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리뷰 pt.4 - 우리는 메러디스몽크도 모지스섬니도 봤다네
3월 26일 토요일
YASMIN WILLIAMS
MEREDITH MONK & BANG ON A CAN ALL-STARS: MEMORY GAMES
ZORN: SIMULACRUM
MOSES SUMNEY
JASON MORAN
JAIMIE BRANCH
ANNETTE PEACOCK
이 날의 발견은 제이슨 모란Jason Moran
이 날의 베스트는 뽑기 너무너무 어렵지만 모지스 섬니Moses Sumney
세번째날. 이 날은 시작부터 좋았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엘레나가 우리를 맛있는 베이커리가 있는 카페로 데려가줬기 때문이다. 달콤한 아침식사를 파는 곳이라고 해서 미국식 팬케이크나 베이컨과 에그 등을 파는 식당을 상상했는데, 요즘 대도시에서 유행할 법한 그런 카페였다. 녹스빌에 이런 카페가 있다니! 그렇잖아도 엘레나에게 4년전 녹스빌과 이번 녹스빌이 너무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전에는 계속 흐렸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맑아서일까?? 했는데, 실제로 녹스빌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했다. 도시가 더 예뻐지고 식당이 더 많아진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쇼케이스에 있는 것을 전부 맛보고 싶었는데, 이 친구들은 여러개 시켜서 쉐어하지 않는 것 같아 우리가 먹을 세개만 힘들게 골랐다. 세 가지 다 너무 맛있었다.. 특히 저 녹색이 조금 보이고 소보루 같은게 얹어진 빵은 겉바속촉에 맛차가 들어있는 빵이었는데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원래 다운타운에 있는 카페에 빵을 납품하는 곳이었는데 새로 차린 곳이라고 했다. 인기가 정말 많아보였다.
프로그램표에 없어서 몰랐는데, 이 날 퍼레이드가 있을 것이라고 해서 빵을 먹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빅이어스의 한 프로그램으로 마칭밴드가 있나 했는데, 녹스빌 주민들의 퍼레이드 같았다. 무슨 테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각자가 환경보호, 동물보호 등 주제가 있는 것 같았다. 직접 만든 코스튬을 입고 단체로 입장하던 초등학생들도 너무 귀여웠다. 햇살이 좋은 날 행복하게 행진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행복해졌다.
그리고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신 뒤 FIRST BABTIST CHURCH에서 열리는 YASMIN WILLIAMS의 공연을 보러갔다. 아침을 시작하기에 딱 좋은 아름다운 기타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down to earth한 입담이 좋았다. 마림바를 연주에 더하기 전, 그 마림바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어디 기타 센터에서 찾은 악기인데 가격표가 없어 주인에게 '가격표가 없으면 공짜여야죠.'라고 했더니 '그래, 가져.'라고 해서 공짜로 얻게 됐다고 한다. 나도 앞으로 써먹어야지. 그리고 자신이 다니던 뉴욕대에는 희한한 애들도 많았다고. 돈이 많은,, 애들인데 자기 기숙사를 스스로 청소할 줄 몰라서 청소부를 고용하는 걸 봤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곡을 연주하고 나서는 '아름답지 않나요?' 라고 하곤 이 곡을 쓸 때 자기는 너무 괴로운 상황이었다고, 학교에 처음 들어갔는데 친구가 없어서 크리스마스에 어디로 가서 놀아야하는지 몰라 방 안에 틀어박혀서 노래나 만들자! 하고 만든 곡이라고 한다. 그리고 노래를 만들고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그래서 관객 중 한 명이 지금은 친구를 만들었냐고 물었고 두명의 좋은 친구를 얻었다고 너무 좋다고 했다.
