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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 Sep 27. 2022

캐나다 스시집

스시온의 주방은 오늘도 북적인다

스시온의 주방은 오늘도 북적인다. 주방에만 13명의 직원이 꼬불꼬불 좁은 길을 몸을 바짝 붙여가며 인사말과 짧은 대화를 나누며 빠르게 지나친다. 각자의 포지션에서 맡겨진 일들을 해낸다. 한 곳이라도 지체되면 전체가 지체되게 된다. 디시 워시하는 아저씨는 욕쟁이다. 가끔 그릇이 많을 때는 쨍그랑 소리가 주방 전체에 자주 퍼진다. 평일에는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아저씨는 주말에 쉬어서 뭐하냐며 놀러 오는 거라고, 서울에 집 한 채도 있어서 아쉬울 것 없는 처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심통이 날 때는 주방에서 설거지나 한다고 그릇마저 나를 무시한다며 쩌렁쩌렁 소리를 지른다. 나는 잠시 아저씨와 겹치는 일을 했었는데, 아저씨가 나를 이뻐하는 것을 알면서도 거친 표현들에 마음이 자주 상했다. 나는 내 삶에 너무나 많은 어른들을 참아주고 있었기에 이 아저씨마저 참아줄 여유가 없어 아저씨가 무례하게 굴면 자주 무시하고 모른 척한다.



나보다 2달 먼저 들어온 방글라데시 까지는 한국에서 5년 정도 일했기에 한국말을 잘해서 누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빈둥대는 성격이라 자주 지각하고 가책 없이 무단결근하며 재료 준비를 하다가 오랫동안 사라지기도 한다. 더운 나라 사람들이 시간에 관대하다고 말하니, 언니들은 나는 그런 편견 가지고 사람을 보지 않는다며, 나를 인종 차별하는 사람으로 만들 만큼까지는 주방의 귀염둥이다. 이슬람인 까지는 고기밖에 없는 캐나다에서 고기를 먹지 않아 주방장님이 점심을 따로 만들어준다. 두 달 전 부인이 방글라데시에서 와서 눈에 띄게 배가 부풀러서 오랫동안 놀림을 받았다. “누나 새우 주세요. 누나 내가 할게요. 이거 누나가 했어요?”라며 귀여운 발음에 언니들은 고된 노동에도 깔깔깔 웃는다. 나 또한 까지가 한국인들 사이에서 외롭지 않을까, 함부로 소비되지 않을까 주시한다. 주방에서 유일하게 내가 질투하는 사람이다. 저렇게 여유를 부리면 서일 해도 귀여움과 안타까움은 독차지하니 말이다.



스시맨들은 이상한 공통점들이 있다. 모두 문신을 하고 거구의 체형의 자주 일본어를 쓴다는 것이다. 손님들이 들어오면 이럇샤이~나에게 튀김을 부탁할 때는 누님~오네가이! 부탁해요, 쓰미마생 등 짧은 일본어를 쓰지만 아무도 일본어를 공부하지는 않았다. 캐나다의 한국인이 하는 일식집, 아이러니하다. 내가 일하는 뎀뿌라의 80프로는 스시맨들이 필요한 재료를 만든다. 스시맨들이앞에서 오더를 하면 뒤에서 내가 듣고, 앞뒤로 주고받는 일이다. 서로의 티키타카가 굉장히 중요하다, 바쁘고 소음이 많은 주방에서 큰소리로 오더를 하고 확인을 하고 재빠르게 줘야 하는 일이고, 아주 바쁜 시간에도 짜증 없이 재료를 빼주고, 그것에 대한 감사함의 표시까지 해줘야 12시간의 시간을 잘 마무리할 수 있다. 시간의 지체됨 없이 주고받고 가 잘되었을 때, 큰 쾌감을 느낀다.강도 높은 긴 시간의 노동은 사람들 때문에 버틸 수 있었고, 도저히 할 수 없을 때 나오는 헛웃음,전우애, 거침없는 농담, 아직 어리기에 용서되는 모든 것들을 나도 조금은 즐기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체하여 소화제를 먹는 일이 잦아졌다. 재료준비팀에 새로 온 아주머니는 나를 단번에 사모라는 것을 알아보았고, 이 동네 모든 교회의 사정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권사님이었다. 한국의 권위의식이 가득한 교회를 비판하고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며 우리도 달라져야 한다며 제법 말이 통해 위로가 되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의 사역하는 이야기를 했더니 “사모가 그런 일도 해?” “그럼요, 사모라서가 아니라, 제 사명이라서 해요”했더니, “한국에서 온 사모들이 지들이 뭐라고 대접만 받아서 그런지 캐나다 오면 엉덩이 무거워서 움직이지를 않는다고, 시대가 변했다고, 우리 모두가 제사장인데 사역하지 않는 사역자는 필요 없다며 캐나다는 대접 안 해준다고, 사모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이 엉덩이가 가벼워야지! 자신의 엉덩이를 연신 쳐댔다. 누군가가 자신의 엉덩이의 가벼움을 체크하는지도 모를 많은 사모들에 대해 대리 수치심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주방에서 어디서건 재빠르게

나를 찾아와 캐나다에서 눌러앉은 많은 목사와 아이들 학업으로 사명을 저버렸다는 사모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난 깨달았다. 그들이 말하는 엉덩이 무겁고 고개 뻣뻣한 사모들은 이런 말들을 듣지 않는다. 들을 기회도 없다. 들을 관계도 만들지 않는다. 늘 듣는 건 내 몫이고 들을 관계와 자리에 있는 나는 더 눈치 보고 눌리며 억압당하는 상처받은 사모의 얼굴이 된다. 주방은 더 이상 내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교회에서 빠져나와 느꼈던 주방의 해방감이 사라졌다.


일본 사람도 아니면서 일본 메뉴도 아니면서 일본식의 메뉴와 언어를 하는 스시온의 주방, 안성과 안산을 구분할 줄 아는 한국만 잘하는 방글라데시인 까지, 있는 건 돈밖에 없다며 자랑하는 욕쟁이 아저씨, 아들이 아이돌이고 아내가 서프라이즈 배우이지만 골프 치려고 혼자 캐나다에 산다는 아저씨, 거구의 문신한 팔에 날카로운 칼로 연어의 배를 가르는 손이 뽀송뽀송한 스시맨들, 한국 여자랑 많이 사귀어봐서 한국말을 곧잘 알아듣는 캐나다인 크리스찬, 돈을 너무 좋아해 영어 이름 이캐쉬인, 이미 주식부자, 땅부자라는 핫푸드 언니, 그리고 푸근한 미소를 가지고 있지만 순간 두꺼비처럼 욕심 많은 얼굴로 변하는 권사님.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면 교회를 다니는지 어느 교회인지 물어봐서 이곳에 성도가 한 명도 없음을 늘 확인하는 사모인 나, 저마다의 이야기와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스시온은 오늘도 북적북적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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