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_ 캐나다라이프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평소보다 늦게 수영장으로 향했다. 내가 자주 가던 에드먼즈 커뮤니티센터(Edmons Community Centre)의 수영장이 1년에 한 번씩 유지보수하는 기간이라 3주간 영업을 하지 않아, 집 근처 다른 센터로 가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운전거리 10 ~ 15분 거리 안에 퍼블릭 센터가 6개나 있어서 언제나 쉽게 운동을 할 수 있고, 비용도 매우 저렴하다.
나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공간이 수영장인데, 어디로 가야 할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집 근처 엘린데일리센터(Eileen Dailly Leisure Pool & Fitness Centre)로 가기로 했다. 이 수영장은 스카이트레인(한국의 지하철과 비슷한 개념)과 가까워서인지, 오후에는 노숙자들의 방문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아무리 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하더라도 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어서 거의 방문을 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 역시 오전 시간 영유아 수영 레슨으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이것이 편견 없는 캐네디언들에게 내가 감동하는 포인트이다.
밴쿠버의 상징인 비(Rain).
가을이 시작되면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온몸이 으슬으슬 추울 만큼 공기가 찬 날씨가 계속된다. 이런 날씨일수록 수영장의 사우나를 이용하거나, 온탕과 냉탕을 오고 가며 몸의 컨디션을 유지한다. 아파도 병원 가기 힘들기에 최대한 스스로 건강을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
오늘은 수영장에 도착해 주변을 살피니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온탕에 꽉 차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날씨 탓이겠지 생각했다. 몸도 춥고 자리도 없어서 사우나로 먼저 향했다.
사우나에 들어서자마자 출입구 옆 바닥에 웬 남자가 누워서 눈을 감고 요가와 비슷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의 발목에는 전자발찌가 채워져 있었다.
'헉! 저게 뭐야?'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잘못 본 건가? 저 사람의 발목 액세서리인가?'
캐나다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다름을 존중하며 사는 곳이라, 그가 발목에 찬 것이 액세서리 취향 중 하나겠지라고 생각하며 시선을 옮겼다.
이곳에선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온몸에 문신 가득한 사람들, 코걸이, 귀걸이, 지나치게 화려한 액세서리로 자신을 표현한 사람들, 유방을 절제한 트랜스젠더, 할머니의 과감한 비키니 차림, 할아버지의 빤스차림의 수영복 등등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바라본다. 때론 멋지다는 말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 준다.
그런 부분에 있어 '그저 전자발찌 착용하는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일 거야!'라고 속으로 되뇌며 자꾸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겨보지만 여전히 그의 발목에 찬 발씨가 거슬린다.
내 마음과 동공은 점점 불안해진다.
'에이 설마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공공 수영장에 온다고? 이게 가능한 일이야? 한국에서 전자발찌를 착용한다는 것은 성범죄자나 도주 위험이 있는 흉악범들에게 착용하게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럼 저 사람은 대체 뭘까? 저런 사람이 이런 곳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고?'
나의 복잡한 생각들은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곳은 유토피아임에 분명한데 저 빌런은 대체 뭘까?
만약 그가 범죄자라면,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공공장소에 올 수 있는 그의 마인드에 경외감 마저 들었다.
'대체 어떤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길래 이런 곳에서 아무렇지 않고 타인의 시선 동요되지 않는 단 말인가?'
찬라였지만 타인의 말과 행동에 많이 흔들리는 마인드를 가진 내가 정반대의 강한 마인드를 가진 그가 대단히 부러웠다.
'철면피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사우나에서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오다가 운동 중이던 그가 갑자기 뻗은 손을 살짝 밟고 말았다.
"I'm so... so... sorry. Are you ok?"
겁먹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그가 눈을 뜨며 나에게 말했다.
"I'm good, Don't worry. Don't worry."
내가 영어를 잘못하는 동양인인 줄 알았는지, 짧은 말로 괜찮다고 해주었다.
그의 눈동자는 푸른빛이었다. 영화에서 봤던 푸른 눈의 범죄가가 떠오르며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허둥지둥 밖으로 나와 온탕으로 들어갔다. 물은 평소보다 많이 차갑게 느껴졌다. 아니면 전자발찌를 찬 그가 무서웠기에 물이 더 차갑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눈을 감고 계속 전자발찌에 대해 생각했다.
범죄자인가?
전자 발찌 모형을 착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개인의 취향인가?
