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자를 보호하라
"미 도로교통 안전청은 오늘 역사상 처음으로 내부고발자 상을 수여합니다. NHTSA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관련 정보를 제공한 내부고발자에게 2400만 달러 이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이 상은 법률 위반에 따른 벌금 8,100만 달러의 현금 중 허용되는 최대 비율이며 자체 권한 하에 수여한 첫 번째 상입니다."
11월 9일, 미국 도로 교통 안전청(NHTSA)은 내부 고발자에 대한 수상 소식을 알렸다. 2015년 미 의회에서 통과된 <미국 자동차 안전 내부고발자 법>에 따른 첫 번째 사례였다. 금액은 2천430만 달러, 우리 돈 283억으로 전 세계 자동차 부분 내부 고발 사건 중 사상 최대 규모이다. 상금이 주인공은 전직 현대자동차 베테랑 엔지니어 김광호 부장, 미국에서 판매되는 160만 대의 현대와 기아자동차 엔진 안전 문제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주인공이다.
947억짜리 안전 딱지
NHTSA 부행정관의 말대로 그는 '숨겨져 있던 심각한 안전 문제'에 대한 정보 제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년 이상 현대차 엔지니어로 일했던 그는 조직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다 실패하고 2016년, 한국 정부와 미국 NHTSA에 직접 결함을 고발한다.
현대자동차가 자체 개발한 세타 2 엔진의 결함을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다. 엔진과 연결된 설계 결함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운행 시 엔진이 정지되거나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한국의 국토부는 그의 공익 신고 내용을 바탕으로 2017년 5월, 관련 차량의 리콜을 결정한다. 한국 내 최초의 강제 리콜 결정이었다. 김 전 부장은 관련해서 2018년 국민훈장 목련장, 2019년 국민 권익위의 포상금 2억 원을 받았다. 하지만 4년여 조사를 마친 미국 정부 당국의 결정은 그 규모가 달랐다.
미 도로교통 안전청은 그의 자료를 토대로 세타 2 GDi 엔진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11-2014 현대 소나타, 2013-2014 싼타페 스포츠, 2011-2014 기아 옵티마, 2012-2014 쏘렌토, 2011-2013 스포티지 등 160만 대 차량이 리콜 조치됐다. 더불어 미 교통당국은 현대와 기아차엔 8,100만 불의 벌금을 부과했고 안전성능 측정 강화와 품질 데이터 분석 시스템 개발을 위해 총 5,600만 불 투자를 약속받았다. 불이행 시 미 당국은 73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결함 있는 자동차 소유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아 기쁩니다. 미국의 법 체계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현대와 업계 전반에 걸쳐 내 보고가 진정한 안전 개선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미 언론은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해 힘겨운 결정을 한 내부고발자 김광호 씨의 입장을 담담히 전한다.
이에 대한 NHTSA의 소신은 미국인들의 감사의 표시로 읽기 충분하다.
"내부 고발자는 차량 안전과 위법의 중요한 정보원입니다." "내부 고발자가 제공한 정보는 공공의 안전에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미 정부로부터 947억 원짜리 티켓을 받은 현대와 기아차는 안전에 대한 대대적인 조치를 단행 중인 듯하다. 타이거 우즈 전복 사고로 더욱 주가가 높아진 제네시스의 경우처럼 말이다. 실제 사고가 발생해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명성에 흠이 가고 뼈를 깎는 조치를 해야 했던 도요타나 GM에 비하면 현대. 기아차는 운이 좋았다 싶다. 벌금으로 끝난 건 모두 내부 고발자, 김광호 전 현대차 부장 덕인 것이다.
도요타와 GM의 악몽
2009년 8월, 미 샌디에이고 911에 다급한 목소리의 남자가 도움을 요청했다.
"우린 지금 렉서스를 타고 있는데... 125번 도로로 북쪽으로 가고 있어... 근데 가속 페달이 끼어서 움직이지 않아...."
심각한 상황을 눈치챈 911 안내원이 정확한 위치를 묻자 남자가 일행에게 여기가 어딘지 묻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공포에 질려 소리친다.
"지금 190킬로 달리고 있어. 브레이크도 작동 안 해. 고속도로는 1킬로 안 남았는데..."
절규하던 남자는 일행의 비명과 함께 마지막 말을 남긴다.
"아.. 지금 교차로 접근 중... 전화 끊자, 기도해줘."
52초짜리 이 파일엔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 경찰관이었던 마크 세일 로씨와 그의 아내, 열세 살의 딸과 처남의 마지막 목소리가 담겼다.
