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연 Mar 05. 2021

위로하지 마요

생각하는 밤



  상처를 보듬는 문장, 마음을 치유해 주는 이야기, 용기를 북돋는 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토닥토닥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가득한 상처와 좌절을 따라 한동안 우리 주변에는 위로의 문장들이 넘쳐 흘렀다. 



"힘을 내! 네 탓이 아니야."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그래, 힘들지? 고생했다."

"그렇구나. 많이 어려웠겠구나. 정말 대견하다."



쓸리고 베인 상처를 보듬는 문장들이 없었다면 누군가는 무너져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이 바닥까지 떨어진 날에는 아주 작은 위로라도 필요한 법이니까. 그런데 어느 날은 문득 화가 나기도 한다. '왜 내 탓이 아닌 일들에까지 힘을 내 맞서야 하는 거지? 왜 이렇게까지 고생해야 하는 거지?' 



  공무원 A씨는 투신한 지 두 달만에 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모두가 꺼리는 민원 업무를 담당했는데 하루에도 몇 천 건의 욕설과 막말을 들었다고 했다. 수험생 A는 1교시 시험을 망치고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옥상으로 올라가 몸을 던졌다. 시험을 망치면 인생도 망가진다는 생각이 A를 지상으로 밀었다. 스토킹을 당하던 A는 항상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숨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증인으로 나섰던 A는 불안을 짊어지고 살았다. 불안을 해결할 수 없었던 A는 마침내 불안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누구에게나 위로 받고 싶은 날이 있다. 아무리 빠져나오려 애를 써도 불가항력인 것처럼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고 있을 때, 정말 최선을 다했냐고 수없이 나를 몰아붙여 보아도 끝내 해답을 찾을 수 없을 때, 마음에 힘이 빠져서 팔다리가 툭 풀려 버렸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위안을 찾게 된다. 위로는 많은 곳에 존재한다. 하나 같이 따스해서 얼어붙은 마음을 스르르 녹게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때 필요했던 것이 정말 위로였을까 싶다. 어쩌면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까지 위로로 감싸 안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수많은 A는 정말 위로가 필요했을까? 도처에 깔린 위로로 A는 위안을 얻었을까? 



생각하는 밤.

작가의 이전글 유령작가가 소개하는 자기(自己)는 나일까, 유령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