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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린 Jan 05. 2021

수험생 '육아'일기

천 개의 조각 맞추기

우리 집에 사는 청소년은 올해로 낭랑 18세가 될 터이다. 아직 생일이 멀었으니 만 17세라고는 해도 올해 고3 수험생으로 이제 청소년기의 마지막 해를 막 시작했다고 해야겠다. 20년 전 인생 리셋의 꿈을 안고 결혼 8개월 만에 뉴질랜드 이민을 감행해서 낳은 아이라서, 입시 전쟁통은 피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말 놀아도 너무 논다. 그러나 그 마음 한 구석에 있는 불안과 우울이 인스타그램과 스냅챗 사이를 오가며 핸드폰 스크린에서 떠나지 못하는 눈동자에 어른거린다. 아무리 대학 서열이 우습고, 기성세대가 강요하는 성공의 기준에 콧방귀를 뀌지만, 어디 그 마음이 편안하기만 할까. 밉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니컬한 무표정 뒤에 감춰진 응어리가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부모로서 큰 걱정이다. 오늘도 아이의 옛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천 개의 조각을 맞추는 기분으로 닫힌 문 너머 그림자의 실체를 찾아본다.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당초 계획과는 달리 이민 초기에 아이가 생겼다. 원래 뭐든 걸 책으로 배워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에서 별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영어와 한국어로 된 육아서적 및 인터넷 자료를 면밀하게 검색하여 배가 미처 불러오기도 전에 육아의 달인이 된 듯, 또래 임산부들에게 육아의 기본을 교육심리학적 관점에서,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문화인류학적 이해로, 또 아이의 장래 계획은 나름대로의 정치 사회적 원칙에 입각해 설파했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부끄럽다. 역시 자식 두고 아는 척하는 건 위험하다.)


아이는 모유의 부족한 양을 아무 거부감 없이 분유로 채우면서 생후 백일에 벌써 두 자릿수 몸무게를 달성한 우량아로 컸다. 철저한 영양학적 계산으로 만든, 그렇지만 도저히 맛을 아는 인간이 먹기 어려운 이유식을 잘도 받아먹으면서 키도 크고 눈망울도 제법 뚜렷하게 맞추고 모든 것에 적당한 정도의 호기심과 자제력을 보이면서 무럭무럭 자랐다. 돌이 되기도 전에, 다시 시작한 학부 공부로 돌아간 엄마(나)를 다 이해한다는 듯 유아원에도 너무 잘 적응해서 주변 사람들을 감탄시키더니, 사람다운 대화가 가능하게 된 두 살 무렵에는 그림과 노래에 심취하여 미술과 노래 부르기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를 모두 설레게 했다. 동양인이 거의 없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반들거리는 새까만 머리에 새우눈을 하고 사방 미소를 뿌리면서 언니들과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더니, 어느 날 교문 앞에서 피아노 학원 선전지를 나눠 주던 러시아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일곱 살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엄청난 학습 속도로 뭘 조금만 잘해도 금방 감탄사를 연발하는 친절한 이모 삼촌들(우리 부부의 지인들)에게 천재 아니냐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루 한두 시간의 연습만으로 일취월장, 사립 여중고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부모에게 지금 생각해도 짜릿할 정도의 환희를 선사했다. 그게 벌써 7년 전이다. 거기서 아이의 성장이 멈춘 듯하다.



워낙 어린애답지 않게 체면을 좀 차리는 편이고 뭐든 확 덤벼드는 성품이 아니었던 아이는, 생활수준 차이가 어마어마한 친구들과 섞여 지내면서 전에 없이 까칠해졌다. 차츰 말수가 적어지더니 피아노 연습도 마지못해 하는 것이 눈에 띌 정도였다. 차차 2차 성징이 나타나 젓가락 같던 몸에 살집이 붙고 여드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둔해지고, 손거울이건 화장실 거울이건 자동차 백미러 건 얼굴을 비쳐 볼 수 있을 때마다 이마를 찌푸리며 여드름을 셌다. 친구들이 다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사달라며 은근히 골을 부리기 시작하더니, 내가 쓰던 낡은 아이폰3를 가지고 그룹채팅에 빠져 들었다. 피아노 연습을 한다면서 앉아서는 왼손 연습을 할 때는 오른손으로, 오른손 연습을 할 때는 왼손으로 채팅을 하는 신기를 부리고, 악보 사이에 스마트폰을 숨겨 놓고 제자리걸음으로 연습을 하면서 채팅방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메시지를 읽고 있었다. 그때에도 역시 이른 사춘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책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각종 경험담과 충고, 전문가의 조언 등등을 뒤지면서 '행동 교정'을 목표로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는 전략을 펼쳤으나, 무참히 실패. 날마다 다그침과 훈계로 저녁이 저물었다.


당연히 성적은 완만한 하강 곡선으로 중위권에 안착해서 학구파 엄마를 안달 나게 했다. 과외는 불가, 라는 원칙이 자꾸 흔들린 것도 이때였다.(여기도 사립학교 학생들은 다수의 과외를 받는다. 어디나 그렇듯 여유가 있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지원과 투자는 교육에 집중되기 마련.) 박사 논문 제출과 함께 시작한 정신분석가 과정에 매여서 주중에는 학교 강의, 주말에는 통신 수업, 그리고 늦은 저녁 시간에는 각종 리딩 그룹으로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던 때여서 아이를 차분히 돌보기보다는 목표와 계획을 세워 주고 결과를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피아노 대회 준비만으로도 벅찼을 아이는 공립 초등학교에서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시험에다가, 소셜라이징의 복잡한 눈치싸움에 지쳐 갔을 것이다. 점점 교문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난 못해"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너무 기대하지 마"라는 아이의 나를 향한 경고는 시험 보는 날이나 대회 나가는 날 아침에 늘 내 신경을 건드렸다. 그리고 이제 고3. 성적은 바닥이고, 노는 것은 최상위다. 작년 한 해 자발적 등교 거부과 락다운을 반복하며 이제 원래 선택한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상황이 이럴진대 결의에 찬 열공은커녕, 공부 근처로 대화의 방향이 돌아 가면 거의 알레르기 반응 수준이다.



컴퓨터 사진첩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자니, 가슴 한구석이 뻐근하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는 아이 얼굴이 점점 어려지고, 환해지고, 당당하다. 어디쯤에서 이 빛을 잃었는지 안타깝고 아련하다. 각종 육아 서적을 읽어 보았지만, 수험생 '육아'에 관한 어떤 조언도 찾지 못했다. 수험생 '지도' 혹은 수험생 '입시전략'이야 차고 넘치게 흔하지만. 올 한 해 고3인 우리 집 청소년과 함께 365개의 조각을 차분히 맞추고 나면 아이도 나도 지금 이 끔찍한 혼란과 고뇌의 밑그림을 알아볼 수 있을까? "난 못해", "너무 기대하지 마" - 이제 자기부정의 경고가 내 목소리로 들린다. 그래도 하루가 가고 보니, 아무렇게나 던져진 이 한 조각도 언젠가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2021. 1. 5.


<어느 해 연말 휴가에 세 식구가 천 개의 조각으로 쪼개진 쇠라의 점묘화,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작품을 함께 맞췄다. 삼일 꼬박 걸렸다. 아직 사춘기 전이었던 아이가 식탁 주변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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