온탕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 있는데 물이 심하게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사우나에서 봤던 그 남자가 바로 내 옆에서 요가 동작과 비슷한 격한 리액션들을 하고 있다. 그의 움직임으로 내 몸이 이리저리 출렁였고, 온탕 안의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사우나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피해서 온탕에 있다가 그가 돌아오니 다시 사우나로 가는 것이었다.
불편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눈을 감고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떨군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시간이 좀 흘러 출렁이던 내 몸이 잠잠해졌다.
'그가 사우나로 돌아갔나?'라고 생각하며 감았던 눈을 떴다.
그는 나와 대각선 맞은편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때 파란색 수영복을 입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덩치가 제법 큰 여성이 클립보드에 종이와 펜을 들고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있었다. 짧게 대화를 하더니, 그녀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그가 있는 온탕으로 들어와서 30분가량 대화를 주고받고 받으며 종이에 메모를 하였다.
캐나다 수영장에 방문할 때마다 나는 머릿속에 물음표가 한가득 차오른다.
그녀는 누구일까?
뭐 하는 사람이지?
상담사일까?
경찰일까?
셜록홈스가 추리하듯 계속 상상하며 추리해 본다.
만약 그녀가 상담사라면, 범죄자에게도 인권을 존중해 주는 캐나다의 인권존중 법제화 시스템에 대한 경외심과 문화적 충격을 함께 받으며, 인권존중을 제대로 실천하는 이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존중하고 싶다.
그러나 그로 인해 다수가 느낄 수 있는 불편함과 공포심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걸까 라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집단주의, 관계주의 속에서 자란 한국인 내가 쉽게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파란 수영복의 그녀가 경찰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범죄자와 함께 온탕에서 같이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다니 어렵다. 이 놈의 나라.
여하튼 내 궁금증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구글에 검색을 했다.
[ 캐나다 전자 발찌 유무 ] 검색어를 타이핑하자마자 기사가 보였다.
2015년 3월 7일 자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
캐나다 교정본부(Correctional Service of Canada, CSC)가 올해부터 3년 동안 재범 위험성이 높은 전과범들에 대한 전자발찌 착용을 시범 실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에서는 이미 전자발찌가 사용되고 있으나, 그 사용 범위를 더 넓히려는 것이다. 이 사안은 지난 2월 확정되었으며, 그 자세한 내용을 담은 내부 문서가 오타와 대학(University of Ottawa)과 칼튼 대학(Carleton University)의 ‘범죄와 처벌에 대한 교육(Criminalization and Punishment Education Project)’ 프로젝트 팀에게 입수되어 공영방송 CBC 보도를 통해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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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하워드 소사이어티(John Howard Society of Canada)의 캐서린 라티머(Catherine Latimer)는 “전자발찌가 전과자들의 낙인(Stigma)으로 작용해 이들이 다시 사회로 되돌아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며 “그동안 경찰들이 해 온 감시 역할을 기기가 대체하게 되는 것 역시 이들의 사회성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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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전자발찌를 착용하게 될 사람들은 징역형을 선고받을 정도의 범죄를 저지르고 재범 가능성도 높게 평가된 사람들로 분류되며, 범죄 재발 위험성에 대해서는 적절한 체계적 조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사회도 원한다고 덧붙였다.
기사에서 본 전자발찌의 이미지는 오늘 내가 만난 남성이 착용하고 있던 전자 발찌와 같은 모양이었다. 기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그는 징역형을 선고받을 정도의 범죄를 저지르고 재범 가능성이 높은 중범죄자였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많은 대중이 모이는 공공장소에 그는 나타났다는 것이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몇 해 전 성범죄자 조두순이 출소하여 어느 지역으로 이사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이 그의 이주를 원하며 격하게 항의하는 것을 뉴스와 기사라 본 적이 있다. 한국인들은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특정 누군가를 곁에 두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특히 범죄자라면 더욱 그렇다.
범죄를 저지른 특정인이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공공장소에 출연한 것 자체는 말이 안 되는 일일테고, 이런 일이 한국의 수영장에서 벌어졌다면, 아마도 수영장을 폐쇄하는 상황까지 생기지 않았을까? 범죄자에게 공공장소에 일반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아마도 용기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면 전자발찌는 찬 사람에게 당장 나가라고 비난과 폭언을 퍼부었으리라.
문득 선진국은 중범죄자라고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자유권에 대해서 한없이 너그러운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공평하게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것을 명확히 말해주고 실천하는 이 나라는 범죄자에게도 이를 공평하게 적용하며 지킨다는 말인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캐나다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매일매일이 물음표를 던진다.
"우리가 중요한가? 내가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