땐 왜 꼭 2+1 행사를 하는 건지) 사오는 건 애교이고 '빵의 나라'에선 밀가루마저 입자 크기별로 나뉜 것도 모르고 수제비 한 번 먹어보겠다고 T45부터 65까지 일일이 사다가 풀떼기를 쒀먹는 일도 불가피했다. 기껏 만든 사라다(과일 샐러드)에 '디종(Dijon)' 마요네즈(머스타드가 가미된)를 듬뿍 뿌려 처치곤란 대치국면에도 처해보는가 하면 족발인줄 알고 사온 부위가 정말 발가락만 있어서 공복의 저녁을 보내기도 했다. 마트 한 구석에서 진열대에 놓인 물품들을 향해 돋보기라도 되는 냥 핸드폰 구글 번역을 띄우는 자체가 이방인 인증을 하는 셈이니.


하지만 단어들이 조금씩 눈에 익고 식재료를 닥치는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보니 조금씩 감이란 것이 잡히기 시작했다. 


정량화된 레시피보다는 손끝의 감각만 믿고 이것도 뿌려봤다, 저것도 뿌려봤다 하는데 생각보다 결과물들이 나쁘지 않다는 건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 가장 좋은 거름 역할이 됐다. 


둘째, 현장에서 현지인들의 입맛을 느낄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학습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이 바라보는 건 바로 부모다. 부모의 행동, 언어, 몸짓 모든 것이 아이에게는 학습 자료가 된다.


나에게 '부모'는 마트에 온 프랑스인들이다. 마트 한 면을 채운 요거트 코너에서 현기증이 난다면 잠시 옆에 서서 다른 사람들이 많이 집어가는 요거트를 집으면 되고 왠만한 동네 슈퍼 만한 크기의 와인 코너에서 가성비 와인을 고를 때 역시 이런 관찰력은 필수다. 


다만 근처만 가도 냄새가 고약할 것 같은 치즈 코너에서만은 예외다. 체다 슬라이스 치즈 정도에 익숙한 코리안이 섣불리 신의 경지에 있는 '부모'들의 초이스를 따라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

 

마지막 세번째, 사실 가장 직접적 꿀이득은 바로 적립금이다. 


식재료와의 궁합을 맞춰가는 것만이 장보기를 흥미롭게 만든 건 아니다. 사실 이렇게 붐비는데도 굳이 매주 목요일 마트를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목요일은 결제액의 10%를 현금으로 적립해주는 서비스 때문. 적립금은 5유로 단위로 가능한데 결제액이 50유로를 넘으면 5유로, 100유로를 넘으면 10유로를 넣어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고작해야 1~2% 쌓기도 힘든데 떡하니 10유로씩 넣어주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목요일은 무조건 오지 않을 수가 있나.


초반만 해도 결제액이 80유로, 90유로에 그치는 날이 적잖았다. 그럴 때면 어찌나 속이 쓰리고 안타깝던지. 식용유 한통, 샴푸 2통만 더 담았더라면 5유로를 더 버는 거였단 생각이 내내 맴돌아 이미 받은 5유로가 주는 기쁨은 잊은 채 집에 오는 내내 씩씩 거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몇차례 그런 일을 겪고 난 이후 카트에 물건을 담을 때마다 핸드폰 계산기를 두드려 가며 총액을 맞추는 전략을 짰다. 붐비는 사람들 사이에서 카트 끌으랴, 물건 고르랴, 장보기 리스트 체크하랴, 계산기까지 정신이 산만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5유로를 더 챙길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감내할 만한 분주함이었다.


특히 이 적립금은 전업주부가 된 뒤로 경제적 이득에 대한 목마름이 있던 나에게 일종의 돌파구 역할도 했다.


사실 아직도 평일 대낮에 쇼핑카트를 끌고 있는 내 모습은 나조차도 어색하다. 대학 4학년 때 과에서 가장 먼저 취업에 성공했던 나는 줄곧 직장인, 워킹맘으로 살아왔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 10년 가깝게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직을 준비하던 중 남편이 덜컥(?) 프랑스에 일을 얻게 되면서 갑작스런 퇴직자가 돼 버린 셈이다.


하루 아침에 우주에 떨어진 것만 같은 이 변화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멘붕스러운 일은 단연, 내 '주머니'가 없어졌다는 점이었다.


매달 25일이면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오던, 넘치지 않더라도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만 같던 샘물이 '순삭'된 것이다. 초등학생 때 한두번 재미로 써본 것을 제외하고는 용돈 기입장조차 써보지 않은 건, 돈은 늘 있는 것이었기에 수요 없는 귀찮은 기록일 뿐이었다. 출근하기 싫어 죽겠다가도 내가 쓴 카드값을 다 메꿀 만큼의 월급을 주는 회사를 위해 나는 러닝머신 위에 놓인 다람쥐처럼 굴렀더랬다.


그런데 갑자기 통장도 없고 카드도 없어졌다. 집밖에 나가면 숨쉬듯 카드를 긁는 손목의 스냅은 여전히 부드럽기 그지없는데 다른 한 손으로 카드잡은 손목을 붙들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현실이 다가온 것이다.


"벌어다 준 돈으로 산다는 게 쉽진 않을거야. 너도 살던 습관이라는 게 있는데..."


