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 성장기
클리어 파일에 연애시절 받았던 편지를 보관했었다. 심지어 지금 남편과의 편지도 아닌 꼬꼬마 시절 만났던 남자 친구들 의 편지를... 사실 20살 무렵 무척 나를 좋아해 주던 남자 사람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시절 이상하게도 그 친구가 남자로 보이지 않았는데 그 친구는 나를 친구 이상으로 좋아해 줬다. 군대를 가서도 꼬박꼬박 편지를 하고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도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직장을 잡을 만큼 나를 좋아해 줬다. 아무 대가 없이 그렇게 나를 좋아해 주는 것만으로 고맙고 감사했지만 친구 이상의 감정은 생기지 않았었다. 그 친구가 군대를 가고 우리는 꼬박꼬박 편지를 주고받았다.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군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도 알려주고 나의 고민도 그 친구에게는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20살 가장 힘들기도 했고 애틋하기도 했던 그 시절 주고받았던 편지라 그런지 버리기가 망설여졌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과 대화 도중 그 편지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니 남편이 의아해하면서 왜 버리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머뭇거렸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 시절 아름다웠던 추억도 지금 남편은 싫어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나도 남편이 연애시절 주고받았던 편지가 있다면 아직도 그 여자를 좋아하느냐고 왜 버리지 못하냐고 도끼눈을 뜨고 남편을 들들 볶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편지를 아이가 볼걸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이가 본다고 특별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진 않지만 아이에게 아빠 외 다른 남자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귀엽고 풋풋한 추억은 가슴속에 묻고 편지는 처분하기로 마음먹었다.
풋풋한 추억을 간직하고 싶었던 건지 그 시절 날 좋아해 줬던 남자들이 있었단 걸 남편에게 과시하려고 남겨둔 건지 모르겠지만 편지를 버리고 나니 마음 한편에 상쾌해졌다. 이사 때마다 그 편지 들을 들고 이사하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추억도 미니멀하게 하자는 생각의 전환이 나를 좀 더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오늘도 나는 좀 더 단순한 삶에 한 발자국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