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리뷰 pt.3 -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와 드러머를 발견하다
3월 25일 금요일
INTERVIEW: MARC RIBOT READS FROM UNSTRUNG: RANTS & STORIES
AROOJ AFTAB
DAFNIS PRIETO
CAROLINE SHAW & SŌ PERCUSSION
BANG ON A CAN ALL-STARS PANDEMIC SOLOS
PATTI SMITH AND HER BAND
ANIMAL COLLECTIVE
KIM GORDON
MDOU MOCTAR
페스티벌을 다니다보면 종종 그 날 가장 기대했던 공연보다 예상치 못했던 공연이 더 큰 감동을 줄 때가 있다. 평소 몰랐던 뮤지션들이 반 이상인 빅이어스 페스티벌에서는 그런 일이 생길 확률이 더 크다. 그래서 스케쥴을 짤 때 스트레스가 더 크기도 하다. 모르고 엄청난 공연을 놓칠 수 있으며, 알면서도 같은 시간대의 다른 공연을 보기 위해 엄청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놓쳐야만 해야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 날 내가 가장 기대했던 공연은 Kim Gordon이나 Mdou Moctar이었지만 이날의 베스트는 다프니스 프리에토 Dafnis Prieto였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고 사전에 조사해보지도 않았어서 놓칠수도 있던 공연이었다.
이 날도 오전에는 일을 하고 느긋하게 집을 나섰다. 75 dollar bill도 봐야할 것 같았는데 전날 그들의 공연을 본 엘레나 무리가 그닥 훌륭하진 않다고 안봐도 될 공연이라고 해서 스킵했다. 지난 번 빅이어스 때 공연 중간에 I resist! 라고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마크 리봇 Marc Ribot의 랩을 본 뒤로 그의 엄청난 팬이 된 나는 그의 인터뷰로 하루를 시작하러 나섰다. 도착하고 인터뷰를 듣는데 옆에 어떤 음악 소리가 너무 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아침이어서인지 지난 번 공연에서 본 모습과는 다르게 저항 정신이 쏙 빠진 차분한 아저씨의 말씀을 전해주어서 중간에 그냥 밥을 먹으러 나왔다. 페스티벌에서는 밥을 먹는 타이밍도 중요하니까.
주변에 먹을 것을 찾다가 '타말리'라는 것을 발견했다. GOOD GOLLY TAMALE 이라고 적혀 있어 사실 타말 이라고 불리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스페인 사람인 엘레나에게 불어보니 아~ 타말리스~?하고 말해주었다. 리뷰가 좋아 처음 들어보는 음식이지만 시도해보러 갔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비건 식당들에서 종종 풍겨오는 얼터너티브한 바이브가 물씬 느껴져 여긴 찐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뉴욕에 있다가 오니 이런 것이 하나에 5달러 한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우선 사이드 없이 타말리만 세개를 시켜보았다. 치킨팅가, 베지팟파이, 하나는 기억이 안난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도 어떤 음식인지 몰랐고 랩에 싸여진 타말리를 열고 옥수수껍질에 싸인 것을 보고 신기해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찐빵의 기다란 버전처럼 각 재료가 옥수수전분반죽에 싸여있었다. 남자친구가 한 입을 먹더니 너어무 맛있다고, 맨날 먹고 싶다고 너무 좋아해서 어떤가 먹어보았다. 짜지 않아 좋았고, 부드러워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토마토 살사가 너무 싱싱하고 맛있어서 살사가 큰 몫을 한 것 같았다. 세개를 허겁지겁 해치우고 추가 주문을 했다. 밥도 먹고싶어서 사이드 밥과 비건소울 맛 타말리, 민트초코쿠키를 추가했다. 행복한 식사였다.
정신 없이 먹다보니 아루이 아프탑 Arooj Aftab의 공연에 늦었다. 막바지에 도착해 세 곡만 볼 수 있었는데, 서두를껄 후회가 들 정도로 굉장히 좋았다. 묵직하고 안정적인 목소리에 파키스탄어인지 익숙하지 않은 가사가 텍스쳐로 느껴져서 음에 더 집중이 돼서 좋았다. 목소리가 너무 맑아서 남자친구와 나는 보컬과 하피스트가 스무살도 안되는 것 같다 생각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보컬이 거의 마흔이다! 목소리가 어쩜 이리 맑지.. 그리고 나중에 한 번 더 언급될 이 팀의 바이올리니스트 대리언 도노반 토마스 Darian Donovan Thomas의 연주도 대단했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보컬보다도 페달을 밟아가며 바이올린으로 다양한 소리를 내던 이 분에게 시선을 강탈당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이올린에 페달을 단 것은 처음 봤는데, 그냥 연주할 때도, 이펙트를 달아 여러 사운드를 덧댈때도 좋았다.
