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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옴표 필름 May 02. 2023

퇴사 1주년, 대표님이 되었다!

이름하야 귀염뽀짝한 <따옴표 필름> 대표님입니다요

  이 글은 2021년 11월 6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내 글을 가지고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더군요.. 왠지 글 속에 자의식이 너무 많이 녹아있는 것 같고, 정말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어서 작가 신청을 미뤘었어요. 사실 수많은 핑계 중에서 딱 한 가지 이유를 한 단어로 꼽자면, '오글'거렸기 때문이에요. 근데 자기 PR의 시대 아니겠나요. 뭐 엄청 대단한 성과를 이룬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워도, 몇 가지 성취를 바탕으로 자기 뽕에 취해서 사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도 들었어요.


  아무튼 말이 긴데, 요약하자면 퇴사 후 정확히 1년 뒤에 쓴 글이라는 것!






  와, 브런치에 일 년 만에 글을 쓴다! 작년 이맘때 퇴사를 하고 호기롭게 인생의 온갖 다짐과 계획을 세워대며 새벽에 혼자 모니터 앞에 앉아서 설레는 마음에 쿵쿵 뛰어대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나의 앞날에 대한 기대와 걱정에 심취했었다. 퇴사를 하고서 자유로운 시간에 다양한 글을 쓰고 싶었고, 일 때문에 건물에 갇혀 있는 시간들이 아까웠기에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인생의 여러 맛을 보는 게 꿈이었건만... 웬 걸? 퇴사 후 지난 1년을 돌이켜보니, 바빠서 미쳐돌아가는 나의 일상만 떠올랐다. 회사에 다녔을 때보다 더 퀭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서 머리만 대면 쓰러져 자기 바쁜 날들이 대부분이었고, 업무량은 이전보다 체감상 3~4배는 많아진 느낌이었으며, 퇴근과 출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일도 일, 취미도 일, 머릿속을 떠다니는 여러 생각들도 오로지 일, 일, 일! 정말 이러다가 일에만 미쳐서 소시오패스가 되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여튼 정말 바빴다.


  그런데 사실, 퇴사 직후 4개월은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호기롭게 퇴사했지만 예상대로 많은 일들이 물 밀려오듯 내게 들어오지는 않았고, 각종 직무 관련 커뮤니티에 다양한 방법으로 나의 포트폴리오를 어필도 해보고 지원 메일도 매일매일 썼지만, 놀랍게도(!) 내 힘으로 일을 따낸 게 없었다! 굉장히 의아했다. 내 포트폴리오를 내세워 내 힘으로 일을 따낸 게 하나도 없다니? 그럼 대체 뭐가 바빴다는 거야? 아님 포트폴리오가 형편 없던 거 아냐? 혹시 자기 객관화가 잘못 됐나?


  나는 퇴사하고 나서, 내가 있는 이 업계가 정말 철저히 인맥 사회라는 걸 깨달았다. 실력이 뛰어난 감독들도 학연, 지연이 없으면 능력에 비해 많은 페이를 받아가지 못했고 무난무난하게 어느 정도 기본기만 있는데도 폭넓은 학연, 지연으로 무장된 사람이면 여기저기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괜찮은 일을 많이 받아서 진행하곤 했다. 물론 실력과 매너가 별로면 그건 누구에게든 금방 들통나는 일이기 때문에, 내로라하는 인맥왕이더라도 롱런하지는 못할 거라는 건 알고 있다.


  아무튼 나는, 내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인맥과 망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 그리고 그 인맥과 실력이 A급으로 우수하지는 않은 것만 같아서 매사에 꼼꼼하고 약속을 잘 지키며 받은 업무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작업자가 되자! 마인드로 일 년을 지냈던 것 같다. 다행히도 꾸준히 밥벌이가 가능하도록 일이 계속 들어왔고, 이 고생스러운 길을 함께 가는 남자친구도 곁에 있어서 정말 행복하게 일을 했던 것 같다.