어제 잠시 참석했던 마크 리봇의 인터뷰 중 그가 기타리스트는 남들이 나가서 놀 때 집안에 틀어박혀서 구부정하게 앉아 손가락이나 꼼지락거리면서 계속 연습하고 새로운 음을 찾느라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지난 날 사촌동생과, 그리고 유학을 가서 예술을 전공한 친구들과 예술이 얼마나 자신을 외롭고 힘들게 해야 좋은 것이 탄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예술가들은 변두리에서 사회를 지켜보면서 사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를 비춰주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그것들을 한 발짝 물러서서 시간을 내어 지켜보고 사유하고 표현해내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것 또한 사회에 꼭 필요한 부분인데, 어느정도 알을 깨고 나오기 전까지는 사회에서 인정을 받기도,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든 것 같다. 예술가가 여유롭게는 아니더라도, 작업에만 집중하고 살 수 있을만큼 지원이 있는 사회를 요즘 자꾸 꿈꾸게 된다. 내 친구들을 위해서, 미래의 소중한 문화 유산을 위해서. 이렇게 엄청난 예술가들이 모여있는 빅이어스 페스티벌에 오면 더욱이 그들의 존재에 감사하게 돼서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인정하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도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할머니. MEREDITH MONK의 공연을 보았다. BANG ON A CAN ALL-STARS와 함께 MEMORY GAMES을 보여주셨다. 이 분을 보려고 4년 전에 뉴욕에 왔던 것이 생각난다. 브루클린의 한 공연장이었고, 사람도 별로 없었고, 그런 것을 보기 위해 나는 다른 나라에서 뉴욕으로 왔었다. I'm happy woman oh I'm happy woman하고 반복하는 무용과 노래를 봤고 너무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이들에게는 투머치한 실험성이라 호불호가 갈리는데 마침 딱 엘레나의 남친이 메러디스 몽크는 투머치라고 싫어해서 너무 웃겼다. 남자친구에게도 공연을 보기 전 나만 좋아할 수 있음을 단단히 경고했다. 하지만 이 공연은 남자친구에게 이 페스티벌 통틀어 베스트공연으로 남았다. 오랜 세월 뒤 인간이 다른 형태로 진화하고, 그 생명체들이 과거 조상인 인간들의 언어를 기념하며 일년에 한 번 게임을 하는 것이 컨셉인 공연을 보았다. 책을 읽으며 '인간들은 우리와 달리 80년 밖에 살지못했다.' 등을 말해주며 와와와 하는 자신들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다가 '샴페인 샴페인 커피 커피 풋볼 풋볼' 하고 랜덤 단어를 내뱉으며 노래를 한다. 그들은 세상 진지하지만 내 눈에는 너무 귀여워서 계속 실실 웃게된다. 70? 80년대였나, 도쿄를 방문하고 만든 도쿄 차차도 너무 귀여웠다. 일본을 경이롭게 표현한건지, 놀리는 건지 모를 정도로 ㅋㅋ 흉내를 내더니 수시 수시 하고 스시를 먹는 듯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할 때 빵터졌다. 진짜 귀여워죽겠다.. 남자친구가 동질감을 느낀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거의 십년전부터 너무 보고 싶었던 John Zorn도 보았다. 이 사람의 공연을 보고 싶어 3년 전쯤 한국에서 일을 하던 와중에도 파리로 휴가를 갔는데, 공연은 취소되었고 나는 당일까지 몰라 공연장에 도착해서 알게 됐던 적이 있었다. 여행 전 갑자기 어디선가 환불이 되었는데 확인하지 않았던 내 잘못이었다. 대신 Tree of Codes라는 엄청난 공연을 봐서 보상이 되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보고팠던 John Zorn의 공연이 이번 빅이어스에는 하루 종일 네다섯개가 배치되어있었다. 그 중에 시간표가 제일 적절했던 SIMULACRUM을 보았다. 인텐스, 인세인, 인크레더블..!!ㅋㅋ 존존 특유의 멈췄다가 우다다닥 연주하는 부분을 이렇게 눈앞에서 보는 날이 오다니.
내가 본 공연에 존존은 이렇게 피아노 뒤에 아빠다리하고 앉아서 지휘하고 계셨다. 존존이 직접 연주하는 것을 못봐서 조금 아쉬웠는데 다음날 마지막 두 공연에는 직접 무대위에서 연주도 하고 지휘도 동시에 했다고 했다. 하긴 거의 이틀에 걸쳐 7개 정도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같은 멤버가 계속 그러긴 힘들겠지.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다가도 우다다닥 뭉개졌다가 전투적으로 두둥 두둥 하고 음이 막 쏟아졌다. 왠지 이건 말끔한 맨정신으로 듣기엔 흥이 아쉬워 맥주를 한캔 시켜와서 마시면서 들었더니 더 좋았다. 그렇게 보고싶었던 JOHN ZORN인데도 하나를 보니 뭔가 전부 해소가 되어서 뒤에 있던 여러개의 프로그램은 그렇게 욕심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본 오늘의 베스트 MOSES SUMNEY! Serpentwithfeet과 함께 한때 한창 듣던 가수였다. 그는 등장부터 퇴장까지 한동작 한동작을 모두 치밀하게 짠 듯이 공연을 했고 모든 움직임이 고상하고 아름다웠다. 앨범보다 좋았던 라이브였고 전날 아루이 아프탑의 공연에서 보았던 바이올리니스트 대리언 도노반이 또 있어서 놀랐다. 모지스 섬니의 공연 영상을 그 전에 하나도 안봐서 빅이어스를 위해 둘이 특별히 합주하는 건가 했는데, 원래 같은 팀이었다. 빅이어스의 또 다른 무대 Balún의 공연에도 대리언 도노반이 있었다고 하던데, 이분은 도대체 이 많은 곡과 많은 공연을 어떻게 소화하시는 것일까. 모지스 섬니의 공연이 좋았던 점 중에 하나는 각자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시간에 마이크를 받치고 그 쪽을 향해 있거나 연주자를 바라보며 관객들이 따라서 그 연주자에 집중하도록 했던 것이다. 또 중간에 객석으로 와서 무대에 있던 꽃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나중에 이야기할 YVES TUMOR와 비교되어 더 멋있었다. 페스티벌 기간동안에 그의 공연영상인 BLACKALACHIA 상영회와 GV시간도 있었는데, 참석하진 못했지만 유툽에 풀영상이 있다! (아래) 이것만 봐도 공연의 감동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이슨 모란 JASON MORAN
메러디스 몽크와 모지스 섬니를 본 뒤 나는 ㅇ ㅏ, 나는 ㄷ ㅏ 이루어따 ..☆ 하는 마음으로 아무 계획이 없었다. 바깥은 추우니 가까운 비주극장으로 향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큰 감동을 받았다. 뒤에 마지막 두 곡만 보았는데도 제이슨 모란의 공연은 나의 빅이어스 베스트 TOP5 안에 들었다. 도착하니 공연장이 꽉차서 2층의 발코니석만 남았다. 스노우볼 안에 든 모형처럼 뷰가 아주 좋았다. 연주 시작 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인 토니 모리슨의 책 구절을 읊었다.
