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나의 그간의 공백을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반년 조금 넘게 내 인생 후반기에 나의 히스토리에 중차대한 일이 발생하였으니 지금도 꿈만 같고 믿기지 않는다. 삼십 대 후반부터 별거에 들어가 마흔일곱에 이혼했던 내게- 쉰일곱, 이혼한 지 십 년 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남은 인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새 출발을 한지 보름이 조금 넘었다.
늘 짝꿍에대한 기도를 하던 내가 그 기도를 거의 포기할 무렵 단골 카페의 사장이자 내 친구가 된 명희 씨의 소개로 만난 나의 반려자. 살아온 환경과 성향이 너무나도 다르지만 믿음이란 공통점 하나로 남은 인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여러 가지 필요한 조건들보다는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관이 신앙, 주 안에서의 평안과 행복이라는 큰 틀이 결국은 우리가 하나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이 되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암 유병자였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함께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가 난 신기하고 고마웠다.
지난해 말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혼 후 직장 다니는 동생을 대신해서 조카들을 돌보는 일로 생계를 꾸리던 내게-갑작스러운 동생의 퇴직은 일자리를 잃는다는 의미였고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했다. 전업주부로 오랜 세월 있었던 내게 이혼 후의 삶은 온통 두려움, 그 자체였다. 성정이 여리고 소녀 같은 내게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적지 않은 나이와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요양보호사과정을 등록했고 시작한 지 며칠이 안되었을 때 명희 씨의 전화를 받았다.
카페 오픈한 지 3년이 된 그녀의 가게에 단골로, 친구로 지낸 사이인 우리. 내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해도 나란 사람의 성품을 그녀가 나를 나쁘게 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가 교회 성가대서 봉사하면서 알던 집사님과 만나보겠냐고 어느 날 넌지시 내게 물었다.
집과 카페 일터밖에 모르는 내게 이성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더욱이 신앙이 있는 믿음의 싱글을 만난다는 것도 힘든 일이어서 별 망설임 없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30분째 나를 기다리게 하는 남자에게 조금은 화가 났지만 무언가 사정이 있겠지 생각하며 잠시 멍하니 어두운 바깥 풍경을 보고 있을 때 한 중년의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오후 9시가 넘은 시간. 명희 씨는 자리를 피해 준다고 카페를 내게 맡기고 볼일을 보러 나갔고 전혀 첫인상이 내 이상형과 거리가 먼 한 남자가 내 앞에 앉았으니 참으로 당혹스럽고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잠시의 침묵을 뚫고 허스키한 목소리의 남성이 살아온 지난날의 잘못들과 과오를 내게 고백하듯 털어놓는 간증이 시간. 아마 한 시간쯤 흘렀을까...
처음 보는 맞선녀에게 털어놓는 의도를 난 나에 대한 거절로 받아들였고 늦은 시간이라 그 남자의 일방적인 간증만 듣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마음에 들지도 않은 남자에게 차였다고 피식 웃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느낌만 남아있다. 다 죽은 줄 알았던 연애세포가 내게도 남아있구나 하는 신기함. 이성과 깊은 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만으로 신기하고 두근거렸다.
졸음이 밀려와 시간을 보니 새벽 1시. 분명 비호감이었던 사람인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호감으로 바뀌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