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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Feb 16. 2024

얻은 것과 잃은 것.

재혼 에피소드


 잔뜩 아침부터 날씨가 흐렸다. 부리나케 집 앞 카페로 뛰어가는 내 모습이 확실한 카페인 중독자의 모습이다. 아니, 그러기엔 석연찮은 구석도 있다. 얼마 전 커피 머신과 드립커피 추출 기계를 들여놓고도 여전히 출근하는 남편이 집을 나가면 카페로 달려간다. 카페, 아니 나만의 동굴로 들어가는 일종의 의식이다.

 거참 이상하게도 남편이 출근하면 하루종일 집안은 나만의 공간이 되는데 집안에서는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엔 2프로 부족하다. 집이 좋고 크기를 떠나 창이 커서 사계절의 풍경을 보는 게 소원이었던 내게 이 집은 안성맞춤이다. 수도권 외곽이라 경치는 그다지 볼 건 없지만 눈이 오는 날이나 석양을 볼 때는 가슴 두근거리는 소녀 때로 돌아가게 해주는 판타지가 있는 창이 있는 집이다. 난 이런 공간을 아주 사랑하고 감사한다.

 그런데도 완전한 자유를 누릴 때는 도시 외곽 아직 개발이 덜 된 아파트 근처 작은 카페에서 하루를 충전한다. 혼자 살 때의 루틴인지는 모르겠다. 새벽마다 예배 후 들린 카페에서 종종 마주치는 나의 깊은 내면을 그리워하는지도...


 

  혼자 살면서 누리던 자유보다는 적적함에 사람이 그리워질 무렵 남편을 만난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새댁이다. 조금은 어색하고 우습지만 이 집안에선 아직 낯선 이방인임은 틀림없다. 시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끈끈한 우애를 자랑하는 육 남매의 맏이인 남편은 나를 가끔 당황스럽게 만들고 동서들과 형제들도 아직은 나란 존재의 성품을 파악하려 애쓰며 약간의 경계감을 드러내는 상황이랄까... 그렇다고 불쾌하거나 기분 나쁘지는 않다. 나 역시 잔뜩 촉각을 세우고 낯선 가족들과의 궁합을 맞추려 애쓰니 이런 본능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육 남매의 맏이, 현석이와 남편의 세 아이가 합쳐 네 아이의 부모가 되었으니 큰 변화에 우왕좌왕하는 건 당연할 것이다.

 얼마 전 큰 일을 치렀다. 일머리 없고 솜씨도 별로인 내가 스물다섯 명의 가족들을 우리 집에 초대했다. 초대라긴 보다는 매년 명절 때면 형제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식사하는 자리를 남편은 결혼 후에도 간절히 원하는 게 보였기에-두 달 전 오른쪽 무릎을 다쳐 재활치료 중인 나였지만- 먼저 제안했다. 모르겠다. 새 사람이 들어와 늘 형제들이 해오던 모임을 갖지 않게 된다면 남편의 낯이 서지 않을 것 같아서 고민 끝에 결정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미 지난 추석 때 큰일을 치른 경험이 무기였고 다정다감한 막내 시동생이 큰 지원군으로 나섰다. 서울의 유명한 호텔 셰프 출신인 시동생이 어설픈 형수인 나를 위해 일회용 식기들과 다듬은 식재료를 준비해 분주하게 음식 준비를 한다. 추석 때 손가락 골절로 참석 못한 바로 아래 동서까지 밑반찬 두 가지를 준비해 와 보태니 금세 근사한 잔치상이 차려졌다.

 고맙게도 어렵고 불편한 자리일 텐데 아들 현석이가 설이라고 인사를 와 식구들과 인사를 하고 밥을 먹는다. 비록 손님맞이 준비로 몇 달 만에 보는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대화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같이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식구들의 떠들썩한 분위기.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배를 받고 덕담과 세뱃돈을 나눠주고... 아이들까지 활짝 웃으며 명절날이 저물어간다.

 차린 음식을 소분하기 바쁘다. 각 집에 나눠주고 독립해 있는 아이들에게도 넉넉히 음식을 싸서 보내니 고되지만 북적대서 명절 느낌 팍팍 나는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가 고즈넉하다. 뒷정리를 하는 내게 남편이 다가와 수고했다고 홍삼과 용돈을 준다. 시동생들이 형수 수고했다고 준 용돈 다 합쳐보니 하루 일당치고 제법 큰돈이다. 자연스레 웃음이 나온다. 돈도 돈이지만 수고를 알아주는 식구들이 있으니 조금은 가슴이 찡해지며 감사의 마음이 찾아온다.

 싱글일 때 친구들은 명절 때가 되면 나를 부러워했다. 혼자인, 철저히 혼자인 외로움을 모르는 친구들이기에 아마도 부러웠을 것 같다. 난 혼자일 때도 둘이 있을 때도 다 겪어보았기에 좀 힘들지만 같이 함께 가는 삶도 다시 선택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평범한 일상. 가정이 주는 안정감을 이제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 양보하고 섬기며 존중하고 살고 싶다.



 삶은 어떤 의미에선 공평하다. 그리고 선택엔 늘 책임이 따른다. 어떤 선택이든 완벽한 선택은 없다.

나는 다시 둘이 가는 삶을 선택했고 사랑과 전쟁과 프로 당구 게임을 젤 즐겨보는 남편과 살고 있다. 취향은 반대이지만 내 취향을 포기한덕에 믿음이 신실한 의리파 남편을 얻었으니 어찌 잃은 것만 있는 걸까... 젊었을 때였다면 내 것을 포기하는 것 없이 모두 손에 쥐려 했을 것이다. 나이 듦의 가장 큰 장점은 지혜 아닐까? '헤아림'. 요즘 내 삶을 여는 키워드다!

 다시 작은 카페에서 반년만에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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