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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Mar 09. 2024

#17.  어떤 위로

성장일기 _ 일상

"엄마. 고민 있어!"

"뭔데 말해 봐."

"근데 아무런 말하지 말고 내 얘기만 들어줘."

"알겠어."


딸아이의 고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저러쿵'


아이의 이야기가 한 시간쯤 흘렀을까?


중간중간 아이의 말을 끊고 조언을 해주고 싶었지만 약속한 것이 있어서 꾹 참았다.


아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의 위로가 필요하겠구나 싶어 한마디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엄마!  잔소리하지 말고 그냥 들어달랬더니. 또 잔소리야!"

"잔소리는 무슨 잔소리야. 엄마는 네가 걱정돼서 말해준 건데..."


당황스러웠다.  


딸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고 위로를 해주었을 뿐이었는데 잔소리라니.. 


'못된 녀석. 어미 속도 모르고..'


딸아이의 사춘기 변덕이라 치부하고는 아이와 함께 있다가 큰소리가 날까 싶어서 자리를 피했다.


집밖으로 뛰쳐나와버렸다. 


'이그 못된 녀석. 사춘기라고 정말'


혼자 씩씩거리며 집 근처를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머리끝까지 올라온 화가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나는 딸에게 진짜로 위로를 해준 걸까?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한 걸까?'


문득 며칠 전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의 카톡 내용이 생각났다. 


75세의 나이시지만 유독 스마트폰 활용을 잘하시는 내 엄마. 세상의 온갖 좋은 글, 명언에 관련된 동영상과 사진들을 수시로 보내신다. 멀리서 사는 딸이 고생하는 게 안쓰럽고 걱정된다고 하시면서 마음을 비우고 살라며 글이나 영상을 보내주시지만 단 한 번도 그것들로 위안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또 시작이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영상과 사진에 덧붙여 오는 엄마의 짤막한 메시지들


누구나 힘든 고통의 시간을...(중략)  뿌린 대로 거두는 현실을 직시하고 겸손하게....(중략) 사람은 자기 복대로 사는 거다. 자기 그릇대로 사는 거니 욕심을 부리지 말고...(중략)... 착하게 살아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대 팥 난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거라 파이팅(하트)(하트)(하트)》


엄마가 보낸 문자를 바라보면서 나는 눈물이 났다.  카톡에 세상의 온갖 하트 이모티콘 폭탄이었지만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되려 가슴을 너무 아팠다.


'결국 내 선택이 또 틀렸다는 말이 해주시고 싶은 거로구나.'  


상대를 위한 걱정 가득한 위로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조언, 충고, 평가, 판단들..


나도 다 알고 있는 너무나 옳은 얘기 


여하튼  75세의 어머니는 여전의 딸을 독립시키지 않고 엄마의 품 안으로 자꾸 끌어들이려고 하고, 46세의 딸은 여전히 엄마품에서 자꾸 벗어나려고 애쓰며 살아간다. 


여전히 독립시키지 못한 혹은 독립하지 못한 애어른들


엄마 입장에서 내가 하고 있는 많은 선택들이 엄마말을 안 들어서 일어난 일들이고, 그 선택들로 인해 불편함을 겪고 있는 것도 너의 몫이니 고집불통 딸의 삶을 응원해 줄 수는 없다. 엄마말 잘 듣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엄마 옆에서 가족들과 편히 지내는 것이 내가 복되게 사는 길이라 말하신다. 


'니 욕심이 많아서 그래. 엄마 말 좀 들어라! 엄말 안 들으니 네가 더 힘들고 자꾸 아프지. 혼자서 힘들게 왜 거기서 그러고 있니? 욕심 좀 버리고 평범하게 가족들 옆에서 살면 오죽 좋아" 


많은 동영상과 사진들과 함께 보내는 엄마의 메시지들 결국 하나와 같다. 


"엄마. 나 힘들어."라고 말했을 뿐이고

"그래도 우리 딸 장하다. 잘하고 있어."라는 한마디만 듣고 싶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엄마의 위로에는 타인을 위한 말은 없고 엄마의 바람만 있을 뿐이다. 


여하튼 길을 걸으면서 내 엄마를 생각하다 보니 내가 딸에게 해주었던 고민얘기에 대한 위로와 조언들은 나 역시 내 바람을 딸에게 주입시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내 의도가 그랬기에 딸은 나에게 화나 났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 싶다. 


그날 이후로 딸아이가 나에게 고민상담을 잘 안 한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 딸에게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엄마가 이제 잔소리 안 할 테니까. 언제든지 말하고 싶을 때 얘기해! 입 꼭 다물게."

"잔소리할 거면서... 그래도 얘기할게."

"응. 엄마 조심할게. 한번 믿어봐.'


딸아이는 피식 웃는다.



대체 위로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침묵, 맞장구, 쌍욕, 동조...


그리고, 나는 오늘 어떤 위로가 받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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