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real, CA_Books I read in Montreal
몬트리올에서 있던 4개월 동안 읽은 책을 소개하고 싶다. 사실 이 글은 콘스탄스 드종Constance DeJong의 모던 러브Modern Love를 영업하기 위한 글이다. 나의 여행기 몬트리올_01을 작성하다 콘스탄스 드종을 국내 사이트들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그러다 이 책이 아직도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내가 그렇게 재밌게 읽은 책이, 이 책을 읽고 그녀를 보고싶어 뉴욕의 더 키친The Kitchen도 방문하게 만든 이 책이 국내에서는 소개가 전혀 되지 않았다니. 콘스탄스 드종에 대해서도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오페라 작품 '사티아그라하'의 공동작가라는 정보 외에는 나오는 것이 별로 없어 안타까웠다. 나도 그녀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정보를 끌어 모아보았다. 그녀의 책이 한 사람에게라도 더 읽히기를 바라며.
콘스탄스 드종은 퍼포먼스, 조각, 글 등 여러 형태로 예술을 행하는 뉴욕 베이스의 예술가이다.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와 토니 오슬러 Tony Oursler와의 협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의 글들은 퍼포먼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녀의 첫 책인 <모던 러브> 또한 문학보다는 퍼포먼스를 위한 비주얼아트로써 창작되었다고 한다. 작은 책자로 모여진 원고 조각들은 500명의 사람들에게 우편번호순으로 배달되었다고 한다. 1년 후에 60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각색되어 필립 글라스가 작곡한 'Modern Love Waltz'라는 곡과 함께 소개되기도 했다. Modern Love는 1977년에 짧게 운영되었던 Standard Edition에서 출간되었다. 출간 당시 비평가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장기간 묻혀있던 작품이었고, 2017년 브루클린 소재 비영리 예술 출판단체 Primary Information과 Ugly Duckling Presse에 의해 40주년 기념으로 재출간되었다.
이런 배경지식 없이 보았는데도 그녀의 문체는 정말 목소리로 옮겨졌을 때 매력이 배가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인 Charlotte이 주인공이며 그의 남자친구 로드리고Roderigo는 뮤지션이다. 그의 조상을 따라 100년이 넘는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하고 여주인공의 이름이 때때로 바뀌기도 한다. 작가는 배경의 시간과 등장인물을 휘두르면서 마음껏 이야기를 펼쳐낸다. 연기가 되어지기 위한 각본이라기엔 너무 초현실적이고, 단순히 눈으로만 읽힐 목적으로 쓰인 글이라기엔 음성으로 내뱉기 너무 적절한 문체이다. 딱 모놀로그가 어울리는 그런 문장들이다. 그래서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짧고 도발적인 문체를 소리내어 읽으면 랩을 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이 책은 자꾸만 소리 내서 읽게 되었다. - They said, "Wait till you're 27 then you'll be sorry." I'm 27. I'm not sorry. 특히나 이런 문장은 마침 27세였던 나에게 콕 박혀 들어왔다.
맘에 들었던 몇 부분을 한글로 옮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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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은 마치 높은 풀 사이를 쏘아지르는 뱀들 같았다. 그들은 보이다가도 보이지 않는다. 그 높은 풀 사이를 걸을 때 당신은 반드시 막대기를 가져가서 땅을 두드려야 한다. 그 뱀들에게 겁을 주고 들판의 모서리까지 그들을 쫓아 똑똑히 보고 내쫓아야 한다. 당신은 이 의식을 지금 당장 행해야 한다. 오밤중에 혼자 펜과 종이를 쥐고서, 이 뱀 같은 생각들을 끄집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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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찰을 형용사로 옮긴다면 나는 범죄자가 될 것이라고, 무언가 내게 말한다. 난 이 순간의 광채를 훔쳐다가 길고 딱한 문장으로 만드는 짓을 저지를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죽이고 대단히 멋진 비유에 그들을 묻을 것이다. 사건과 물체를 변질시키고, 자르고 배열해서 모든 것을 예쁜 패턴으로 만들 것이다. 화려하지만 텅 빈 이미지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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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평생을 쓰레기를 바깥으로 쏟아내는 데 쓴다.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당신 주변에 오염되지 않은 깨끗하고 손상되지 않은 공간을 만들기 위한 모든 일을 한다. 하지만 그런 당신을 채우려 노력하며 스며들어오는 악한 독성의 힘이 있다. 당신은 가정주부, 하녀와도 같다. 털어내고 쓸어내고 제자리에 둔다. 당신은 공사장 인부와도 같다. 항상 지어 올리면서, 고치면서 망치를 두드려댄다. 그것이 당신의 일이다. 그것이 당신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당신은 이것으로 보수를 받지 않는다. 그것이 당신의 문제이다. 당신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떻게 현금으로 불러올 수 있을 지 알아내라.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지 말이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 하고 있는 것을 계속 해도 좋다. 그렇게 살아라. 좋은 생각이다. 뮤지션인 경우, 피아노 연주가인 경우는 제외한다. 모두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좋을 게 없다. 그게 바로 뮤지션이다. 그게 바로 당신이 평생을 들어온 말이고, 이제는 그게 바로 당신이 믿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 느끼니까 말이다. 저 바닥에서 다시 시작한다. 28살에,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 당신은 자기혐오에 빠진다.
