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현정 Hyunjung Choi Dec 10. 2021

"종전선언 찬성해 줘"

코리안 아메리칸 유권자로 사는 법 

지난 6일, 내가 사는 지역 연방 하원의원에게 편지가 왔다. 


Dear Ms. Choi,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강화법 지지와 관련해 연락 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신의 의견은 저에게 매우 중요하며 이 문제에 대해 당신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아시겠지만 이 법안은 앤디 레빈(D-MI) 의원이 제안한 것으로 비정부기구(NGO)의 인도적 지원 제공을 위해 현재의 대북 제재 예외 조치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이 법안은 미국의 제재 정책을 재검토해 인명구조 지원품 전달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라고 지시한 바이든 대통령의 '국가안보 각서'와 맥을 같이 합니다. 이 법안은 현재 하원 외교위원회와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서 검토 중입니다.


인도주의적 해외 원조의 중요성에 대해 제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알아주길 바랍니다. 이 법안과 더불어 관련 법안이 하원에서 표결에 부쳐진다면 유권자인 당신의 생각을 명심할 테니 안심하십시오. 


연락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알려주십시오. 당신의 의견은 내가 의회에서 8구역을 대표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알비오 시레스

연방 하원의원


지역구 의원에게 받은 답장


"각자 동네 의원들한테 편지를 보내 봅시다. 여기 링크 누르면 자기 이름과 주소 쓰는 칸이 나와요. 다 읽어보시고 오늘 꼭 하셔야 돼요." 


뉴욕과 뉴저지 사는 지인 20여 명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 나와 동갑인 한 친구가 링크 두 개를 올리며 당부했다. 며칠 전 모임 자리에서 나눴던 얘기를 듣고 여기저기 수소문해 찾아온 서명용지였다. 


미국 뉴스에도 심심찮게 '종전선언'이란 말이 들린다. 미국 사는 한국인들에겐 70년 전쟁이 끝난다는, 이산가족이 만나게 된다는, 금강산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시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이유들로 결코 작은 얘기가 아니다. 이 좋은 기회에 우리도 뭔가 하면 좋겠다 얘기했었다. 


"대북 인도적 지원 강화법은 절실히 필요한 인도적 지원의 전달을 용이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수십 년간의 적대관계를 끝내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필요한 북한과의 외교와 교류를 진전시킬 것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은 70년 넘게 가족들을 헤어져 살게 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북한에 가족을 둔 미국 교포들은 이산가족 상봉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클릭을 하니 이 법안이 왜 지금 꼭 통과되어야 하는지 담담히 보여준다. 

우먼 크로스 DMZ라는 단체가 스폰서한 패티션은 두 가지. 백신과 식량 등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법안 그리고 '종전선언과 헤어진 가족 재회'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의원들의 서명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나는 청원서 두 개에 내가 사는 지역구 의원의 이름을 찾아 넣고 나에 대한 정보와 메모까지 동봉했다. 미국에 살면서, 세금을 내고 투표하는 유권자로서, 한반도 종전선언에 미국 정계가 애써달라고 요구하는 건 당연한 나의 권리였다. 


"난 너의 지역구에 사는 유권자야. Korean-American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으로, 네가 나를 대표해 이 법안을 찬성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보낸 첫 편지에 긍정적인 답장까지 직접 받으니 전엔 몰랐던 소속감마저 높아진다. 


유대인 남편과 사는 한국인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이사 간 동네에 초등학교가 없더란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던 동네 이웃들과 걱정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지역구 의원을 초대해 여론을 전하자고 제안했다고. 한 가족이 제공한 집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자그마한 펀드레이징 행사를 열었단다. 그렇게 걷힌 소정의 기부금과 함께 지역 젊은 부부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간 의원이 학교 건립에 제일 앞장서더라는 것이다. 평범한 한국인으로 자라온 친구에겐 너무 놀라운 경험이었다 했다. 


"난 열심히 돈 모아서 학군 좋은 동네로 이사 갈 생각만 했어. 그런데 유권자로서 지역구 의원에게 당당하게 요구하고 정당하게 받아내는 과정이 너무 신선하더라."


