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다한 이탈리아 순례
예식장 한가한 평일 저녁 얼렁뚱땅 결혼식 해치우고 나는 회사에서 하던 프로젝트로, 신랑은 석사 논문 마무리로 돌아가야 했기에 신혼여행을 연말 휴가까지 미뤘다. ‘배낭 메고 세계로’ 책자를 들고 두꺼운 겨울옷으로 피난 보따리만해진 배낭을 고지식하게 짊어지고 호텔방 하나 예약 안 해놓고 무작정 이탈리아, 그리스 여행길에 나섰다. 핸드폰으로 인터넷 예약을 척척 하는 지금과는 다른 시절이다. 책자에 간략하게 그려 놓은 지도를 들고 숙박업소를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영어와 이탈리아어 그 중간 어디쯤에서 힘겨운 흥정을 하다 보면 짧은 겨울해가 진다. 낯선 도시에서 짊어진 배낭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은 방향 모르는 컴컴한 거리에서 아직도 잘 곳을 찾아야 한다는 긴장감이었다. 빈약한 예산으로 일정만 길게 늘린 배낭 신혼 여행은 해보니 매우 ‘비추’다. 하마터면 헤어져서 각자 올 뻔했다. 한 달 넘게 이탈리아에 있으면서 이탈리안 레스토랑 딱 한번 가봤다. 아쉬운 마음에 20주년엔 호텔 예약하고 매일 저녁 레스토랑 순례하는 짧지만 풍족한 여행을 하리라 몇 해나 다짐했다.
드디어 20주년...
로마는 커녕, 오클랜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식당에서 식사할 수도 없는 록다운이다. 테이크 아웃해서 피자, 파스타, 리조또 집에서 먹었다. 아무래도 이탈리아랑 궁합이 잘 안 맞나보다. 시절은 수상한데 세월은 빠르다.
2021. 1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