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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Dec 28. 2023

#6. 나는 X세대, 너는 MZ세대

성장일기 _ 일상

매번 괜찮다는고 센척하며 말하지만 혼자서 아이를 키워 나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인격의 깊이가 얕아서 아이들에게 종종 화를 내거나 말로 상처를 주면서 돌아서면 금세 후회를 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마치 아수라백작 같은 것이다. (아수라백작을 아는 나는 옛날 사람이다)


어릴 적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빨리 어른이 되면 마음의 바다와 같이 넓고 타인을 향한 이해심과 아량도 더불어 나이만큼 넓어지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사고의 폭도 깊어져서 지혜롭게 된다고 생각했다. 어른만 된다면 그렇게 될 거라 믿었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명하게 판단하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었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멋진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기만 한다면 말이다.  


생각은 오산이었고 망상이었다.   나이를 먹고 중년이 되니 한없이 속이 좁아지고, 한없이 서운하고, 한없이 나약해며,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나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울 때도 종종 있다. 


어릴 적 나는 어머니의 혀끝에 사탕처럼 살살 녹는 행동을 하며 칭찬을 갈구했던 아이였다.  엄마의 말이라면 무조건 "예스"라고 말했던 소녀는 이제 없다.


요즘도 엄마는 종종 나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사춘기도 없이 조용히 지나갔는데, 결혼하더니 변했어. 대체 왜 그러니? 매사에 뭐가 그리 불만인거인 거야?"

"춘기가 없던 게 아니야! 엄마! 엄마가 나보다 더 한 갱년기를 심하게 겪으니 내가 아무 말도 못 한 것뿐이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너무 억울하잖아. 나는 고작 중학교 2학년인데 왜 엄마의 하소연을 늘 들어주고 있었을까?"

"그건 네가 엄마말을 잘 들어주니까. 네가 편해서. 네가 착하니까 엄마가 말한 거지."


그래 나는 무늬만 착한 딸이었다.  그때는 엄마가 안쓰러웠지만 미웠다. 그래서 엄마의 말은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맞다고 믿었다. 


현재의 나는 마흔여섯, 딸아이는 중3


내가 사춘기를 겪던 시기의 일기장 속에 적혀 있던 엄마의 나이와 같은 나이.


30년 전 일기장 속 x세대였던 나는 대중가요의 르네상스시대를 보내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 영화 그리고 문학을 받아들이며 개방된 마인드와 빠르게 변하는 시간 속을 걷고 있었지만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자상하지만 유교사상 넘치는 엄마의 가정교육 속에서 반기를 들 생각도 없이 말 잘 듣는 딸로 고분고분 살아왔다.


나의 사춘기시절 일기장 속에는 엄마를 많이 사랑하고 미안해했지만 엄마를 향한 원망도 많았다. 

그때는 그 원망조차 죄스러워서 조심스럽게 써가며 일기장에 사과도 많이 하고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이 죄스러워서 괴롭기도 하고 우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나쁜 아이라 생각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엄마게 나에게 했던 많은 억울한 상황들을 당연한 듯 참았던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과거 엄마의 혀끝에 있는 달콤한 사탕이었던 내가 이제는 엄마의 무한반복하는 잔소리를 듣지도 않을뿐더러 모두 부정한다. 나의 이런 증상들이 나이 먹는 갱년기 증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혹은 지금 내 딸이 하고 있는 사춘기 증상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혼자 있을 때 엄마를 생각하면 따뜻하고 미안한데 전화 통화만 하면 화를 내며 끊는다. 엄마말을 다 틀리다며

사춘기를 제대로 겪지 못하고 보낸 중년 여자는 엄마에게 더 이상 착한 딸이 아니라 '미친년'이 되어 버렸다.


들쭉날쭉 날뛰는 내 마음,  기뻤다 슬펐다 반복되는 감정들, 아이들 앞에서는 이성적 인척 평온한 척  평점심을 찾으려고 미친 듯이 노력하지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욕. 한마디.


하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이래저래 복잡한 마음과 해야 할 일들이 태산인데 아이들은 아프고 딸아이의  사춘기에 하는 말마다 말대꾸에 약을 올리는 듯한 말투 나도 모르게 한숨과 함께 흘러나오는 한마디


"아이 씨발.. 우라질... "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말들이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새어 나왔고 흠칫 놀라 옆을 살피니 아들이 있었다. 그 녀석은  피식 웃는다.


늘 이성적이고 지적인 척하던 엄마의 속내가 읽고 나니 본인과 비슷하다는 동질감이 느껴졌던 걸까?


'아니 엄마가 왜 이래?'가 아닌 '엄마도 욕을 하네. 웃기다.'라는 아이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비난이 아닌 공감의 눈빛이었다랄까?

 

여하튼 아들은 그 한마디 욕을 들으며 같이 웃었다.


다만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낮은 목소리톤으로 진지하게 말할 때면 아들은 되려


"엄마. 왜 화내!" "엄마. 왜 짜증 내!".

