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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요리하는 한의사가 되었나

나는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다. 비염, 축농증, 아토피...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이 코를 너무 풀어서 학교 수업이 안된다고 수학선생님이 짜증을 많이 내시던 기억이 난다.(늦었지만 선생님께 면학분위기를 해친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 그러던 중 대학에 진학하면서 독감에 걸리고 난 후 천식이란 병이 나에게 찾아왔다. 나중에 의학을 공부하면서 알게된 것이지만 비염, 아토피, 천식은 모두 연결된 것이었다. 미리 알았다면 천식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했을텐데 아쉽지만 지나간 것은 후회하지 않는것이 좋다. 



나는 긍정적인 편이라 이왕? 건강이 안 좋아졌으니 한의사가 되어 내 병을 치료해야지 해서 어렵게 다시 들어간 한의대에서 연이은 독감에 천식은 점점 더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것이 되어 버렸다. 중증 천식환자로 천식발작이 찾아오고  숨을 제대로 쉴수 없는 밤들이 이어지면서 한가닥 아쉬운 것은 청춘을 좋은 날로 오롯이 느끼지 못하는 현실이였다. 정말 하루 종일 숨이 차서 고통스럽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시간들이였다. 그런시간들이 몇년에 걸쳐 진행되다보니 긍정의 아이콘이였던 나에게도 가끔은 다 내려놓고 싶은 나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봄날 아침이였던거 같다. 날은 좋았고 아침에 학교가는 활기찬 친구들을 보면서 거꾸로 몸이 안 좋아 학교도 가지 못하고 방안에 우두커니 혼자 있는 나에게 다짐을 했다.  이대로 죽을수는 없다..꼭 치료 방법을 찾아보자.



예과 2학년이 지나고 이후 한의대 생활은 나의 병을 고치기 위한 나름의 고군분투의 시간이었다. 전국에 유명하다는 대학병원, 의원, 한의원을 가리지 않고 치료를 받기위해라면 그곳이 어디라도 찾아갔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면 그게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보아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절망적이었고 졸업을 하던 해까지도 숨을 헐떡이는 생활은 무심하게 지속되었다. 그 당시 내 꿈은 친구들과 맥주 한잔을 하고 한의사로서의 삶을 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정도면 나는 인생에 만족할꺼 같았다. 하지만 터널의 끝이 안 보이는 것처럼 정말 치료가 쉽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학교에 다니던 한의대 선배가 어느 날 나의 이야기를 듣고 본인이 공부하는 선생님에게 나를 데리고 갔다. 아픈 사람이 본인이 아프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 사실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선배에게 아픈 이야기를 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선배 손을 잡고 찾아간 선생님은 생각보다 젊었다. 그래서 별로 믿음이 안 갔다. 명의라고 소문난 분이라고 해서 수염에 흰 도포자락 정도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나이는 지긋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젋었다. 그리고 간단한 진료후 처방은 일주일 한약이 끝. 일주일 한번 먹어보라고 했다. 난 미안하지만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분이 명의일지는 몰라도 내병은 잘 모르는 구나. 어떻게 몇년 고생한 병이 일주일 약을 먹고 낫겠는가. 


그리고 일주일후 거짓말처럼 숨차던 것이 진정되기 시작했고 발작이 줄어드니 밤에 잠을 잘수 있었다. "새로 태어난거 같아요" 라는 노래가사처럼 몸이 병으로부터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선생님에게 찾아가 제자를 청하고 한의학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말씀은 한의학에서는 "토생금(土生金)" , 토는 위장, 금은 폐 즉, 위장의 기능이 정상일때 폐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하셨다. 나의 폐병은 결국 평소 불규칙한 식생활과 잘못된 식이습관이 누적되어 위장기능을 떨어뜨렸고 이것이 폐기능에 문제를 만든 근본원인이라는 것이였다. 



실제로 나는 어릴때부터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했고 밤마다 라면이며 과자같은 우리가 흔히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는 음식들을 즐겨했다. 습관적으로 과식을 했으며 자다가도 치킨이나 튀김같은 기름진 음식 먹으라고 하면 깨는 사람이였다. 스승님은 내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려면 내 몸을 병으로 이끈 잘못된 식생활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약식동원, 즉 좋은 음식은 약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을 항상 강조하셨다. 


이럴때는 이런 음식을 먹어야 하고 , 이런 체질은 이 음식을 멀리해야한다등등 스승님을 모시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다니며 한의학과 음식재료를 공부를 했던 지난 15년을 돌이켜보면 매순간 스승이 전해주는 약식동원의 의미와 응용 그리고 한의학과 접목을 한 참 소중한 시간들이였다. 



나는 내 몸을 회복하면서 깨달은 약식동원의 정신을 가지고 한의사가 되어 환자를 진료하면서 약만큼 중요한 것이 건강한 식생활이라는 것을 많이 말씀드렸다. 그러다보니 환자분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많은 질문을 주셨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찾다보니 요리 못하던 나는 직접 요리연구를 해서 음식 조리법까지 알려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병원직원이 그 과정이 재미있었는지 요리하는 모습을 찍어 올린 유튜브영상을 보고 공중파 방송에서 연락이 왔다. 


환자들에게 요리해주는 한의사의 사연을 방송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방송이라는 단어가 낯설었지만 흥미로운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재미있는 추억이 될것 같았다. 그런데 부모님이 출연을 반대했다. 이유는 과거 아팠던 이야기하면 장가를 못간다는 것이였다.  방송국에는 미안했지만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워서 방송출연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장가를 안간걸 보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셨어도 됐는데 싶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후 다른 방송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그런데 그 작가님 말씀이 "약식동원으로 건강을 회복한 이야기가 질병으로 힘든 다른분들에게 희망이 될꺼 같아요" 라고 했다. 그말이 이상하게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팠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의학과 올바른 식생활로 건강을 회복해서 성실히 한의사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어쩌면 예전의 힘들었던 나와 같은 사람에게 힘이 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방송출연을 하게 되었다. 



좋은아침 : 과거의 질병과 극복의 과정을 고백하는 유승선 : SBS



그렇게 나는 요리하는 한의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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