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순하고 수더분한 사람. 모나지 않고 둥근 사람.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편을 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과묵한 사람. 겸손함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합리적인 사고를 지향하는 상식적인 사람. 가슴이 따뜻한 사람. 타인에게 불필요한 잔소리나 간섭을 하지 않는 나름 상대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침해하지 않는 사람. 약자에게 갑 행세를 하지 않고 더 낮은 자세로 섬기려는 사람.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 아니고 다 받은 은혜라고 생각하는 사람. 지인들께, 타인에게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끊임없이 주님 닮은 모습으로 본이 되며 살아가기 노력하는 사람. 내 삶의 불행한 순간들을 타인의 잘못으로 돌리려 하지 않고 스스로에게서 문제를 찾는 책임감 있는 사람.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 느리게 가는 것들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 인연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 트러블 메이커가 아닌 피스 메이커가 될 줄 아는 사람. 감당하기 힘든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볼 줄 아는 긍정의 사람.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 여린 듯 그러나 단단한 사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교양이 있는 사람. 속물을 싫어하는 사람.
잘 포장하니 제법 괜찮은 사람의 범주에 든다. 그러나 나는 과연 그런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 실체가 궁금해진 것은 어느 날 문득 스친 생각들이 도화선이 되어 걷잡을 수 없는 자기혐오로 이어졌다.
오늘 나는 여기 이곳에서 나의 교만함과 이중성에 대해 고해성사하는 기분으로 나의 어리석음을 용기 내어 고백해야겠다.
며칠 전 가족들과(얼마 전 가족이 된 세 아이의 기도까지 포함하여) 지인들에 대한 중보 기도를 끝마치고 집안일을 하던 중이었다. 재혼하여 새로 생긴 세 아이들의 좋은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 주기로 작정한 내가 스스로 대견해서 "이 정도면 나는 꽤 좋은 사람이야. " 하고 입 밖으로 이 말을 내뱉는 순간. 갑자기 좀 전에 내가 한 기도가 떠올랐다. 기도의 내용 중 대부분이 남편의 세 아이에 대한 기도는 간절함보다는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기도가 전부였고 내 아들에 대한 기도는 절절함이 묻어 나는 가슴 저 밑에서 끓어오르는 진실의 기도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남편에게나 지인들 심지어 나 자신에게 조차 모두 다 내 아이들이라고 이야기했던 내가 가증스러웠다. 나의 이중적인 모습이 느껴지니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나의 모습들이 진짜가 아니고 보이기 위한 위선과 교만함이 섞인-타인은 알 수 없고 나만 알 수 있는 나의 실체였다.
와르르 내가 알고 있던 스스로의 모습이 무너져 버렸다. 그 후로 오랫동안의 시간을 나란 존재에 대한 해체 작업에 몰두했다. 남편은, 가족들은,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오랜 세월을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사람으로 정작 내가 아닌 이상적인 사람의 역할을 해온 것이 슬프지만 진실같이 여겨졌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갇혀 정작 내 목소리를 못 내고 그것을 배려심 있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을까... 모든 것이 혼돈이었다.
우유부단하고 자기 계발에 게으른 것을 포장하고 남을 향한 비난과 증오를 너그러움으로 포장해서 온화한 척 연기를 했다. 속물을 경멸하며 나 역시 겉으로 보이는 가치를 아닌 척 참된 가치로 숭배했다. 나와 의견이 다르면 이해하는 척 겉으로는 수긍의 제스처를 쓰면서도 비난하고 그 사람과의 거리를 두었다. 합리적인 개인주의를 가장한 이기주의자. 이것이 나의 본 모습임을 부인할 수 없으니 슬프다. 진자리 마른 자리 가리며 키워준 부모에게조차 이기적이고 못된 딸. 의무감이 먼저였다.안주하는 삶. 도전이 없는 삶. 불의에 참고 저항 못 하는 나약한 사람...
나를 깊이 들여다 본다는 것은 잔인하다. 하지만 나를 제대로 알 수 없으면 개선할 수도 없다. 그냥 이대로 적당히 타협하고 포장한 채로 사는 삶. 갑자기 스스로에게 멀미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