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쁜손 Feb 10. 2023

봄이 오는 소리


 6주간의 요양보호사 과정이 드디어 끝났다. 오전 9시부터 수업 시작해서 5시 20분간 하루종일 듣는 강의가-많이 그동안 피곤했는지 오늘 늦잠을 자는 바람에 새벽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하루의 시작을 예배로, 기도로 맞이한 지 거의 1년이 다 돼간다. 이 작은 루틴이 내 삶에 얼마나 소중한지... 무너지려 할 때마다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는데 그동안 수업과 병행하면서 많이 힘에 부쳤나 보다. 늦잠으로 온라인 예배를 대신하며 오늘도 하루의 무사와 평안을 간구하는 의식을 치른다.


  기도를 드리는 눈앞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인간임을 매번 깨달으며 예수님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고 다짐하는 일. 내가 드리는 예배의 의미이다. 비록 번번이 내 다짐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나를 바라보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한걸음, 한 걸음씩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이른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린다. 안개 낀 캄캄한 도로를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멀리 보이는 교회 철탑의 십자가를 바라보며-오늘도 하루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는 이 시간이 너무 귀하다. 타닥타닥 우산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잘 익은 음악소리처럼 들리고 어느새 봄을 향해 가고 있는 계절의 흐름이 온몸에 느껴진다. '이 비가 그치면 봄이 성큼 다가오지 않을까? ' 하는 설렘 가득한 기대를 해본다. 설령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온다 해도 마음은 이미 봄빛으로 물들어 있는 나의 희망을, 나의 사랑과 감사를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교회 옆에 위치한 꿈 꾸다에 풍경소리를 들으며 들어선다. 진하고 향긋한 커피 향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오랜만에 브런치 앱 화면을 켰다. 겨울 내내 동면했던 나의 자아가 이제 비로소 깨어나는 느낌이 가슴을 뛰게 한다. 검은 활자와 깊고 진한 커피 그리고 창밖의 비 오는 거리풍경. 콩닥콩닥 가슴 뛰는 소리가 나의 뺨을 붉게 물들인다. 살아있다는 생각에, 온몸의 예리한 감각기관들이 우주에 충만한 봄기운을 빨아들인다.

 눈을 들어 흐린 잿빛 하늘과 촉촉하게 젖은 대지 위를 분주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출근길의 풍경을 바라본다. 매일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이 이렇게 귀한지 나는 오랜 시간 몰랐었다. 파랑새는 깊고 깊은 숲 속에 사는, 내가 찾기에는 너무 어려운 행복의 상징이라고 여겨졌었는데... 다행히 이제는 내가 지금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큰 행복임을 안다.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 나는 참 많이도 헤맸었고 마음의 지옥에서 끊임없이 고통받아왔었다. 인생의 8할은 고통의 순간이었지만 그 고난과 연단은 나를 깎고 낮아지게 만들었다. 진정한 행복은 내 곁에 가까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게 행복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주었다. 난 나의 고통의 길을 이제는 사랑할 수 있다.


 혹독했던 우리의 겨울도 이제는 자연의 순리와 법칙 안에서는 이제 곧 떠나갈 것이다. 다시 내 가슴에 봄의 싹이 움튼다. 그리 오래되지 않아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들도 필 것이다. 그리고 낙엽이 다시 지고 온통 동토의 땅이 다시 우리를 찾아오겠지만 늘 그렇듯 우리가 꿈꾸는 봄도 언젠가는 희망을 노래하며 춤추듯 다가올 것이다.

 나는 이 오래된 견고한 자연의 순환을 믿으며 오늘도 하루를 기쁨 속에 맞이한다. 흙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희망은 나를 강하게 만들 것이다.


 어디선가 꽁꽁 얼어붙은 개울밑에 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회색빛 나뭇가지에 단단하고 야무진 싹이 움트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다시 소생하는 봄과 함께 나는 부활한다. 모든 꿈 꾸는 자들에게 축복이 함께 하기를 이 아침에 기도한다.

 


 

작가의 이전글 1. 가을 나들이.(남한산성에서 두물머리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