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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자무 Mar 10. 2021

오클랜드 02_유치를 갖고 있는 사람

Auckland, NZ_A kiwi with a milk tooth


A를 알게 된 건 2015년 내가 뉴질랜드에 도착하고 일주일이 됐을 즈음이었다. 뮤지션 친구들의 공연을 보러 다같이 웨미바Whammy Bar에 간 날이었다. 공연 중간에 모두들 세인트케빈아케이드 마당에 나와 어울렸고 나는 맥주 한병에 시뻘개진 얼굴을 감추려 마이어스공원Myer's Park의 벤치에 혼자 앉아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하우아유 하고 지나가다 말을 걸었다.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친구같이 말을 거는 것은 뉴질랜드에서는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사이드번이라 불리는 엘비스같은 구레나룻을 가졌기 때문에 참으로 반지의 제왕에 나올 법한 뉴질랜드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키위라며,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뉴질랜드는 모두가 음악가인가 싶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자신들을 키위라고 부른다. 처음 도착해서 집을 구하는데 그 집주인들의 소개에 저는 00살 키위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 너무 귀여워보였다. 나는 뉴질랜드에 온 지는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고, 집주인의 친구가 시빌유니언Civil Union의 뮤직비디오 찍는 것을 나도 돕게 되어서 그 뮤직비디오 발표기념 공연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그들의 공연이 끝나고 이제 곧 걸스 피싱 온 걸스 피싱Girls pissing on girls pissing의 공연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밴드 이름이 쿨하다며 자신도 봐야겠다고 해서 함께 나머지 공연을 보았다.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나는 당시 일을 구하기 전이었고, 그는 스스로 암호화폐를 이용해 돈을 벌었기 때문에 우리는 넘쳐나는 시간으로 밤낮을 가리지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주 어울렸다. 당시에는 비트코인조차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시기라 그는 그때까진 엄청난 부자가 아니었고 나와 초등학생들처럼 도란도란 놀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알고보니 나보다 열 살 이상은 많았는데 종종 내가 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느낄 정도로 생각이 말랑말랑했다. 전혀 그 나이로 보이지 않아 격 없이 유치한 장난을 치다가도 자신이 어렸을 때는 아미가Amiga 컴퓨터를 갖고 놀았다는 둥의 이야기를 할 때면 신기했다. 그는 비건이었고 아직도 첫번째 치아인 유치를 하나 갖고 있었다. 술과 담배, 설탕, 밀가루를 일절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폭력적인 장면이 담긴 어떠한 것도 보지 않았고 운전 또한 싫어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완벽한 맨정신으로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너무 생소해 정신나간 소리처럼 들릴만한 신선한 생각들을 했다.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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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를 만나기로 한 날. 그가 뉴마켓에서 점심을 먹을동안 브런치를 먹고 나가니 이미 오후였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갈비뼈가 부러질 듯이 커다랗고 강력한 포옹으로 인사했다. 그는 와이즈 시케이다Wise Cicada라는 유기농매장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다. 도착해서 같이 아주 짧게 구경을 하고 나오려다 무슨 초콜렛이 맛있게 생겼다해서 그 초콜렛과 씨드쿠키 하나를 사주었다. 나는 널 위한 선물을 샀어. 하면서 그는 내가 전에 향이 좋다했던 레몬머틀치약을 꺼냈다. 그는 거의 그 치약의 신봉자였는데, 자신이 한번은 치과에 갔을 때 치과의사 책상 위에 이 치약이 올려 져있는 것을 보고 둘이서 이 치약 간증을 했던 적도 있다고 했다. 고맙다고 하고 같이 오클랜드 도메인Auckland Domain으로 걸어갔다. 새로 가보는 길이었는데 전쟁기념관을 지나는 길이었다. 오클랜드 도메인에 가서 잔디 위에서 초콜렛과 쿠키를 먹었다. 씨드쿠키가 정말 내 취향이었다. 햇볕 아래에 누워있는데 그가 우와 저것보라며 하늘을 가리켰다. 해 주변에 동그랗게 원형의 무지개가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서로 이런건 한번도 본 적 없다고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선글라스를 챙기지 않은것을 후회하며 손을 동그랗게 말아서 햇빛이 아닌 무지개만 보려 애썼다.



