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랄라 Dec 02. 2020

5. "프랑스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초대형 도시락 가방'을 든 아들

교문 앞이 벌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프랑스 사람들 특유의 친화력 때문인지, 거주지 기준으로 배정되는 공립학교 특성상 이웃을 만난건지 다들 앞, 뒤, 옆 사람들과 이야기가 한창이다.


"사람들 빨리도 왔네. 아빠들도 다 휴가내고 왔나봐."

남편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도 우리의 시선은 주변을 둘러보느라 바빴다. 더 볼 것도 없이 동양인은 우리 뿐.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도 몇차례 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평소대로면 상대방 표정이나 눈빛의 호감도에 따라 반응하겠지만 앞으로 아들이 다닐 학교인 만큼 눈꼬리를 한껏 내려 인자함을 눌러담은 미소로 응했다.


 "엄마, 나 프랑스어 못한다고 선생님한테 꼭 말해줄거지?"

아들이 잡고 있던 내 손을 잡아끄는 바람에 시선을 아래쪽으로 향했다.


"그럼. 엄마가 선생님한테 보여드릴 문장도 딱 적어놨어. 봐봐."

핸드폰 잠금화면을 열자 마자 구글 번역에 "아들이 프랑스어를 하지 못합니다. 아이의 학교 생활과 관련해 궁금한 것들이 있는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메일 주소를 알 수 있을까요?"라고 적은 프랑스어 번역 문장이 뜬다. 


"휴..."

아들이 내쉰 한숨에는 안도보단 걱정과 긴장이 대부분임을 알기에 어떻게 응원을 해줘야 하나 고민하려는 순간, "어! 이제 들어가나보다!" 남편의 외마디 외침이 우리의 시선을 한 곳을 이끌었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동동 구르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행렬을 따라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는 아들.


'어쩌자고 애들한테 이렇게 큰 가방을 메라는 건지.' 그렇잖아도 한껏 내려앉은 아들의 어깨에 눈치없이 큰 가방이 야속하기만 하다. 얼핏 봐도 아들 등보다 두배는 넓어보이는 파란색 민무늬 가방.


구체적으로 특정 캐릭터나 디자인을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초등학교 입학식날 가로 길이만 63센티인 '초대형 도시락', 그것도 중고 가방을 들게 할 생각은 없었다.


 "여기 애들은 들고 다는 책이 많아 큰 가방을 써야 한다"며 교회 사모님이 아이들 쓰다가 물려주신 가방을 받은 뒤 동네 마트를 돌다 보면 정말 거기서 거기였다.


아이의 입학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지만 입학하면서 일어나게 될 수많은 일들을 걱정하다보니 어느 순간 가방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물체'가 됐다. 그런데 막상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 내 눈에 비친 파란 가방이 왠지 오늘 아들이 겪을 무거운 시간들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속이 아렸다.


'조금이라도 가벼운 걸로 사줄 걸 그랬나.'



교문에 들어서자 입학을 위해 디렉터 미팅을 했던 사무실이  정면에 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자 계단이 나온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이어진 유리문으로 나가니 건물들로 둘러싸여 만들어진 사각형 형태의 공터가 보인다.


3층짜리 오래된 건물, 시멘트 바닥의 공터, 중간중간 심어져 있는 나무들, 왼쪽 끝의 농구대. 어찌 보면 삭막하고 어찌 보면 단순한 인상의 이곳에서 아들이 앞으로 뛰어놀겠지?


한바퀴를 둘러보다가 유리창에 붙어 있는 A4 용지들에 시선이 멈췄다. 반 배정표다. 읽을 수 있는 거라곤 아들 이름이 거의 유일하지만 담임은 Mme. Thevenet. 학급 인원 총 27명이라는 정보를 얻은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아들의 이름 위아래로 줄줄이 적힌 다른 아이들의 이름들. 부디 이 가운데 아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아이들이 많으면 좋으련만.


"현아, 입학 기념 사진 찍어줄까?"

두리번거리던 아들은 뒷걸음질로 내가 지정해 준 포인트로 옮겨가 지금까지 찍은 사진 중 가장 어색한 표정과 포즈를 취했다. 아빠와도, 엄마와도 한장씩 찰칵.


그때, 백발머리에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 선생님이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프랑스 식으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선생님에게 "Oui"라고 대답한 뒤 주머니 속에 꽉 쥐고 있던 핸드폰을 꺼내 번역문을 보여드렸다. '연락처를 알려준다면 핸드폰에 받아적으면 될 것이고, 안 된다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겠지.' 미리 생각해뒀던 대응 메뉴얼을 상기하는데,


"개인 이메일을 알려줄 순 없고 아이들이 매일 집으로 갖고 가는 녹색 노트를 통해서 궁금한 것이나 알려줄 메시지들을 전달해주면 됩니다."


이런. 선생님이 영어를 하신다. 그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구사력. 순간 맞은편에 있는 남편과 눈이 마주쳤는데 남편 역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걸 숨기지 못했다. 매일 외계어 속에서 살아야 할 아들에 비할 바 아니기에 내색하진 않았지만 아들 학교 생활 뒷바라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밤마다 시원스쿨만 붙잡고 끙끙댔는데 영어하는 선생님이라니, 어둡던 하늘이 맑게 개이는 것만 같다.


이야기하는 엄마와 선생님의 표정을 번갈아 가며 살피던 아들의 얼굴에도 잠시나마 웃음이 보였다. "엄마, 아빠가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줄 수 있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한시름 놓인 거다.


하지만 제일 먼저 현실로 돌아온 것 역시 아들이었다. 당장 여기서 살아남아야 할 사람은 스스로임을 다시 인식한 듯 아들의 시선은 선생님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서머스쿨을 다닌 이후로 아들이 눈치로 상황파악하는 능력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엄마, 좀 있으면 들어갈 것 같지?. 첫날인데 진짜 4시까지 수업하는 거야?"

"그래도 이따 점심 시간에 엄마가 데리러 올거니까 일단 두시간 반 정도만 잘 견뎌봐. 첫날이니까 수업하진 않을테고 오늘은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교실은 어디인지 이런 거 보고 온다고 생각하자. 할 수 있지?"

"두시간 반...? 나 자꾸 눈물날 것 같아. 엄마... 무서워."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는 내 옆에 더 바짝 붙어섰고 나도 그런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일들이 더 많아질 거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드디어 선생님이 모든 아이들에 대한 확인을 끝냈는지 손짓과 함께 몇마디 하자 아이들이 하나 둘씩 줄을 서기 시작했다. '드디어 올 때가 왔구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는 아들을 못본 체하며 어서 가라고 등을 밀었다. 뒤돌아보는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더 환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입모양으로 쉼없이 응원을 보낼 뿐이었다.


아들 옆에 선 아이는 아들보다 20센티는 작아보이는 왜소한 남자 아이. 선생님이 다시 한마디하자 아이들은 손을 잡기 시작했고 앞뒤를 살피던 아들이 먼저 옆에 있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했어, 아들. 잘하고 있어.'


아들은 내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선생님과 아이들을 따라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들의 뒷모습이 다 사라진 뒤 남겨진 남편과 나. 우리는 한동안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부디 오늘 하루가 아들에게 나쁘지 않은 시작의 첫날이길 바라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은 바쁘고 복잡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