  위에 썼듯 처음 4개월은 돈이 될 만한 일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만 있으면 우울해질 것 같아서 남자친구와 학교 선후배가 사용하는 작업실을 같이 썼는데, 거기서 다함께 전 직장동료분께 받은 간단한 인플루언서 유튜브 편집 일을 시작했다. 예전에 케이블 예능에도 출연하고, 아프리카 BJ도 하시고, 지금은 스타트업 대표로 계신 어떤 분의 일상 에피소드를 담은 유튜브 편집이었다. 우리 크루는 그 일을 받게 됨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매일매일 열심히 편집을 했고, 함께 어떻게 작업하면 좋을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고, 서로 편집한 걸 봐 주기도 하며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는 착각에 빠질 만큼 열심히 살았다(!) 사실 그당시에 내 통장에 찍히는 돈은 회사에 다니던 시절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였다. 그렇게 개인 유튜브 채널 편집자로 3~4달 가량을 지냈는데, 직장 상사가 없고 출퇴근이 자유롭다는 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행복했지만 마음이 불안했다. 그러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작업실에서 일하던 후배가 회사에 취직하게 되며 크루가 한 가지 목표로 똘똘 뭉쳤다는 느낌도 조금은 사라진듯해 마음이 더욱 불안했다.


  집에서 작업실을 오가는 버스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잘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마음이 힘들어서 숨죽여 울었던 적도 많다. 집에 가면 나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엄마는 나보다 더한 걱정을 하셨고, 그시절에는 엄마랑도 여러 감정들과 금전적 문제때문에 많이 다투기도 했다. 사실 그때 난 우리집 가장이었고, 무모하게 퇴사를 하고서 기존에 받던 월급보다도 적은 돈을 버니까 엄마 입장에서는 당연히 걱정이 되셨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일단 '존버'해보고 싶었다. 내 마음속에는 뭔가 근거 없는 믿음이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보다 더 큰 일을 하고 싶어, 나는 그럴 만한 가치와 재능이 있는 사람이야'


  시간이 흘러 겨울은 금세 지나가고, 백수로 맞이한 첫 봄이 왔다. 신기하게도 전 직장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퇴사를 해야하는데, 그 전에 자신들이 맡고 있던 아이돌 예능 프로그램을 통으로 맡아서 진행해줄 프로덕션을 찾고 있었다. 내가 첫 회사에 다녔던 시절부터 유튜브 예능을 대표하는 꽤나 유명한 간판 프로그램이었는데, 사실 유명세와는 달리 제작비가 짠내나기로 유명한 프로그램이었다. 제작비만 짠 게 아니라 프로그램 제작에 기획부터 종편까지 전반적으로 참여해야 해서, 각종 외주인건비나 기획/연출 준비에 드는 시간, 소품 구매, 그리고 편집도 기존 작업들과 비교했을때 굉장히 힘든 건이었다. 더군다나 난 중학생 때 이후로 아이돌에는 관심을 끊어서 배경지식조차 없는 머글이었다.


  그런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우리(일단 나, 남자친구, 그리고 작업실을 함께 쓰던 선배)에겐 기회가 온 거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개인 유튜브 편집만 할 수도 없는 거였고,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손으로 만드는 큰 프로그램을 우리 이름 걸고 내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게다가 출연하는 아이돌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했다. 아이돌을 우리가 보고 같이 일할 수 있다는 철없는 기대감과 함께 정말 좋은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거다. 우리는 곧바로 두어 번의 미팅을 진행 후, 드디어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준비한 첫 촬영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편집본이 유튜브에 처음 온에어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고 실수도 많이 하고 벅차서 운 적도 있는데, 한 번 그러고 나니 그 뒤로는 그렇게 많이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사실 프로그램 규모에 비해 우리에게 돌아오는 돈은 정말 적은 편이었으나, 그래도 인기 프로그램이다보니 유튜브에 온에어되기만 하면 조회수와 댓글이 확확 늘었다. 종종 인기 급상승 영상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온에어 후 우리끼리 각종 아이돌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눈팅도 했는데, 대체로 팬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다.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나는 중학생 때 아이돌 덕질을 했던 경험도 있었기에 팬덤 문화나 아이돌 정보를

