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합리 vs. 분열과 공포의 정치
"한 번도 눈여겨본 적 없던 John McCain 책들이 도서관 제일 좋은 자리에 놓여 있다. 모두들 그가 떠난 자리가 크다 느끼는 듯. 매케인에 대한 추모 글과 다큐와 뉴스 클립들을 보며 든 생각. 그의 인생 최고의 선택은.. 베트남전 포로로 고문당하면서도 아버지 끗발 등 모든 특혜를 거부하고 5년을 감옥서 버틴 것. 최악은 대선 러닝메이트로 사라 페일린을 지명한 것이 아닐까? #선거캠프가 했겠지만 #개관사정 #Maverick"
2018/8/28 동네 도서관에서 올린 페북. 매일 뉴스에서 보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2018년 8월 25일 뇌종양으로 숨졌다. 미국은 오랫동안 추모의 물결로 넘쳤다. 그의 인생을 재조명했고 그가 대통령이 됐으면 미국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아쉬워했다. 용감한 군인이었고 35년 간 공화당 의원으로 두 번이나 대선에 떨어진 그를 미국인들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싶다.
공화당이란 자부심
그에 대해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상이 있다. 2008년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둔 미네소타, 존 매케인은 청중들의 질문에 답하는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 노동자로 보이는 남성이 자신의 공포를 말한다.
"난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게 무서워요. 왜냐면 그는 국내 테러리스트들을 지지하고 있으니까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 미국인들은 공포에 떨게 될 거예요."
마이크를 건네받은 매케인은 자신의 지지자인 남자에게 말한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품위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미국인들은 겁에 질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 한 노인도 버락 오바마에 대한 불신을 표한다.
"나도 질문을 하나 하려고요. 나는 오바마를 신뢰할 수 없어요. 그는 아랍인이에요. 그렇잖아요..?"
매케인은 고개를 저으며 답한다.
"부인,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품위 있고 가정적인 미국 시민입니다. 단지 어쩌다 그와 나는 근본적 이슈들에 있어 의견이 다를 뿐이지요. 그게 바로 이번 선거의 핵심인 거고요."
처음엔 야유를 보내던 주민들이 하나 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곧 체육관은 뜨거운 갈채와 함성으로 가득해졌다. 존 매케인은 유권자들을 거짓으로 협박하지 않았다. 이성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하길 바랬다. 타운홀 미팅을 마친 이들은 공포와 혐오 대신 공화당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를 갖고 행사장을 나설 수 있었다.
"포로로 붙잡혔던 사람은 진정한 전쟁 영웅이 아니지."
"그는 해군사관학교를 꼴찌로 졸업한 멍청이잖아."
트럼프 대통령은 수시로 존 매케인을 향한 거친 언사를 내뱉었다. 지지자로 둘러싸인 유세장은 물론이고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공화당의 존경받은 의원을 깎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매케인 사후 보궐 선거에서 공화당 텃밭인 애리조나에서 30년 만에 민주당 상원의원이 탄생하자 당선자는 석 달전 세상을 떠난 존 매케인 공화당 의원에게 감사했다. 트럼프가 밀었던 공화당 의원 대신 애리조나는 그 반대편의 사람을 뽑은 것이다. 호사가들은 죽은 매케인이 산 트럼프를 잡았다 말했다.
"뭐, 문제가 되나요? 그는 어차피 죽어가고 있잖아요.."
매케인이 뇌수술을 하며 투병 중일 때 대통령이 주재한 백악관 회의에서 보좌관이 한 말이 언론에 알려졌다. 트럼프가 고문 논란이 있는 자를 CIA 국장으로 지명하자 매케인 상원의원이 인준에 반대하던 상황이었다. 베트남전 고문 후유증이 있는 노 병사에 대한 트럼프 내각의 인식은 알려주는 발언이었다. 정치매체 악시오스는 이 발언 유출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트럼프가 회의를 소집했다 보도한다.
성토장이 된 장례식
숨지기 전, 매케인이 자신의 장례식에 트럼프가 참가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같은 공화당에 소속되었지만 몹시 다른 트럼프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자신이 평생 지켜 온 공화당의 이상을 파괴시킨 장본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8년 9월 2일, 워싱턴 DC 국립 대성당에서 거행된 존 매케인의 장례식엔 클린턴과 부시, 오바마를 비롯한 1000여 명의 각계 인사가 참석했다. 같은 시각 트럼프는 버지니아 인근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 연단에 오른 버락 오바마가 그를 추도했다.
"존과 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의견이 일치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역할에 대해 함께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같은 팀이었고 한 번도 그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정직했고 명예로웠고, 그와 적대적인 이들도 애국자고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유가 박탈당해 본 사람의 열정으로 자유를 사랑했습니다."
2000년도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싸웠던 부시 전 대통령도 그를 존경하며 추모했다.
"존은 권력 남용을 혐오했고 편협하고 잘난 체하는 폭군들을 참을 수 없어했습니다."
아무도 현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트럼프를 떠올리며 연단에 선 이들의 추도사를 새겨 들었다. 이 날 장례식에 대한 <뉴요커>의 묘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트럼프의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토요일 아침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열린 존 매케인의 장례식은 매케인이 계획대로 초대받지 않은 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했다."
잡지는 두 명의 전직 대통령과 달변가 딸이 팀을 이뤄 노골적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질책했다고 전한다.
국장 3일 전, 맥케인의 고향 애리조나에서 열린 추도식에선 바이든 전 부통령이 추도사를 전했다.
"내 이름은 조 바이든입니다. 저는 민주당원입니다...
셰익스피어가 말한 대로 우리는 그와 같은 사람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당을 초월해 우리 모두가 매케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유는 국가에 대한 그의 애정 때문입니다. 그는 삶으로 용기를 보여준 사람입니다... 정치는 신뢰입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그를 신뢰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매케인의 오랜 인연을 이야기했다. 6년 전 눈 감은 그의 아들과 같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한 추도사였다. 이젠 더 이상 고민 나눌 동료를 잃은 이의 슬픈 애가였다.
부재가 더 아쉬운 정치인
"이 기념비는 매케인의 참전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우리 미군의 엄청난 희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지난 8월 24일, 싱가포르와 베트남을 방문 중이던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하노이에 있는 한 추모비에 헌화한다. 1967년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한 존 매케인이 북 베트남군에 의해 생포된 곳에 만들어진 기념비였다. 포로로 잡혔던 그는 하노이 교도소에서 5년 반 끔찍한 수감생활을 했다. 미국인에게 치욕의 현장일 수 있는 그곳이 지금은 존 매케인을 기리는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자신이 포로가 됐던 베트남을 직접 방문해 양국 관계 증진에 앞장섰다. 그는 항상 따뜻한 환영을 해 준 베트남인들을 미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자신이 체포된 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방문 기록을 남긴다. 매케인은 자신의 정치 경력의 많은 부분을 미국과 베트남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했다.
"매케인 3주기. 세상의 혼란 속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조언과 지혜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2021년 8월 25일 아침,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위원이 오랜 동료 매케인의 부재를 슬퍼하는 트윗을 올렸다. 길을 잃은 공화당의 현재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다른 많은 이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