종전선언은 명분과 실리


뉴욕 롱아일랜드가 지역구인 톰 수오지 하원의원을 직접 대면한 건, 10월의 첫 번째 주말이었다. 의원 바이든이 이 지역에 오면 늘 고 갔을 정도로 친분이 돈독한 사람이라고 했다. 한반도 종전선언 관련해 의견을 전하는 자리라는 소리에 막히는 맨해튼을 뚫고 달려갔다. 거실엔 한국 음식과 의원의 고향인 이탈리아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내와 함께 도착한 수오지 의원은 집주인과 아이들 얘기를 물으며 반갑게 인사한다. 이번 행사는 플러싱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젊은 의사 부부가 호스트였는데 오래전부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모양이었다. 간단한 스몰토크가 끝나고 자리에 모인 이들은 본격적인 질문 공세를 펼쳤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북한 코로나 백신 지원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거 인상 깊게 봤어. 구체적인 진행사항은 어떻게 되고 있니?"


"아프간 철군으로 낮아진 대통령의 지지율을 한반도 정전협정으로 만회할 수 있을 거야. 당사국들은 준비가 되어 있고 미국은 긴 전쟁을 끝냈다는 명분과 실리 모두 가져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 자리에서 수오지 의원은 직접 바이든 대통령에게 관련한 편지를 쓸 것을 약속했다. 그 약속을 이끌어낸 변호사는 몇 번을 의원 사무실에 전화해 기어이 실현시켰다. 


11월 4일, 미국 민주당의 상하원 의원들은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을 위해 규정을 완화해 줄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같은 날 톰 수오지, 앤디 김 의원을 비롯한 23명의 하원의원들은 한국전쟁 종전 선언을 촉구하는 서한을 바이든 대통령과 토니 블링크 국무장관에게 보냈다. 


"우리는 미국이 남북한의 평화를 촉진하고 한반도 주민을 위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한반도 평화를 목표로 한 싱가포르 회담 틀을 지지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미 오래전 남북 간 긴장을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올 9월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를 향한 중요 단계인 1950년 남북 전쟁 상태를 종식시키는 상호 선언을 재차 촉구했습니다.. 전쟁은 1953년에 끝났지만 평화 조약은 공식적으로 서명되지 않았습니다.

남-북-미 3국의 전쟁상태가 공식적으로 종식되는 것은... 미국과 동맹국 국익에 보탬이 되는 평화를 향한 중요한 발걸음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행정부와 국무장관이 남-북-미 전쟁상태를 공식적이고 최종적으로 종식시키는 구속력 있는 평화협정을 목표로 북한과의 적극적인 외교적 관여를 우선시할 것을 촉구합니다.


북한의 핵무기가 전 세계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고 있지만, 영원한 전쟁 상태라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국익에 도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전쟁 상태는 핵 문제에 대한 진전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200만 명에 가까운 미국 동포들의 친족을 포함한 모든 주민을 위해 한반도 평화를 촉진하기 위한 행정부의 노력을 지속해서 확대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


 30%의 목소리가 전달되기 시작한 것 


톰 수오지 의원은 행사 며칠 전 자신의 사무실을 공식 방문한 한국에서 온 야당 대표 얘기를 우리에게 전했다.  매우 젊어 보인 그 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종전선언은 결코 한국인 모두의 입장이 아니라며 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도 그만큼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했다. 


지난 7일, 한국계인 영 김, 미셀 스틸 의원을 비롯한 35명의 연방 하원의원들은 한반도 종전선언에 강력히 반대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바이든 대통령, 앤서니 블링컨 국무장관, 성 김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앞이다. 종전선언은 주한미군과 한반도 안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며 미국 안보에 처참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며 종전선언을 강력히 반대하는 내용이다. 


한반도에서 7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전쟁을 더 계속하자는 주장은 이제 그만 끝내자는 목소리보다 더 크고 공고하고 강하다 싶다. 실망하는 사람들에게 불모지 뉴욕 땅에서 20년 넘게 평화운동을 한 이가 조언해준다. 


"이제 겨우 30%의 목소리가 전달되기 시작한 겁니다. 이렇게 목소리를 모아 미국 땅에서 종전 얘기를 하는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요."  


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포로로 잡혔던 멍청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