그렇게 앉아서 A가 쇼핑한 유기농간식들을 구경했다. 마리화나인데 마약성분이 없는 헴프라는 것이 든 초콜렛을 먹었다. 근데 법적으로 판매용 음식에 사용할 수 없어서 포장지에는 ‘바디스크럽 온리' 라는 가짜 스티커가 붙여져있었다. 캐로브Carob 초콜렛도 처음 봐서 먹어봤는데 꿉꿉한 냄새가 가득찬 방이 떠오르는 맛이었다. 그리고는 내 가방탐험을 하다가 스케줄러에 붙은 요일표시를 보게 되어 월화수목금토일의 한국말을 알려주었다. 토요일은 토하는 날이고 일요일은 병ill든날이라고 했다. 해가 구름에 가려지고 슬슬 추워서 도메인을 걸었다. 친구 J가 말했던 폭포를 보러갔다. 거대한 폭포를 기대 했는데 작은 계곡같은 것이었다. 냄새와 공기, 소리가 정말 좋았다. 열대나무들과 계곡을 보며 그는 바로 이게 뉴질랜드 전체에 있는 흔한 풍경이랬는데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타잔이 있을 것만 같은 그림이었다. 그리고 좀 더 걷자 하얀색으로 덮인 곳이 나타났는데 알고보니 그게 다 면이었다. 면이 자라서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는데 그 풍경이 정말 동화 속 같았다. 나뭇잎들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흩뿌려진 면, 아까 본 원형 무지개까지, 아름다운 풍경들에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가 어떤 어린 나무를 보며 엄청 크게 자랄 나무라고 알려주었다. 이파리 끝에 자란 씨를 갖고 싶어서 이거 꺾어도 되냐고 했더니 안그러는게 좋을 것 같다했다. 그런데 주위를 보니 엄청 많이 열려있었고 그걸 보고는 따도 괜찮을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대게 이럴 경우 그는 나무한테 물어보고 딴다고 해서 나도 속으로 물어봤는데, 나는 나무가 씨를 바닥으로 떨어뜨려서 대답해주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 따려고도 해봤지만 쉬이 꺾이지 않아 관뒀다. 여러 공원을 지나 그의 집으로 가면서 채도가 낮은 얼씨earthy 칼라 에 대해 얘기했다. 그도 나도 채도가 강한 색을 좋아하지 않아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색이 강렬한 꽃을 싫어한다고 하자 화려한 꽃이 달린 식물들은 뉴질랜드태생이 아닌 것들이 많다고 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조그만 무화과 열매를 보며 무화과 얘기를 했고 무화과는 꽃이 없는 대신 열매 안에 꽃이 든 것 같지 않냐고 물었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며 대단한 걸 알게 된 듯 좋아했다.



그의 집에 도착해서 조리된 쌀이 없어 쌀을 조리했다. 쌀을 요리하면서 그의 리플에 대해 얘기했는데 하루만에 엄청난 거금을 번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넌 정말 헐값에 얻은 고가의 자전거도 그렇고 행운을 자주 겪는 것 같다고 하니까 너도 그런 것 같다고 해주었다. 밥은 잘 조리됐고 브로콜리와 간장과 타히니소스를 곁들여 먹었다. 린다 맥카트니의 사진집이 있길래 같이 보다가 너무 피곤해서 카우치에 널브러져있다가 내가 체스를 두자했는데 귀찮다고 해서 오목을 알려줬다. 처음 배운 그가 날 이겼다. 그리고 또 너무 피곤해서 널브러져있다가 옆에 돌돌 말린 티셔츠가 있어 이게 뭐냐고 물었다. 티셔츠를 눈에 얹으며 이건 아이띵eye thing이라고 잘 때 얹고 잔다 했다. 내가 무슨 애플 제품 이름같다고 하니까 스티브잡스가 아이띵iThing으로 프레젠테이션 막바지에 비장의 카드인 냥 원몰띵 하면서 눈에 두르고 더듬거리는 상황을 같이 상상하며 웃었다. 그리고 그가 기타를 보여주었다. 일렉기타에 달린 두 아웃풋을 보여주며 어쿠스틱 사운드와 일렉 사운드 이 두 아웃풋을 동시에 연결하면 어메이징한 사운드가 나온대서 구경했다. 팜뮤팅을 이용하는 것과 모든 롹음악이 파워코드인가 그걸 사용한다는 것도 말해주었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기타치면서 노래도 불렀는데 그의 기타연주는 언제나 어메이징하고 노래는 늘 따분했다.