프랑스로 오기 얼마 전 흘리듯 한마디 건네는 엄마에게 자신있게 "괜찮아! 다 살게 돼 있어!" 했더랬다. 그래. 살긴 산다만 내가 긁는 카드, 나도 안 보던 내역을 누군가가 투명하게 다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혹시나 바닥까지 긁어쓰면 왠지 살림을 못한 것 같은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만 같은. 아, 이게 참 환장하는 거였다. 거기다 땅설고 물설은 프랑스에서 소주 한잔 기울일 상대도 없다니 감옥이 따로 있을까.


동기부여를 한답시고, 이게 나의 직업이야. 이제 난 전업한거니까 이 일을 열심히 하는 거야! 하며 최면도 걸어봤지만 이내 약발이 떨어지는 건 '근데 왜 이 직업은 경제적 이득을 발생하지 않는거지?'하는 지점에 섰을 때였다.


매일 점심이고 저녁이고 나를 괴롭혔던 즐거운 고민, "뭐드시고 싶으세요?"는 여전히 귓가를 간지럽히는데 현실은 '오늘 뭘 차리지?'를 쳇바퀴돌 듯 고민하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자꾸 한숨이 새어나오기 일쑤. 그때 먹었던 산해진미들은 다 어디 가고 지금의 난 간장, 된장, 고추장 트리오를 붙잡고 마늘을 빻아대고 있나 싶은 생각이 떠오르면 잠시동안 주방에 멍하니 멈춰서 있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희열을 준 게 바로 이 적립금이었다. 6개월여만에 내 손끝을 통해 뭔가 직접적 이득이 창출되는 현실을 체험한 것이다. 영수증 끝에 찍힌 적립금 숫자는 오로지 나만이 만들어가는 '재산'이라는 생각이 나에게는 더없이 흥미로웠다.


오늘 구입 품목은 대략 이렇다. 브리타 교체용 필터, 아들 간식용 꼬마 도넛, 남편 아침 빵, 식기세척기용 세제, 반찬보관용 그릇, 샐러드, 요거트, 돼지목살, 국거리용 소고기, 닭곰탕용 닭고기, 시리얼, 스파게티 소스, 올리브오일, 후추, 디저트 약간.


특별할 것은 없는 일상의 품목들을 확인하고 난 계산기를 손에서 놓기로 했다. 지난주, 핸드폰을 잘못 눌러서 여태 쌓아온 계산 내역을 날려버린 뒤 눈짐작을 믿고 계산대에 섰는데 106유로를 찍었을 때의 희열이란. 태어나기를 숫자와 친하지 않았던 나이건만 적립금에 대한 나의 집요함이 대체 얼마나 큰 건가 싶어 혼자 주차장에서 낄낄대며 웃었더랬다.


모든 품목을 담고 마지막 디저트 코너. 아직 섭렵하지 못한 코너에서 마지막 고비가 왔다. 프랑스 사람들은 후식을 먹기 위해 본식을 먹는다고 할 정도로 후식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반면 한국에서 후식이래봐야 제철 과일 정도가 전부였던 나에게 이 코너는 쓸데 없는 고민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아들 픽업시간이 가까워지는 시간, 그냥 사지 말까.' 


그때, 디저트 냉장고 앞에 서 있는 내 옆으로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빠흐동"하며 자리를 비켜드리는데 아주머니의 손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한 유리병으로 향했다. 초콜릿 무스 셋트였다. 그리곤 나를 향해 블라블라. 아주머니 말에 바로 "아 그래요?"하고 답했다. 아무리 봐도 내가 못 알아들은 걸 눈치했는지 아주머니는 엄지를 추켜세워주며 만국 공통어 바디랭귀지를 날리셨다.


'어뜨케, 오늘은 저 '엄마'를 믿고  프랑스 사람처럼 좀 먹어봐?'


두 병에 3.2유로. 아주머니가 디저트 코너를 떠나자 난 다시 시선을 옮겨 방금 그 아주머니처럼 망설임없이 그 초콜릿 무스 묶음 두개를 카트에 담았다.


세일 코너를 한번 더 둘러본 뒤 콩닥대는 마음으로 계산대 줄에 섰다. 이제 운명은 내 손을 떠났다. 앞선 부부 한팀에 이어 드디어 내 차례. 하나씩 계산대 반대쪽으로 넘겨지는 품목들을 다시 카트에 실은 뒤 마지막 성적을 확인할 차례. 두둥.


102.78유로.


소리라도 지를 뻔했다. 최근 이보다 기쁜 일이 있었을까. 둘째가 베냇짓하는 모습에 침 질질 흘리는 엄마의 반사신경을 제외하곤 없었던 듯. 맘 같아선 뒤에 서 있는 손님들하고 파이파이브라도 하고 싶을 정도의 기막힌 성적이다. 그 순간 그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하, 그 아주머니 아니었으면 난 99유로 담고 땅을 칠 뻔한 거 아닌가. 


계산을 마치고 혼자 실실 웃으며 카트를 끌고 나오는데 마침 회사 선배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한국은 퇴근 후 거나하게 한잔들 걸쳤을 시간.


"어딘데 이렇게 바빠?"

"선배, 저 지금 장보고 나오는데 10유로를 벌었어요!"

"어?"


못 알아들어도 좋다. 선배는 거기서 돈 버세요. 전 이제 이걸로 돈 벌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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