찾아 기획하는 데에 큰 어려움도 없었고, 남자친구 역시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걸그룹을 직접 연출하고 편집하면서 일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정말 서로에게 끊임없이 의지하며 궁금한 걸 물어보고, 모르는 걸 함께 공부해나가고, 욕 먹을 일 없도록 영상이 나가기 전에 계속 같이 더블체크하며 성장해나갔다. 프로그램 반응도 계속 좋았고, 이제 현장에서 연출하면서 아티스트와 교감(?)하고 모든 상황을 즐길 정도로 점점 능숙해졌다. 편집 때도 점점 머릿속에서 자막 드립들이 막 떠오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행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런 큰 아이돌 예능을 통으로 맡아서 진행하다 보니, 비슷한 류의 아이돌 예능 프로그램 제작 요청이 계속 들어왔다. 신기하게도 기존에 맡던 프로그램에서 함께 촬영했던 아이돌 그룹을 다른 작업때 또 만나기도 하고 (물론 그들은 우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새 우리가 받아서 작업하는 모든 영상은 연예인이 출연하는 영상들이었다. 확실히 모든 작업 하나하나가 큰 포트폴리오가 되었으며, 간단히 말해서, '얘네 이거 했대. 그럼 이런 것도 해볼래?', '얘네 이정도는 하는 애들이니까 이거는 이 정도(페이)로 부탁해봐야겠다' 이런 식으로 포트폴리오가 쌓임과 동시에 우리의 몸값도 조금씩 올라갔다. 이전에는 영상 10편 정도를 편집해내야 벌 수 있는 돈을 이제는 2~3편만 편집해도 벌 수 있게 됐달까? 물론 돈이 다는 아닌데, 바쁜 와중에 결혼 준비도 해야 했기에 많이 버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 그동안 연예인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정말 많이 작업했다. 다행히 클라이언트 분들도 대체로 이성적이고 일처리가 깔끔하고 매너 있는 분들만 계셨고, '우리 너무 연예인 나오는 예능만 하는 거 아냐?'라는 배부른 생각까지 들 정도로 정말 많은 작업을 했다. 사실 들어오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쳐내고 돈을 버느라 체력과 워라밸은 회사원 시절과 비교도 안 되게 망가지긴 했다. 일단 내가 꿈꿨던 퇴사 후의 내 모습은 아니었다. 체력과 워라밸 문제만 제외한다면, 사실 내가 꿈꿔온 퇴사 후의 내 모습, 그 이상으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런 큰 작업들을 하게 되며 나의 사회적 신분(?)도 달라졌다. 기존에는 백수이자 프리랜서였다면, 나는 지금 남자친구와 함께 개인사업자 명의를 가지고 있는 영상 프로덕션 대표님이 되었다! 함께 우리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외주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학 동기는 내가 페이를 입금하자, '감사합니다 사장님'하며 드립을 쳤는데, 낯간지러우면서도 신기하고 뿌듯했다. 아, 물론 사업자를 내고 대표가 된 첫 과정들도 하나하나 열거하며 에피소드를 풀자면 또 날을 잡고서 글을 써야만 한다. 이것도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고, 에피소드가 한가득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사업자와 관련된 문제나 상식도 많이 공부하고 경험하고 있는지라 안정적으로 운영 중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일 년 동안, 별 일 없이 잘 살아와서 다행이면서도 또 일이 너무 많아서 행복해 죽겠는 삶을 살았다. 역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어서 하나하나 해낸 일들을 굳이 들춰서 돌이켜 보면 정말 쉬운 일 하나 없는 고행의 연속이었지만, 이렇게 멀리서 돌이켜 보면 희극인 듯하다. 뭐 어차피 주식이든 비트코인이든 이런 거 할 거 아니면, 몸이랑 마음 상해가면서 멘탈 박살나면서 고생 끝에 돈 벌면서 살아가는 건 모두 똑같잖나? 그런 걸 생각하면 나는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다.


  퇴사 1주년 기념으로, 어젯밤 공교롭게도 회사에 다니고 있는 꿈을 꿨다. 이전 회사가 있었던 동네 주위를 서성거리며 출근하기 싫어하는 내 모습을 봤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퇴사해야되는데 회사에 뭐라고 어떻게 잘 말해야 퇴사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은 인생에 이런 걱정이 없다. 어떻게 해야 재미있는 영상을 만들고 우리가 잘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만 하면서 산다. 그 외의 고민은 그냥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건강해야 할텐데, 정도가 전부다.


  작년의 나에게 큰 결심을 해줘서 고맙다고 꼭 말하고 싶다! 네가 용기내서 무모하게 도전해준 덕분에, 우여곡절을 건너 이런 행복한 사람이 됐단다! 내년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싶을까? 좋은 말을 들으려면 앞으로의 1년도 잘 살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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