그렇게 구경하다가 아홉시가 다 되어가 어둑어둑해져 나는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는 데려다준다며 같이 나왔다. 오는 길에 인생이 앞으로 어찌될지 모름을 얘기하면서 그가 Why don’t you grab the moment(이 순간을 붙잡지 그래?)라고 얘기하는 순간에 별똥별을 봤다. 너무 뚜렷해서 나는 불꽃놀이같은 건 줄 알았다. 파란 꼬리에 빨간 머리. 나는 소원 대신 어어어어..? 하는 생각만을 했고 이게 사라질 때 별똥별임을 깨달았다. 그에게 별똥별을 봤다고 말했고 어둑한 밤도 아닌데 엄청 컸을 거라며 같이 신기해했다. 집에 거의 다 와서 나는 언젠가 마운트이든Mount Eden에 엄청 늦은 밤이나 엄청 이른 아침에 가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도 그렇다고 했고 내가 지금 갈까? 했더니 좋다고 해서 등산을 했다. 핸드폰 플래쉬도 끄고 천천히 더듬더듬 어둠에 눈을 적응해가며 산길을 올랐다. 내게는 집앞 1분 거리 산이라서 종종 뛰어올라가던 산이지만 밤에 조심조심 올라가니 또 새로웠다. 중턱에서 도시의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별들도 더 잘보이는 것만 같았다.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추워서 금방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별자리를 봤는데 별 세개가 나란히 놓여있는 별자리를 보며 그는 저게 뭐시기의 벨트라고, 활을 쏘고 있는 사람의 벨트라고 했다. 그는 하늘을 볼 때마다 항상 저 별이 있었다고 자신은 저 별에서 온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 왼쪽 눈 옆에 있는 세개의 점을 보여주며 이게 어떤 별자리와 닮았을거라 늘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또 엄청 놀라워했고 나는 내가 진짜 저 별에서 왔다며 가짜는 꺼지라고 장난쳤다. 그의 유기농 간식을 나눠먹으며 내려 오는데 낮에 도메인에서처럼 차례대로 작은 조각을 반씩 반씩 계속 더 작게 잘라먹는 모래놀이같은 더러운 장난을 쳤다. 하산을 하고 우리집에 물을 마시러 들어왔다.



맥스네 접시와 바닥타일이 자신이 어렸을 때 집에 있던 것과 똑같다며 과거로 돌아온 것 같다고 했다. 우린 허기가 져서 토마토와 올리브오일과 오이와 바질을 비스켓에 얹어 먹었다. 그는 글루텐프리 식단을 추구했지만 배가 고파서인지 그 비스켓을 먹었다. 내 비스켓을 보며 자기가 어렸을 때 엄청 좋아했던 거라고 하루에 한통을 다 먹었을 때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거 되게 오래 된거라고 했는데 그래도 맛있다고 있던 걸 다 비웠다. 그리고 위층의 내 방을 구경시켜주는데 내가 맥을 가진 줄 몰랐다고 해서 맥을 보여줬다. 그리고 자기 리플을 체크하려다가 무슨 비밀번호가 든 유에스비를 깜빡했다고 하며 크립토그래픽 키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 치려면 오분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내가 존케이지John Cage의 사일런스 책을 보여주면서 너가 좋아할 것 같다고 하자 그도 또한 내가 좋아할만한 책이 있다고 음악가 이름을 메모에 썼다. 데이빗 번David Byrn의 How Music Works. 데이빗 번, 나도 안다고, 몇 곡 모르는데 킬러 뭐를 좋아한다고 하자 싸이코킬러냐며 또 신기해했다. 자기가 생애 처음으로 간 콘서트가 데이빗번 콘서트였고, 자기 밴드에 있는 중국인이 외국 노래를 전혀 하나도 모르는데 유일하게 아는 노래가 싸이코킬러였으며, 한번은 자신들이 공연하는데 영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어떤 일본인 관객이 싸이코킬러 가사는 달달 외워서 셋이서 같이 불렀던 곡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싸이코킬러는 데이빗 번이 자신이 음악가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에잇 노래를 한 번 그냥 만들어나 보자, 하고 만든 첫번째 곡이라고도 알려주었다. 나는 몇 주 전에 유투브 추천때문에 알아보게 됐고 비둘기같이 고개로 춤을 추던 그 싸이코킬러 클립은 굉장히 좋았지만 최근에 세인트빈센트St.Vincent와 함께한 음악들은 별로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최근 것들은 다 별로라며 70-80년대 토킹헤즈Talking Heads 시절 노래들이 정말 좋다고 했다. 그렇게 얘기하다가 시간도 늦고 똥이 마려운 것 같아 이제 넌 가야 할 시간이라고 보냈다. 11시나 됐었다. 그가 그 싸이코킬러 라이브가 있는 공연 전체 파일이 있다고 해서 다음에 만나서 같이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집 앞에 배웅해주는데 고양이 미씨를 만나서 고양이에 대해 얘기하다가 고양이들에게 하는 눈인사에 대해 얘기했고 그는 자기도 그런다며 엄청 또 신기해했다. 그는 별 것도 아닌 것에 아직도 그렇게 아이처럼 신기해한다. 그런 에너지와 열정이 있는게 신기하다. 그의 유치에는 어린이의 마음과 호기심이 들어있는 걸까.




2015_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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