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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자무 Mar 11. 2021

비엔나 01_포기해야 할 줄 알았던 하루

Wien, AT_Benedikt Steiner - AUW


부다페스트에 머문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카마시 워싱턴Kamashi Washington의 공연을 보러 2박 3일 비엔나로 여행을 떠났다. 버스로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었다.


그리고 둘째 날 두통이 찾아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앓고 있는 만성의 두통이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되었고 처음엔 내가 그저 자주 체한다고 생각했다. 뒷목의 신경이 막힌 듯한 느낌이며 그렇게 두통이 찾아오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으면서 구토를 몇 번 해야 한다. 한의원, 디스크 전문병원 등을 찾아가 보았지만 뚜렷한 이유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그 전날 먹었던 음식들이나 생활습관을 분석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주기로 보아 일종의 생리통인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래도 최대한 아프지 않으려 노력을 몇 가지 한다. 어디에서든 가끔 조깅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오로지 이것 때문이다. 두통이 있는 날이면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면 나는 무력하게 하루를 포기해야 한다. 내가 현실, 바로 그 순간의 즐거움에 더 가치를 둔 게 아마 이 두통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고통은 최대한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니까, 지금 아파서 침대에 누워있지 않음에 감사하며 그 고통이 없는 시간을 최대한 즐겨야 하니까 말이다.


두통은 타지에서도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나는 장거리 연애를 하던 남자 친구와 이별을 한 뒤 음식을 잘 챙겨 먹지 않아 몸이 엉망이었어서 그때의 두통은 내가 초래했다고 인정해야지 싶다.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말 음식을 목으로 넘기는 것이 힘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서 탈 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도 멍청하고 가치 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신이 교통사고라도 당한 듯이 노력으로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탈리라는 미국에서 온 룸메이트가 생긴 뒤로 같이 놀러 다니며 점점 괜찮아지고 있었다. 이 비엔나 여행도 나탈리가 합류할 예정이었다.



숙소를 나와 카페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걷는데 두통이 왔음을 느꼈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었는데, 소시지 때문일까 생각했다. 돌아갔어야 했는데, 누워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는 이미 돌아갈 힘이 없었다. 두통이 찾아올 때면 고개를 똑바로 들고 있는 것이 너무 힘들어 빨리 몸을 뉘일 곳을 찾아야 한다. 가장 가까운 슈타트파크Stadtpark로 들어가 아무 데나 누웠다. 유럽의 공원만 보면 평소에도 잘 누워서 자연스럽게 누웠다. 밖에서 그렇게 두통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자다가 나무 그림자가 내 쪽으로 오면 추워서 잠에서 깼다. 옆으로 꿈틀꿈틀 양지로 이동해서 자다가, 음지가 되면 깨는 것을 반복했다. 잠시 깼을 때마다 이젠 좀 괜찮나 하고 고개를 들어보았다. 주변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공놀이 등 가볍게 놀이를 즐기는 이십 대 초반 무리들이 보였다. 이렇게 아플 때면 그렇게 아픈 곳이 없는 보통의 사람들이 어찌나 부러운지. 여전히 어지러워 거의 인생 마감하는 느낌으로 사람들의 건강한 웃음이나 잡담을 듣다가 다시 스르르 잠들었다. 네다섯 시간은 그렇게 공원에서 죽은 듯이 누워있었던 것 같다. 머리가 심하게 아프면서 토가 나올 것 같아 몸을 일으켰다. 열심히 인적이 드물면서도 밑이 뚫린 배수구 같은 곳을 찾아서 노란 위액을 쏟아내며 토를 했다. 토를 하고 나면 잠시나마 괜찮아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아서 열심히 해냈다. 역시나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숙소로 돌아갈 때까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공연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햇빛을 받아 치료가 된 것인지, 꽤 괜찮아서 조금 더 걷게 되었다.



굼펜도르프 스트라세Gumpendorfer Str.를 지나던 중 파운드 오브젝트를 이용한 작업을 쇼윈도에 전시해놓은 공간을 발견했다. 택배에 딸려오는 스티로폼 조각, 배껍질, 철사, 비정형적인 콘크리트 몰드 등을 조합한 오브젝트들을 모아놓았는데 너무 귀여웠다. 2평 남짓한 전시공간으로 들어가니 작가로 보이는 분이 반겨주며 작품들을 설명해주셨다. 한쪽 벽면에는 아이폰으로 찍었다는 사진들이 은유적인 제목들과 함께 붙어있었다. 마치 내가 찍고 싶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 같았다. 거리에 버려진 다양한 물체들, 건물들의 이상하게 부서진 부분들이나 선이나 면 등을 독특한 구도로 찍은 사진들이었다. 찍는 피사체는 나와 비슷하지만 역시나 이 예술가가 찍은 사진들은 더 멋있어 보였다. 베네딕트 슈타이너Benedikt steiner(benedikt-steiner.ch)라는 이 작가는 친절하게 독일어로 된 그 제목들을 영어로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의 오브젝트 작업들도 사진 작업들도 모두 너무 좋았다. 그는 스위스 사람이며 지금은 비엔나에서 지내면서 가끔 책을 만드는 워크숍을 연다고 했다. 나는 작업이 정말 좋다고, 비엔나엔 어제 처음 오게 됐는데 도착하자마자 이 전시를 포함해서 취향에 잘 맞는 갤러리들이 많이 보여서 행복하다고 했다. 부다페스트에 있다가 왔는데 부다페스트에선 이런 공간을 못 찾아서 아쉬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부다페스트에 아는 건축가 친구들이 있다며 한번 그들에게 가보라고 이메일 주소를 하나 건네주었다. AUW, 아키텍처 언컴포터블 워크숍Architecture Uncomfortable Workshop(auworkshop.com)이라는 곳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것을 보아서인지 상태가 더 좋아져 공연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업 잘 보았다고, 연락처를 주어 고맙다 하고 카마시 워싱턴의 공연을 보러 갔다.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의 영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장면의 공연장과 로비가 비슷하게 생긴 콘체르트하우스Wiener Konzerthaus는 천장이 매우 아름다웠다. 로비에서 스낵용으로 바게트 조각에 여러 토핑을 얹은 스낵을 팔았는데 쇼케이스 안에 정렬된 그 스낵들이 보석처럼 예뻤다. 자리를 잡고 앉자 나탈리도 공연장에 도착했다. 어딘가 부흥회 같았던 공연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공연이 끝나고 마침 멤버들이 바깥에 있었는데 한 커플이 기념사진을 찍더니 우리도 찍으라며 강요 같은 권유를 했다. 우리도 한 장 찍었는데 사진을 보니 밴드 멤버가 내 어깨를 괴롭히듯이 꽉 잡은 것처럼 나와 웃겼다. 훗날 보니 나의 부다페스트 룸메이트였던 나탈리와 함께 찍은 사진은 그것이 유일했다. 그때 사진을 찍으라고 한 커플이 뒤늦게 고마웠다.


나는 부다페스트로 돌아오자마자 베네딕트가 알려준 AUW의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2018_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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