사실 별 계획이 없었던 터라 다음으로는 테네시 극장 바로 맞은편인 비쥬극장Bijou Theater에서 열리는 다프니스 프리에토 Dafnis Prieto의 공연을 보러 갔다. 배도 부르고 공연장도 따뜻해서 공연이 별로면 꿀잠이나 자자 싶었다. 시작 전 십분동안 앞 사람들의 머리를 구경하며 정말 빅이어스 페스티벌의 관객 평균 연령이 높긴 한가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성비도 압도적으로 남성이 높아보였다. 아는 지인이 일본 도쿄에서 열린 사운드 박람회에 가봤는데 전부 구부정하신 빵모자를 쓴 백발 노인 분들만 줄지어 있었고, 다같이 청음을 하기 위해 한 방에 모여 경쾌하게 흐르는 '마틸다~!'하는 재즈곡을 듣는 풍경이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고 하는게 생각났다. 할아버지와 재즈의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무튼 기대 없이 시작한 다프니스 프리에토의 공연은 시작하자마자 넋을 빼놓았다. 처음엔 가운데 사람이 다프니스 프리에토일까.. 생각했지만 누가봐도 이 무대의 주인공은 오른쪽 구석의 저 드러머였다. 여유롭게 웃으면서 빠른 속도로 기타와 한몸이 되어서 연주를 하는 모습이 드럼을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게 한 세트로 드럼으로 보였다. 주요 테마 리듬이 있고 그것을 다른 리듬하고 섞어서 변주시키다가 다시 돌아오고 신기하게 다른 리듬이 되었다가 돌아오고.. 뭔가 철새가 어떤 포메이션을 만들었다가 다시 다른 모양을 만들면서 각자 또 자유롭게 비행하는..ㅋㅋ 그런 느낌이었다! 막간에 혼자 일어나 솔로로 쇠막대기같은 것을 두드리시면서 '띵똥땅' 하고 소리를 내면서 리듬을 만들기도 했는데 너무 깜찍하셨다. 이탈리아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쿠바계 아메리칸이라고 한다. 연주 내내 눈을 땡그랗게 뜨시고 웃으면서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보였다. 다프니스 프리에토의 음악을 집에서 앨범을 듣는 용으로 추천을 하진 않지만 공연을 볼 기회가 된다면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음으로 본 공연은 CAROLINE SHAW & SŌ PERCUSSION의 공연이었다. 캐롤린 쇼는 퓰리쳐상을 받은 작곡가라고 해서 궁금했고 소퍼커션은 전날 놓쳐서 꼭 보고싶었는데 둘의 공연이 함께 있으니 안 볼 이유가 없었다. 둘 다 섬세하게 아름다운 소리를 빚어낸다는 것에서 잘 맞아보였다. 캐롤린 쇼는 귀여운 참새같이 음을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하면서 음을 부스러뜨리듯이 직접 목소리로 이펙트를 주었다. 바로 그 앞의 드러머 다프니스를 보면서도 느낀 것인데, 악기와 상관없이 좋은 뮤지션은 혼자 만드는 소리만으로도 허전함 없이 그 음악을 꽉 채우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캐롤린쇼는 혼자만의 목소리로도 무대를 꽉 채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잠시 음들 사이를 채운 정적도 훌륭한 음악으로 들렸다. 소퍼커션 또한 그들만으로도 충분해보여서 전날 놓쳤던 오전의 공연이 다시 한 번 아쉬웠다. 왜 그들의 베뉴를 그렇게 먼 곳에 둔 것인지, 원망스러웠다.
다음은 녹스빌의 교회에서 열리는 BANG ON A CAN ALL-STARS PANDEMIC SOLOS 공연이었다. 지난번 녹스빌에서 뱅온어캔 공연에서 본 마이클고든의 작품이 너무 좋아 반해버려 뱅온어캔의 공연은 살면서 많이 봐야지 싶었다.
그들은 재즈 합주도 잘하고, 돌아가면서 서로의 작품을 연주하고, 누군가 훌륭한 작품을 만든 것을 연주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커미션을 받고 작업했었다는 팬데믹 솔로라는 작품이었고 여섯명의 연주자가 한명씩 돌아가면서 자기가 만든 작품을 연주했다. 첫주자인 피아니스트 Vicky Chow의 연주는 피아노줄을 튕기며 연주되다가 쾅쾅 건반을 뭉그러뜨리며 소리를 내고 또 이내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다. 현대음악 졸업작품 연주회에 가면 꼭 있을 법한 그런 음악이었다. 별로 길지도 않은 작품을 악보를 보며 엉성하게 연주하던 드러머를 제외하고는 모두 좋았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마지막에 기타리스트 마크 스튜어트 Mark Stewart가 연주한 어떤 이의 곡이었는데, 제목도 정보도 구글링으로 나오지 않는다. 좋았던 부분은 "We're just seafoam flowing on river"같은 가사를 계속 반복하며 소리를 질렀던 부분이었는데 다시 듣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거품일 뿐이야. 우리는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거품일 뿐이야.
다시 테네시 극장으로 돌아와서. PATTI SMITH AND HER BAND.