라며 되려 나에게 크게 반문한다.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와 똑같은 감정이면서 왜 어른인 척하는 거야?' 혹은 '혼자 이성적 인척 하는 거야?'라는 말을 눈으로 나에게 하는 것 같아서 어느 순간 입을 꾹 닫아버리게 되었다.  힘듦을 눈빛과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상처 주고 있으니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말 

'위선자'


내가 엄마에게 느꼈던 그 마음 그 아이도 느끼고 있었다.  몸이 낸 뜨대로 되지 않고, 마음도 뜻대로 되지 않는 나이. 그러나 그걸 인정하면 내가 나이를 먹었거나 자녀에게 진다는 패배감을 갖고 싶지 않아서 받아들이거나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하지 않아서 오는 괴리감을 우리는 위선이라고 느낄 수 있다.


9학년의 딸아이.  초등학교 때까지 엄마만 사랑했던 아이.  요즘 그녀는 안에 작은 악마가 존재하는 것 같다.  너무나 사랑했고, 너무나 예뻤으며, 너무나 달콤했던 아이.


 사춘기라는 이름하에 어른들이 제일 싫어하는 많은 행동들을 하고 있는 그녀는 나에게 늘 당당하다.


귀여운 예를 들자면 아침 9시까지 등교해야 하는데 8시 30분에 기상하여 꼼지락꼼지락 움직이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하며 그날의 입을 옷을 체크하고 옷도 입지 않은 채로 옷장 앞에서 10분을 지체하며 보낸다.  


"우리 8시 45분에는 나가야 해. 어서 준비해."라며 되도록이면 아침에 화를 내지 않으려 꾹꾹 참으며 딸아이에게 독촉을 하지만 그녀는 천하태평이다.


지각할까 싶어 동동거리는 나는 안중에도 없다.


"우리 늦었다고. 어서 준비해. 어서.. "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질 때쯤 딸아이는 말한다.


"이미 늦었는데 뭐. 천천히가.."


할 말이 없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그녀의 이런 태도는 정말로 이해 가는 행동이지만(그녀의 성향상), 내 컨디션이 나쁠 때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 짜증으로  폭풍잔소리를 시전 하게 만든다.


더 사랑했기 때문에 더 화가 났다고 할까?

첫째의 사춘기와는 다르게 둘째에게는 유독 더 서운했다.

 

어느 날 딸아이의 지저분한 방문을 살짝 열어서 한마디를 하려고 하는 순간.


“알았다. 알았다고, 책상 치운다고. 안 치우면 잔소리하고 지랄할 거면서.....”


라는 말을 아이의 입을 통해 듣는 순간 머리가 멍했다.


‘이 아이는 미친 건가? 혼내야 하나? 화를 내야하나? 소리를 지를까?’


단 몇 초 사이에 오간 수백 개의 생각 중에 ‘그래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어른한테 그런 표현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을 까먹었을 거야’라고 나를 스스로 위로하고는 잠시 자리를 떴다.


주방으로 돌아와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곤 생각을 정리해서 딸에게 조용히 말했다.


“도희야. 너 지금 엄마한테 지랄이라고 말했지? 근데 그 표현은 아이가 어른한테 쓰는 표현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욕이야. 앞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아.”라고 조용히 말하고는 나 자신을 다독 거리며 방문을 닫고 나와서는 주방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열불이 나기 시작했고, 지금이라도 방문 열고 들어가서 아이의 머리끄덩이를 잡을까 싶어서 운동화를 신고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밴쿠버의 날씨가 선선하여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되었지만, 그래도 저녁시간은 많이 추웠다. 찬 바람을 맞으며 아무 생각 없이 걷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나는 내 목숨과 바꿀 만큼 사랑하고 아끼며 키운 내 아이의 한마디에 이렇게 무너지는 사람이구나. 나는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이구나. 그 한마디 말에 이 정도로 무너지는 마음이라니...’


너무 슬펐다. 아이에게 존경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무시와 모멸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라테는 말이야'라고 말하면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꾹꾹 참고 또 참고 지내왔는데... 


그 후로 며칠간 딸아이와 냉전을 계속 유지하며 감정의 거리를 지켰다. 


어느 날 큰 아아와 작은 아이가 크게 다투고 있었다. 평소에 아이들의 싸움을 중재하거나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았던 터라였는데 그날은 내 좁은 속내를 마음껏 표현하고 싶었던지 아들의 편만 들어주었다. 그 후로 딸과 마음의 거리가 더 멀어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내 안에서 밀려오는 작은 복수의 환호랄까?


'나 엄마 맞아? 뭐 하는 짓이야!'

'어디 엄마에게 감히 나 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야'

'일부러 사춘기 핑계대로 그런 거 아니었을까?'


