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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 Oct 22. 2021

비극일까 희극일까

<사랑의 표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요. 솜털마다 색색깔로 빛나던 순간도 저까지 따라 실명한 듯 깜깜하던 시절도 모두 하나의 이야기인데요. 결말은 오려면 한참인데 시작만큼 또렷한 여러 마지막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야기가 어찌 계속되느냐고, 누구도 건네지 않은 질문을 혼자 매 번 물었습니다.



살아 있어서. 밖엔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 말고 아직 살아 있는, 아름답고 완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저희 동물들 말이에요. 일곱 마리가 떠났지만 여섯 마리가 살아 있습니다. 일곱 이야기는 멈추었지만 여섯 이야기가 날마다 적힙니다. 그러나 일곱 번의 마지막에 여섯이 차례로 더해지고 나면, 저는 아마 모든 힘을 잃을 것만 같습니다. 기억, 언어, 향기, 눈빛... 사랑은? 사랑도 잃게 될까요?



시간을 멈출 줄 알았더라면 쓰지 않았을, 결말도 모르는 이야기의 운을 서둘러 뗍니다. 여섯 중 가장 노쇠한 아이가 지 지난달 안락사를 권유받았어요. 하지만 이 순간까지도 충분히 살아 있습니다. 다시 하지만, 제가 이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그래 줄까요. 확신할 수 없어 불안하고 그래서 사무치게 소중한 이 마음은 지난 7년을 꼭 닮아 있습니다.




그 죽음은 헛되지 않았어, 덕분에 이 삶이 더 소중하잖니, 아득한 어둠에 섣불리 빛을 주입하는 이들을 겪을 때면 당장 여기를 벗어나 먼저 떠난 아이들에게로 가고 싶었습니다. 이별을 달래주는 글도 회복을 응원하는 책도 읽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누군가는 아팠고 연이어 떠나기도 했기에, 보살피고 보내줄 만큼의 기운을 내며 그렇게 일곱 차례 반복한 것입니다. 10월, 유독 여러 아이들을 보내 고통스러운 이 달에 저는 다시 도착했습니다. 몸 안 곳곳 덮어버렸던 두꺼운 이불을 걷어내니 슬픔이 그대로 정지해 있습니다. 바라봅니다. 위로에 지나치게 엄격한 제가 위로를 건네고 싶어 졌지만 왜인지, 가능할지, 대상이 있는지, 결국 자기 치유일 뿐일지, 아직은 아무

것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가지고도 망쳐버린 일들과 자신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에 둘러싸인 채, 실패한 일들엔 스스로를 탓하고 해낸 일들엔 미지의 존재에게 공을 돌리며 그만 멈출 듯 말 듯 조금씩 움직이고 있습니다.




빛은 어둠이 없어도 빛입니다. 어둠은 빛이 있어도 어둠이지요. 실감한 순간부터 제 삶 속 그 밖의 모든 정의와 계획이 무너져 내리고 수많은 정답들이 힘을 잃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빛을 어둠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뜨릴지, 도무지 모르겠는 날엔 단번에 불안을 종식시켜 줄 누군가의 한 마디를 찾아 여기저기의 문을 열고 닫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돌아보니 저를 지탱시킨 것도, 온 감각으로 생각하게 한 것도, 밤이 어떠했든 아침이 오면 세수하고 밥을 준비할 용기를 준 것도, 결국 불확실성이니 말이에요. 확신과 두려움 사이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혼란한 사랑이지만 아이들에게 가 닿을 땐 그저 따스한 온기이길 바랄 뿐입니다.




모든 이야기가 멈추는 언젠가를 상상합니다.




무지개다리를 금방 찾을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방해 없이 성큼성큼 다리를 건너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저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어쩌면 기억을 못 할지 모르겠어요. 정확히 아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지켜주려 최선을 다했다고 얘기해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헤어진 후에도 그 이유를 찾아 열심히 헤매었다고... 그러니 이리 와 어서 안겨달라고, 평생을 그리웠다고.








<사랑의 표현>

01. 비극일까 희극일까

02. 작은 집 안 더 작은 집

03. 숨의 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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