아주아주 찔리는 문장들이 아닐 수 없다. 분명 그녀의 관객들은 예술가들이었을텐데 모두 공감하지 않았을까. "misfits like myself who can’t make it in the world" 책의 앞부분에 쓰여진 이 "현실에서 성공하지 못할 나같은 부적응자들"은 이 책을 사랑할 것이다 = 나..
동시대 작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번역판을 기다리지도 못하고 신간이 나올 때마다 사 읽는 작가이다. 구할 수 있는 한 그가 쓴 모든 글을 읽어보려 노력한다. 나탈리 포트만과 주고받은 메일도,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칼럼들도. 그의 아트북인 'Tree of Codes'가 각색된 현대무용 공연을 보러 파리에 가기도 했다. 나는 이야기의 흐름이나 사건 자체보다는 한 문장 한 문장의 표현에서 독서의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그런 재미를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가장 깊고 강렬하게 느꼈다. 그의 글은 주제가 무엇이건, 채식, 지구온난화에 관한 글도 모두 로맨틱하게 들린다. 이 책은 자전적인 설정이 반영된 소설이어서 그의 팬인 나로서는 더 재미가 있었다. 현실에서 작가인 조너선은 책 속의 주인공 방송작가 제이콥이다. 현실의 본인처럼 그는 유대인이고, 세명의 아들이 있고, 이혼을 했다. 현대의 미국을 사는 유대인들의 정체성에 관련된 입장을 이해하기에도 좋은 책이었다.
거의 책 전체가 너무 좋지만 특히나 곱씹고 곱씹게 되는 부분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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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은 유년시절 테이프로 발매된 음반들을 들으며 가사들을 옮겨 적었고 그렇게 가사를 익혔다. 그는 어느 날 아내와 있을 때 너바나Nirvana의 All apologies를 흥얼거렸다. 아내는 그가 'I can't see from shame아캔 씨폼 쉐임(부끄러워서 알 수가 없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그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Aqua Sea form Shame아쿠아 씨폼 쉐임'이라는 랜덤의 단어들의 나열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제이콥은 아들과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한다.
- 참 엄마답네요
- 난 정말 고마웠어
- 하지만 아빠가 노래하고 있었잖아요
- 틀리게 노래하는 중이었지
- 그래도요. 그냥 뒀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 아냐, 엄마는 옳은 일을 한 거야.
- 그래서 진짜 가사가 뭐였는데요?
- 놀라지 마. 아쿠아 씨폼 쉐임(물 바닷물거품 수치)
- 말도 안 돼.
- 그렇지?
- 아니 그게 무슨 의미라도 있는 거예요?
- 아무 의미 없어. 바로 그게 내 실수였지. 난 무언가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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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높게 쌓였던 몬트리올의 눈길에 발을 푹푹 빠뜨리며 걸을 때마다 생각이 났던 구절이 있다. 요즘은 코로나의 여파로 주식시장에 돈이 몰린 것을 볼 때 이 구절이 특히 생각난다.