어제보다 더 큰 극장에서 한명의 기타리스트가 더 늘어난 패티스미스의 공연을 보았다. 어제처럼 가사 실수도 없었고 보헤미안 재킷에서 정장 재킷으로 바뀐 모습이 마치 어제는 리허설을 한 듯한 느낌이었다. 앞의 한 네곡 정도를 들었는데, 어제와 겹치는 곡이 많아 중간에 나왔다. 어제 더 인간적이었던 그 공연이 좋았어서 중간에 나오는데 아쉬움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마지막 공연인 MDOU MOCTAR을 보기 위해서는 다운타운에 있어야했고 시간을 떼울 겸 핫도그집으로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미국에 와서 한번도 미국핫도그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다. LA에서 도그 맛집이라는 곳을 가봤지만 기억이 하나도 않을만큼 감흥이 없었고 언젠가 시카고식 핫도그를 먹을 수 있다면 먹어봐야지 벼르고 있었다. Curious Dog은 각 도시의 특색을 넣어 엄청난 종류의 핫도그 메뉴가 있었다. 메뉴 중에는 서울도 있었는데 직접 만든 김치가 들어간다고 써있었다. 하지만 별로 시도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시카고를, 애인은 해쉬브라운 같은 tator tot가 들어있는 텍산을 시켰다. 이런거 뉴욕에서 먹으려면 하나에 만원은 할텐데, 외식은 한사람당 삼만원은 생각해야 할텐데 녹스빌은 그정도는 아니어서 밖에서 먹는 즐거움이 컸다. 내 시카고는 성공적이었다. 야채가 많이 얹어져있어서 느끼하지 않고 상큼했다. 그리고 애인이 먹은 텍산도 너무너무 맛있었는데, 미국에서 자란 애인은 그닥 감명적인 맛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ANIMAL COLLECTIVE를 보았다. 이전에 두 세번 그들의 공연을 보고 거의 오년만에 보는 것 같은데, 너무 별로였다. 느린 템포가 흐르면서 마구 소리를 지르는 노래를 부르는 그런 곡들을 예전에는 공연 시작할때 한두곡만 불렀는데, 이번에는 계속 그런 노래만 불러댔다. 내가 좋아하는 Brother Sport를 불러주길 간절히 기다렸는데 40분정도가 흘러도 안나오길래 포기하고 나왔다.
KIM GORDON의 공연도 별로여서 보다 나왔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녀와 짝을 이뤄 Sonic Youth였던 Thurston Moore의 밴드 Chelsea Light Moving을 보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가 더 낫긴했다. 하나가 찢어져서 똑같은 하나를 둘이 각자 해나가는 느낌이었다. 테네시극장같은 곳에서 점잖게 앉아서 듣기에는 정말 적합하지 않은 음악같았다. 작은 지하클럽에서 들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킴고든은 이제 거의 70세인데, 패티스미스도 그렇고 어떻게 이렇게 20대같은 모습으로 공연을 아직도 해내가고 있는지 신기했다.
그리고 내가 애타게 기다리던 MDOU MOCTAR! 음두 목탈인지 므두 목탈인지, 이름도 제대로 말할 수 없지만 이번 페스티벌에서 꼭 보고싶었던 이름 중 하나였다. 나이지리아 밴드. 언젠가 WIRE 매거진에서 찾아듣고 이렇게 세계에 튀어나와 사람들에게 하나 더 다양한 옵션을 더해준게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엄청나게 대단한 순간 같은 건 없었지만 그냥 계속 좋았다. 아프리카 다큐멘터리를 볼 때 그들의 음악에 맞춰 천천히 한발짝 한발짝 무게를 싣고 골반을 흔들면서 박수를 치고 싶은 적 다들 한 번쯤 있지 않을까. 딱 그런 음악을 '좋은' 밴드 사운드로 옮겨서, 들려주는 느낌이다.
누구의 음악과 닮았는데 싶었는데, 이제 기억이 났다!! GOAT와 굉장히 비슷한 사운드를 내는 것 같다.
열두시도 넘지 않았었는데, 너무 피곤했다. 프리마베라 페스티벌을 즐길 때는 혼자 새벽 세네시에 디아고날 거리를 혼자 가로질러 걸어와도 멀쩡했는데, 이제는 택시를 타도 피곤하다. 그래서 이 빅이어스에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또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생각했다. 애니멀콜렉티브를 볼 때 특히 VIP석에 있던 어느 할아버지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나무처럼 단단하게 굳은 할아버지는 거동도 많이 불편해 보이셨는데, 본인 세대의 음악도 아닐 애니멀콜렉티브의 공연을 보면서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 홀린듯이 그들을 바라보셨다. 금방이라도 쓰러지실 듯했지만 옆에 아내가 앉으라고 만류하면 잠시 앉았다가 비트가 빠른 음이 나오면 또 자리를 박차고 천천히 일어나셨다. 음악에 몸을 움직이지 않고 환호를 지르지 않더라도 이들의 내적 흥분이나 열정은 젊은 이들보다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깊은 저 곳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돌아오자마자 침대 저 깊은 곳으로 골아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