사건 초기 차량 결함을 부정하던 토요다는 911 통화 내용이 ABC를 통해 미 전역에 방송되자 유족에게 115억을 배상한다. 그리고 차량 제어장치가 아닌 자동차 매트의 문제라며 일부 모델의 리콜 계획을 발표한다. 그러자 NHTSA가 공식 조사에 나섰고 2014년 미 법무부는 도요타에 1조 300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미국 소비자들의 분노는 일제 자동차 거부 운동까지 불러일으켰고 도요타는 1000만 대에 달하는 차량을 리콜해야 했다. 이전부터 도요타 일부 모델에 급발진, 액셀 이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됐지만 회사 측은 조작 미숙, 기계 오류로 치부했었다는 것이 밝혀진 후였다.
"자식을 잃었을 때 부모가 묻는 첫 번째 질문은 '고통받았을까?'입니다. 저는 내 딸이 마지막 순간 느꼈을 고통에 대해 알아야겠습니다."
2009년 6월,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사는 트파 우트 바인 씨의 딸은 GM의 쉐비 코발트 승용차를 운전하다 사망했다. 부모는 딸이 졸음운전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뒤 같은 모델의 자동차들에서 운전 중 전원이 꺼지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동차 회사 GM은 이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점화 스위치 결함 수리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 사이 딸이 사망한 것이다.
2014년 4월, 리콜된 GM 자동차에서 자식을 잃은 20명의 부모들이 미 의회 청문회에 섰다. 회사가 고의적으로 리콜을 지연시키고 운전자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렸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자리였다. GM은 2003년부터 11년까지 생산된 폰티악 G5를 비롯한 260만 대 차량을 리콜했다. 점화 스위치가 약해 제자리를 벗어나는 이 결함으로 적어도 13명이 숨진 상태였다.
이 사건 수습을 위해 GM은 이 공장 노동자의 딸인 메리 바라를 CEO로 임명됐다. 미 3대 메이저 자동차의 첫 여성 CEO는 이렇게 탄생됐다. 취임 첫 임무로 그는 의회 청문회에 나가 자식 잃은 부모들을 위로하고 의원들을 납득시켜야 했다.
2014년 6월 19일,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GM 자동차의 문제를 알고 시정하려던 한 안전 검사원에 대한 기사를 쓴다. 30년 이상 GM에서 일한 코트랜드 캘리란 직원이 문제가 된 차량의 안전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자 침묵하라는 지시를 받은 후 부서가 옮겨졌다는 보도다. 커버스토리 인터뷰를 거절한 그 50대 직원에게 가해진 지시 내용을 블룸버그는 기사에 적시한다.
"GM 차량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아내려고 하지 마세요"
이후 점화스위치 결함으로 인한 사고 수습을 위해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가족들에게 지급한 9억 달러를 포함, GM은 총 2.5 빌리언을 법률 비용과 합의금으로 지출한다. 우리 돈 2조 7천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국가 내부고발자 보호법
"페이스북에 있는 동안 저는 충격적인 진실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바깥에선 아무도 페이스북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대중과 미국 정부 그리고 전 세계에 중요한 정보를 숨기고 있습니다."
페이스북내 비밀 알고리즘에 대한 내부고발자 프란시스 하우겐이 의회 청문회에 나와 증언했다.
영국 십 대 소녀 13.5%가 인스타그램 시작 후 자살 생각이 잦아졌다는 연구를 비롯해 그는 전 직장에서 가져온 문서들로 무장해 현 페이스북 시스템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회사는 13세 미만 아이들을 위한 인스타그램 출시를 일시 중단했다.
그는 지금 유럽의회에 출석해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구글과 엘프, 핀터레스트 등에서 일했던 전문가로서 정부의 규제 밖에 있는 신생 매체들이 세상을 더 나쁘게,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는 문제제기다. 시민들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익 극대화에 매몰된 파워플한 이들 매체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을 극대화하려는 페이스북의 선택으로) 더 많은 분열, 더 많은 해악, 더 많은 거짓말, 더 많은 위협과 전투가 발생했습니다. 이 위험한 온라인 대회들이 사람을 해치고 죽이는 실제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미국의 연방 내부고발자 보호법(Federal whistle blower protections)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페이스북 내 수천 페이지의 문서를 유출해 SEC(공정거래위원회)와 의회에 제공한 프란시스 하우겐에게 법적 보호를 제공하고 있다. 1989년 미국에서 연방법으로 제정된 내부 고발자 보호법의 힘이다. 그들에겐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법률, 규칙, 규정, 관리, 낭비, 권한 남용, 공중보건과 안전에 대한 위험의 증거를 제공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대한 보복으로부터 보호된다.
문제 많은 미국이 그래도 지금의 역동성과 건강함을 갖는 이유, 주머니 속 송곳 같은 이들 내부고발자들이 있기 때문인듯하다. 그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응원하는 미국의 시스템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