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짐자무 Mar 15. 2021

비엔나 02_에밀과 카린

Wien, AT_Emil & Karin

비엔나에서 에어비앤비를 했던 카린의 아파트에는 에밀이라는 18세 아들이 가끔 방문했다. 아침 늦게 일어나 시리얼을 만들러 부엌으로 가면 늘 엄마와 나란히 앉아 담배를 말아 피우고 있는 풍경이 참으로 화목했다.


창백한 피부에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휴그랜트 같은 인상의 소년이었다. 그는 학교를 잘 가지 않으나 매일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래도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졸업장이 필요하니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소년이었는데 말을 하는 모든 면에서 냉소적인 분위기가 폴폴 풍겼다.


그 둘과 얘기하기 전, 나에게 비엔나는 그저 베를린보다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작고 깔끔하고 아름다운 완벽한 도시였는데, 그들은 비엔나의 가을, 겨울이 얼마나 끔찍하게 우울한지, 특히나 사람들이 얼마나 그럼피한지를 알려주었다. 후에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책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읽을 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이해하게 되었다. 역시 여행자의 시선으로는 속내를 알 수 없겠지. 길고 마른 다리를 꼬고 앉은 에밀은 줄담배를 말아 피우며 담배가 얼마나 무해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몇 년째 이렇게 꼬박 피우고 있지만 한 번도 담배로 인해 어디가 안 좋아지는 것을 못 느꼈다고 했다. 옆에서 엄마 에밀도 주변에 줄담배를 피우던 노인이 얼마나 오래 살고 있는지를 덧붙였다. 유럽에서 흡연에 우호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된 의견이 있다. 말아 피우는 담배는 괜찮지만 완제품으로 말아서 나오는 궐련담배는 맛을 내려고 잡다한 화학물질을 넣어 해롭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지에는 관심이 없어 알아보지 않았다. 소설을 쓴다는 에밀은 섬세한 편이어서 그런지 주변의 친구들이 고민을 자주 자신에게 토로한다고 했다. 정신이 불안정하고 미친 소리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그 친구들을 애정 하는 말투로 말했다.


그런 에밀에게도 귀여운 소년 같은 면이 있었다. 아홉 살 때 뉴질랜드 여행을 갔던 시절을 이야기할 때였다. 그때 먹었던 피자가 인생피자였다며 뉴질랜드는 사람도 좋고 모든 것이 좋다고 했다.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엄마 카린이 지도를 보여주며 지금 이 곳에 있다고 하자 믿기지 않아 너무 감격스러워 울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뉴질랜드 여행을 갔다 온 뒤로 친구들로부터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오스트리아 사람은 세계적으로 불만이 많기로 유명하다며 왜 뉴질랜드 사람들처럼 모든 사람들이 나이스하지 못할까 불만을 터뜨렸다. 그래서 나는 "뉴질랜드에 안 가봐서 그런가 보다." 하고 말하는 순간 나도 깨달았다. 나도 뉴질랜드에 다녀온 뒤로 더 괜찮은 사람이 됐다는 걸.


나는 에밀이 참 멋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만의 의견이 있고, 주변에 삶을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사랑하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옆에서 그렇게 그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엄마 카린이 새삼 진정 위대해 보였다.






작가의 이전글 부다페스트 01_AUW 아키텍처 언컴포터블 워크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