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_ 일상
오랜만에 몸살이 왔다. 수개월 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씩 해결되니 그 일로 받던 압박과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밀려와 내 긴장의 끈이 느슨해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유학생활은 늘 긴장상태로 버티고 버티다가 문제가 하나씩 해결될 때마다 온몸에 타이트하게 조여놓은 나아가 풀리듯이 느슨해지면서 계속해서 졸음이 쏟아지는데 해야 할 일이 태산이 널려 있는 것이 늘 버겁다.
지난 8년의 시간 동안 혼자서 두 아이를 케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땐 정신도 신체도 많이 젊어서 버터 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자꾸 내 몸이 무너지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내가 만약 한국에 살았다면 가까운 병원에 가서 영양제 한 대 맞고 얼른 회복하려고 애를 쓸 테지만,
캐나다에서 영양제를 맞는 것은 들어 본 적도 없고, 쉬운이 아니었기에 언제나 자가치료 및 각종 영양제와 한국에서 가져온 약들로 매 순간을 대처해 나가는 것 같다.
아이들 등교시키고 전기장판을 켜고 누웠다. 평소에는 낮잠을 자거나 누워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늘 주방 한편에 마련된 나의 자리에서 365일 앉아 있다. 그러다 몸이 아플 때면 나도 모르게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간다. 오늘은 기력을 찾지 못하고 계속 잠이 왔다.
얼마를 잤을까?
2시부터 10분 간격으로 맞춰 놓은 알람
정말 몸이 침대와 함께 한 몸이 되었는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이들을 데려 온 후 밥을 챙기고 다시 소파에 누웠다. 춥기도 하고 온몸이 아프다.
그래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온수매트를 커놓은 침대 안으로 들어간다. 너무나 포근했고 침대 속으로 내 몸이 점점 빠져들어가는 기분으로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잠이 들며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잘하는 것은 뭐지?
난 뭐 하며 살고 싶은 거지?
난 지금까지 뭘 해왔지?
내가 뭘 했던 사람인거지?
요즘 이런 생각들이 너무 많이 든다.
내가 아직 어리다고 착각하면서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고 단언하고 살았는데 현실의 내 몸뚱이는
이제 한계를 느낀다. 내 몸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이제는 내가 해 낼 수 없는 영역 아주 많아졌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나이를 먹음에 있어서 이제는 내가 해왔던 일이 아닌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살아봐야지라는 마음을 먹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진짜 무엇인지 아직도 찾지 못하고 헤맨다.
너무 많은 생각 속에 잠이 들어서일까?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어렴풋이 들었던 말.
"아무도 너를 지켜줄 수 없어. 네가 너를 지키는 거지..."
믿도 끝도 없이 그 말만 기억나는 꿈.
눈을 떴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 말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는 말.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말.
머리를 한방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난 8년의 시간이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기에 나는 정말 후회는 없다. 아깝지도 않고 마냥 아이들을 바라보면 나에게는 감동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 일어나려고 애쓰지 말자. 내 몸이 회복하려고 졸린 거겠지. 졸리면 안 졸려질 때까지 계속 자면 어때서! 그래도 괜찮은 거 아니야? 나 그 정도는 나 자신에게 해줘도 되는 거잖아?'
시간이 지날 수 록 몸은 천근만근 무겁다. 자도 자도 컨디션은 회복되지 않고 일어날 기력조차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약을 먹고 싶지 않았다. 버텨보고 싶었다. 내 몸이 자연적으로 스스로 회복해 내는 시간을 기다려주고 싶었다.
그간 내 몸과 마음의 시간을 기다려줘 본 적이 없었다. 미안했다.
몸아! 그동안 기다려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앞으로만 달려가느라 너의 모든 기능들이 지쳐있던 것을 몰랐다.
그간 버텨내느라 애썼고 버텨줘서 고맙다.
이젠 너에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회복의 시간을 많이 주도록 노력할게!
사랑한다. 내 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