'욕망의 선들', 사람들에 의해 점점 의도적으로 나타나는 지름길. 끊임없는 협상과 약간의 조정들. 폭설이 내린 뒤에는 욕망의 선들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예정보다 늦어지더라도 언제나처럼 날은 따뜻해지며 눈은 결국 녹는다. 무엇이 선택됐었는지를 드러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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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제이콥은 팟캐스트 이야기를 가끔 한다. 그중에서도 아내 줄리아와의 이혼을 경험할 때의 기분을 묘사하며 소행성이 충돌할 때 지구인들이 얼마나 무력한 지를 설명한 팟캐스트를 인용한다.
"그래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진행자가 물었다. "아마도 핵을 쏘겠죠." 그 물리학자는 말했다. "당신이 그래 봤자 소행성이 수많은 작은 소행성으로 쪼개질 뿐 그 조각들이 또 지구를 칠 거라면서요.""맞습니다""그럼 소용이 없겠네요.""아마도 없겠죠" 그 물리학자는 말했다. "하지만 이게 우리의 최선의 희망best hope일 거예요."
그는 자신의 결혼생활이 비록 그렇게 이혼으로 끝났지만 그래도 아내 줄리아가 자신의 베스트 호프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것이 가장 최선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그녀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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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허를 찌르는 아들 벤지의 말.
"신이 모든 곳에 존재한다면, 이 세상을 만들 때 어디에 만든 거예요?"
- 에두아르 르베Éduard Levé의 오또뽁뜨헤Autoportrait는 작가 자신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의 책이다. 당시에는 읽지 못했지만 불어공부를 하는 요즘 필사를 하고 있는 책이다.
-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벨 자The Bell Jar는 너무 우울해서 문학적으로는 좋았지만 정신건강에는 좋지 않았다. 한국어 제목으로 된 책을 볼 때마다 벨자가 여주인공 이름인 줄로만 알았다. 나 또한 벨 자 안에 있던 시기가 있었기에 공감되는 문장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매일 눈이 와서 집에 고립돼있던 시기에 읽기에 힘들었다.
-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는 과학서적이지만 철학서적 같았다. 요즘은 과학책을 읽으면 이게 진짜로 가능한가 싶은 신기하고 재밌는 이론들이 많아서 철학책을 읽는 느낌이다. 왜 이런 것만 또렷히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과학자인 프리츠 츠비키Fritz Zwicky가 동료과학자를 “Spherical Bastards”(동그란 구 처럼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개자식이라는 뜻)라고 욕한게 북한욕 같아 참 인상적이었다. 밴드네임으로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 존 케이지의 사일런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다. 강연문과 그의 텍스트 작업들이 실려있다. 시로 된 철학서 같은 느낌이다. 글자를 음미하고 싶을 때 펼치는 책이다.
- 크리스 크라우스Chris Kraus의 I LOVE DICK. 예술 용어가 많아서 그런 용어를 공부하기 좋겠다고 생각해서 구매했었다. 실험적인 형식인 것 같아서 구매한 것도 있다. 작가와 이름이 같은 주인공 크리스와 실베르 부부, 그리고 크리스가 사랑에 빠진 Dick(영어에서 이름 Richard의 애칭이자 남성의 성기를 의미한다) 세명의 이야기이다. 중간까지만 읽었는데 모임에서 한 번 밖에 보지 않은 Dick에게 일방적으로 연애편지를 쓰는 크리스의 글들을 보고 있자면 함께 미쳐가는 기분이 든다. 나중엔 남편 실베르까지 합세해서 더더욱 미쳐간다. 당시 미국에서 TV 시리즈로 만들어져서 뉴욕을 여행할 때 곳곳에 붙은 I LOVE DICK이라는 광고를 볼 수 있었다.
- 마크 킹웰Mark Kingwell의 Opening Gambits은 앞에 조금 읽고 미뤄두었다가 한국으로 챙겨 오지 못했다.
+ 몬트리올 서점 추천 <Drawn & Quarterly>
에두아르 르베, 실비아 플라스, 크리스 크라우스, 콘스탄스 드종의 책 모두 이 서점에서 구매했었다. 필기구도 판매한다. 이 곳에서 미도리 노트를 처음으로 구매해봤었다.
+ 중고서점은 <S. W. Welch Bookseller>
참고 글:
https://www.theliteraryreview.org/book-review/a-review-of-modern-love-by-constance-dej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