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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Mar 01. 2024

#14. 푸른 하늘 은하수

성장일기 _ 일상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다가 혼자서 중얼 거린다.

어릴 때 자주 부르던 동요였다.


어릴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지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할머니가 막걸리를 드시는 날이면

나에게 노래 한 자락 해보라고 하셔서 할머니 앞에서 동요를 신나게 부르곤 하였다.


문득 잊고 지냈던 동요한 소절에서 할머니가 생각났다.


막걸리를 좋아하시던 친할머니의 막걸리 심부름은 늘 나였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폿집이라고 불렸던 것 같고, 나는 양은주전자를 들고 옆으로 스르륵 열리는 문으로 들어가면


"안녕하세"라고 말하고 "요" 자가 떨어지기 무섭게


"할머니 심부름 왔구나?"

라는 말과 함께 주전자를 받아서 막걸리를 부어주셨다.


할머니가 주신 동전을 아주머니께 전해 드리고 불이 나게 집으로 달려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막걸리 맛이 궁금해졌다. 가던 길을 멈추고 누가 볼까 무서워 한쪽 구석으로 가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핀다. 마치 막걸리가 무거워 잠시 쉬는 것처럼 위장하며 어린 나이지만 치밀했다.


차마 주전자 뚜껑을 열어서 마셔 볼 용기가 없어서 새끼손가락 살짝 주전자 주둥이에 밀어 넣어 본다.


 손가락에 닿지 않자 나는 주전자를 아주 살짝 기울인다. 넘 칠랑 말랑한 막걸리를 찍은 후 입에 가져다 댔다.


'우웩 이게 무슨 맛이야! 쓰다.'


나는 후다닥 주전자 다시 들고 집으로 내달렸다.


할머니께 막걸리를 전해드리니


"애기야, 오봉 좀 가져오니라!"


할머니의 말을 해석하자면  양은국그릇을 가져오라는 소리였다.  가져다 드린 양은그릇에 막걸리를 콸콸 따르시고는 시원하게 벌컥벌컥 들이켜신다.


"캬. 시원하다!"

"할머니 시원해?"


나는 할머니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할머니 맛있어?"

"오냐. 겁나 맛나다."


한참을 할머니를 바라보다 할머니에게 말했다.


"나도 먹어보고 싶어."


우리 할머니는 권위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분이셨고 우리 자매들과 장난도 치며 재미있게 지냈었기에 꼬마가 술을 마셔보겠다고 했을 때 할머니에게 혼날 거라는 생각보다는 어린애가 술 마시면 머리가 나빠지거나 몸이 나빠진다는 생각이 나를 더 두렵게 만들었었다


내 두려움과는 달리 할머니는 나의 물음에 흔쾌히 대답하셨다.


"먹어 볼 텨?"

"응!"


주방으로 가시더니 막걸리를 큰 냉면 사발 밑바닥에 삼분에 일정도 따르고, 냉장고에 있던 사이다 병,  설탕 두 숟가락  마지막으로 얼음 세 덩이를 넣고 휘휘 저으신 후 숟가락 3개를 꼽으신다.


"이리 와봐."


막내를 뺀 우리 자매들은 그 양은그릇 앞에 마주 앉았다.


모두 숟가락을 들었다.


나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숟가락을 입으로 살짝 가져다 대었고 숟가락이 입술 가까이 다가오는 그 순간 코끝으로 밀려오는 달큼한 향기란...


" 우와! 맛있다."


우린 그렇게 맛있는 막걸리를 처음 먹어보게 되었다.

환상의 맛이었다. 부드러운 우유에 설탕을 탄 맛이랄까? 요즘시대의 밀키스의 시초가 아니었을까 싶다.


'할머니의 막걸리 배달 중 몰래 훔쳐 먹었던 그 맛은 뭐지'


그 호기심은 잠시 잊고 여전히 막걸리 맛에 빠져 숟가락으로 신나게 막걸리를 퍼먹었다.


우리는 종종 할머니가 막걸리를 마시는 날이 될 때면 그 방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할머니가 제조해 주시는 특제 막걸리를 숟가락으로 떠먹곤 하였다. 사실 엄마가 애들한테 술을 먹인다는 사실을 엄청 싫어했기에 몰래 숨어들어 먹은 것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일종의 일탈이랄까?


그 중심에 늘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담배도 태우셨는데  할머니가 피우시던 담배의 이름은 청자였다. 세월이 자니 88로 담배가 바뀌었지만 주말이 되면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할머니를 뵈러 친척들이 자주 인사를 오셨는데 올실 때마다 담배 한 보루와 과일을 사 오셨다.


 특히 손님이 많이 올실 때는 담배가 세 보루나 생기니 할머니는 집 앞 가게에 가서 현금으로 바꿔 달라고 하시거나 우리들 과자를 사주셨다.


주말마다 치러지는 손님맞이 집안은 늘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래서인지 집에서  제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하고 바라었던 적이 수도 없었다. 


저녁식사를 하시고 할머니방에서 두런두런 얘기 나누시던 지인분들이 돌아가 실 시간이 되어 부모님과 할머니가 지인분을 마중 나가는 계시는 그 찰나의 시간


나는 할머니방으로 쪼르륵 들어갔다. 맛있는 과자나 간식이 남아 있어 슬쩍 집어먹으려는 요량이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재떨이엔  피다 남은  담배꽁초가 아주 미세하게 여기를 뿜어 내고 있었고, 올라오는 담배 연기는 스멀스멀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나는 그만 할머니의 담배를 집어 들어 입에다 가져다 대었다. 사실 담배를 입에 대기도 전에 콧구멍으로 들어온 담배연기 때문에 기침이 시작되었다. 너무 놀라 들고 있던 꽁초를 다시 재떨이에 내려놓고는 할머니방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아주 긴 시간의 이야기 같지만 2분도 되지 않은 짧은 순간이었다.


내 심장은 이미 내 온몸에 자리 잡고 있는 정수리, 미간, 손목, 목뒤, 발목,  귀청까지 터질 듯 크게 뛰기 시작하였다.


아무 일 없었듯 할머니방을 유유히 나와 부모님이 계신 밖으로 나가버렸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1학년 가을에 돌아가셨는데 그녀가  돌아가시고 자매들끼리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다 '나의 할머니를 담배 몰래 피워봤다는 고백'을 필두로  네 자매들 모두 할머니 담배 피워봤다고 고백을 하며 웃음바다가 되었다.


오늘은 할머니 생각이 참 많이 난다. 갱년기를 달리고 있는 나는 기뻤다 슬펐다 우울했다 숨이 찼다 더웠다 화났다를 반복하며 하루에도 사춘기 소녀처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데 문득 그 시절 그 생각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보고 싶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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