라는 혼잣말도 계속하면서 최대한 꼰대가 되지 않고 멋진 엄마가 되려고 이성적인 척을 하며 유유히 나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뒤끝작렬한 소녀처럼 그녀를 향한 소소한 화풀이는 계속 계속되었고, 딸은 나에게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표정을 계속 지켜보다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워킹맘으로 사는 시간 속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면 나만 바라보았던 아이들을 향해  제대로 이뻐해 주거나, 제대로 사랑표현도 못해주고 하루하루를 버티느라 무표정으로 아이들을 대했던 사랑 없이 내 상황만 생각했던 그때 그 표정. 내가  고스란히 딸에게 받고 있었다.


“엄마 일하잖아. 엄마 건드리지 마. 조용히 해 얼른 자. 왜 안 자고 엄마를 힘들게 해” 등등


모진 말들을 어린아이들에게 하고 있었다. 그런 말들을 들으며 상처받았을 법 한데 아이들은  되려 내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딸아이는 언제나 나에게 와서 먼저 사과한다.


"엄마. 미안해. 그 말하려던 게 아닌데 말 실수한 거야. 근데 엄마한테 더 혼날까 봐. 바로 말 못 했어. 미안해.'


그제야 나는 말한다.


"엄마한테 먼저 사과해 줘서 고마워."


그 알량한 자존심은 건졌다. 그게 뭐라고..


나이는 46살 먹은 어른이지만 내 안에 소녀는 나보다 32살 어린 딸과 힘겨루기를 늘 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도 마음공부를 하거나 내적 성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른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와서 축복이 되어 주고 내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지혜와 깨달음을 주는 아이들이 있어 감사하다.  


엄마로 사는 것은 너무나 위대한 일이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엄마가 되려면 진지한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내가 성장해 오면서 누구 하나 얘기해주지 않았을까?


어른이 되면 당연히 결혼하고 당연히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것이니 당연히 잘 길러 내야 하는 것이고, 아이를 못 길러내면 전적으로 엄마 탓, 잘 키우면 그냥 본전이다.


요즘 내 또래의 엄마들,  특히 사춘기 자녀를 둔 엄마들이 아이들과 보내는 가장 힘든 시기이다. 


중년인 우리가 자랐던 시대는 부모에 거역을 하거나 부정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지만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의 개성을 중시하던 X세대.


우리 아이들은 MZ 세대이며 아이들은 부모의 말에 사사건건 토를 달아서 반론을 제기하기에 엄마들은 그 반론을 조금이라도 반박하며 비논리적인 싸움을 이어 간다.  우리 때는 부모님께 반박하지 않았지만 부모의 일방적인 의견을 따르는 것은 너무 싫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반박하며 나에게 대드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싶다. 그것이 X세대의 가자고 있는 쿨함이라고 자부하면서.....


그래서 나는 매일 공부를 한다. 감정공부,  아이들이 하는 게임공부, 음악공부 혹은 유튜브 공부 아이와의 감정싸움에서 이기가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어서 아이들이 보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야 그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열리고 내가 아이를 따듯하게 안아주는 힘도 길러진다는 것을 느낀다.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힘든 자리지만,

세상에서 제일 따듯하고 포근한 자리 아무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불려져서는 안 될 말 


엄마, 어머니


누구나 생각하면 포근해지는 그 긍정의 메시지와 엄마를 떠올리면 눈물샘을 자극하게 만드는 말.


요즘은 엄마라는 말에도 부정의 메시지로 가득한 엄마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떤 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생각하면 감사해서 눈물이 나지만, 어떤 이에게 엄마는 생각하면 치가 떨리게 싫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도망가고 싶은 엄마도 존재한다.  


그만큼 중년의 엄마들은 자기가 너무 소중했던 X세대였기에 본인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표현하고 자유를 사랑했던 세대, 부모와 관계는 소통이 되지 않고 가부장적 환경에서 자랐던 세대, 말이 통하지 않는 부모와 복종하며 살던 세대 그러나 나름대로 반항을 하며 살던 세대, 우리는 그런 세대를 살았던 사람이었다.


나는 요즘 엄마로서의 길을 가다가 잠시 마음의 방황을 하고 갈길을 종종 잃고 있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의 반만이라도 돌려주고 싶은 마음에 조금 더 노력을 해본다.


부족한 엄마지만 너희들이 나에게 와서 한 걸음 더 성장하고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게 도와줘서 감사하고,  나에게 무한 사랑과 지지 혹은 간혹 고통의 시간을 주기도 하지만 언제는 큰 사랑과 해결책은 너희들이  주었기에 내가 성장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무늬만 어른인 나에게 솔직히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성장하게 해 줘서 고맙다. 니들이 내 찐 스승이 아니었을까 싶다. 


 X세대를 살았던 개방적이고 개성적인 꼰대보다 본인의 잘못을 정확히 인지하고 인정하며 용기 있게 말하는 MZ세대가 더 멋지다. 어쩜 더 어른일지도 모른다.  우습지게 세대별 승부를 겨뤄보자면 MZ세대인 너희가 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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