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릴 때 부터 연기에 소질을 보이며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던 여배우가 이십대, 꽃처럼 활짝 피어야 할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배경에는 어린 나이에 세상에 나와 가족을 부양해왔다는 이야기가 들려 왔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선한 인상과 중저음의 목소리로 많은 3,40대 여성팬들을 매료시켰던 중년의 남자 배우 역시 휘몰아치는 사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주연 배우로서 세계적인 작품도 몇 개를 남겨, 인기와 명예를 얻었음에도...
일찍 세상에 나와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젊은 배우,
돈과 명예, 사랑하는 가족까지 있었는데도 삶을 놓아버린 사람들,
그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주어진 생을 다 채우지 못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일까?
너무 이른 나이에 감당해야 했던 책임,
기댈 곳 없이 홀로 버텨야 했던 무게,
주위의 시선과 기대로 “괜찮은 척” 해야 했던 시간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제대로 의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방법도,
도움을 요청해도 된다는, 그 단순한 사실마저 잊은 채...
그래서 결국, 스스로를 밀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모두, 이토록 자립에 실패하고 있는 걸까?”
이건 단지 유명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스스로 자립한 성인이 되면 누구나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데,
마흔이 넘어서도 부모에게 용돈 받는 청년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자식에게 기대는 부모들,
충분히 돈과 명예도 가졌는데 너무나 일찍 생을 마감한 사람들…
이런 풍경이 우리에게 점점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닐까?
취직이 안되면 부모에게 손 벌리는 것을 당연하게,
부모가 집을 장만해주지 않으니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당연하게,
나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에게 기대는 것도 당연하게,
살다가 힘들면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도 당연하게,
우리도 모르게 자연스레 이슬비에 옷이 젖듯, 이런 문화속에 우리도 젖어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가 되면 누구나 부모나 양육자로부터 떨어져 나와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세상에 나가 스스로 서기까지 약 20년. 지금 백세 시대를 기준으로 20퍼센트의 기간에 해당하는 그 기간 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할까?
스스로 서기 위해,
스스로 뿌리 내리기 위해,
세상의 온갖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다른 식물의 줄기나 뿌리에 기생하여 자라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큰 꽃이 되는 라플레시아 꽃처럼, 두메오리나무의 뿌리에 기생해 중국 진시황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불로초 오리나무 더부살이처럼,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만 자신의 광합성으로는 부족해 다른 나무에 기생해서 자라며 부족한 영양분을 흡수하는 겨우살이처럼....
세상에 나오기 전 그 기간 만큼은 혼자 섣불리 서려하지 말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에너지를 얻는데에 집중하고 온 힘을 다해 내 안에 축적시켜야 한다. 기생충이 되어 한평생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만큼은 기생하되 결국 그 시간을 통해 너만의 꽃을 피우기 위한 의존의 시간을 갖어야 한다.
태아가 탯줄을 통해 영양을 받아 생명력을 키워내는 것처럼,
온실 속 아기 식물이 세상에 나가기 전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세우며 준비하는 것처럼,
배터리를 충전하듯, 에너지를 다 써버린 몸과 마음은 누군가의 온기와 돌봄을 통해 다시 힘을 얻어야 한다.
그 시간은 홀로 서기 위해 힘을 쌓는 성장의 시간이며 충전의 시간이다.
그 절대적인 의존의 시간을 지나야 우리는 비로소 혼자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혼자 서야 한다는 조급함보다, 기대어야 할 때 기댈 수 있는 용기가 더 절실하다.
기꺼이 의존하는 사람만이, 결국 온전히 자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