“And talking about dark! You think dark is just one color, but it ain't. There're five or six kinds of black. Some silky, some woolly. Some just empty. Some like fingers. And it don't stay still, it moves and changes from one kind of black to another. Saying something is pitch black is like saying something is green. What kind of green? Green like my bottles? Green like a grasshopper? Green like a cucumber, lettuce, or green like the sky is just before it breaks loose to storm? Well, night black is the same way. May as well be a rainbow.”
"당신은 검정이 한가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대여섯개의 검정이 있다. 어떤 검정은 부드럽고, 어떤 검정은 부스스하고, 어떤 검정은 그저 비어있다. 어떤 검정은 손가락과 같다. 가만히 멈춰 있지 않고 움직이며 한가지 검정에서 다른 검정으로 변화한다. 어떤 것이 칠흑같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것이 초록색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어떤 초록? 내 물병같은 초록? 메뚜기 초록? 오이? 상추? 혹은 폭풍이 치기 전의 하늘 같은 초록? 밤하늘 같은 검정도 마찬가지이다. 무지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연주를 시작했다. 중간까지는 그저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런데 연주를 마칠 즈음 무대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완전히 컴컴해졌다. 연주는 계속되었는데 음이 저음으로 뭉개지면서 메인 멜로디가 가끔씩 살아서 튀어나왔다. 검정 속에서 검정을 연주했다. 가만히 멈춰 있지 않고 어떤 검정에서 다른 어떤 검정으로 변화하는, 토니 모리슨이 말한 손가락같은 검정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음은 계속해서 뭉그러졌고 기억을 회상하듯이 메인 멜로디가 희미하게 들렸다. 피아노 한 대만 있을 뿐인데 이펙트를 쓴 것 같은 소리가 들려 신기했다. 그렇게 한 4분 정도를 연주하고 무대에 다시 불이 켜졌다.
https://jasonmoran.bandcamp.com/track/toni-morrison-said-black-is-a-rainbow-shadow-2
그 다음에는 아름다운 재즈곡을 연주했는데, 연주를 하다 휘파람을 불고, 그러다 멜로디를 따라 부르라며 허밍을 시켰다. 반복할수록 사람들은 자신감이 붙어 막바지엔 소리도 커졌다. 다같이 후렴구를 반복했고 그렇게 공연이 끝났다. 끝나고 나올 때, 화장실에 갔을 때 사람들이 여전히 흥얼거리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는 뉴욕으로 돌아온 요즘에도 종종 흥얼대고 있다. 그때 찍어놓은 영상이 있어 잊을만하면 다시 불러온다.
안가본 베뉴를 도전해보고싶어 STANDARD라는 곳에 있던 제이미 브랜치 Jaimie Branch라는 뮤지션을 보러 갔다. 장르를 어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는 신선한 음악이었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고 트럼펫을 호기롭게 부시다가 뭐라뭐라 내가 제일 잘 나가 같은 랩을 뱉고 연주자들을 한주먹으로 쥐락펴락하면서 지휘를 했다. 멋있는 언니였다..
정말 이 날 모든 공연이 다 좋았다. 마지막 아네트 피콕 ANNETTE PEACOCK은 앞에 몇곡만 듣고 정말 마음에 들면 머물려했는데 모든 노래가 비슷비슷하고, 안그래도 피곤한데 잔잔한 음악을 앉아서 듣고 있자니 졸음이 쏟아져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한국 라면을 좋아하는 엘레나와 친구들에게 신파게티를 해주었다. 배가 안고파 맛만 볼거라더니 한그릇을 더 먹는 엘레나를 보고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