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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정 Hyunjung Choi Feb 26. 2023

의사 윌리엄스와 기사 패터슨

23번 버스 운전사가 사는 곳 Paterson, NJ

저지시티 공공 도서관 DVD 진열대 앞, 한참을 서성이다 하나를 빼 들었다. 아담 드라이버와 그의 아내 로라가 곤히 자고 있는 유화 같은 표지, 영화 PATERSON. 


$1을 내고 빌려온 DVD를 다 본 그날 밤, 나는 23번 그 버스를 타고 싶었다. 뒷좌석에 앉아 무심한 듯 평범한 풍경을 바라보며 동네 아주머니와 아이들과 새로 사랑을 시작하는 청년의 수다를 듣고 싶어졌다. 


버스 운전하는 시인의 그곳


영화는 페터슨이란 이름의 한 평범한 남자의 평범한 일주일을 소개한다. 아침 6시에 기상해 잠든 아내로라에게 키스하고 콘프레이크를 우유에 말아먹고는 터벅터벅 걸어 터미널로 출근한다. 23번 버스를 운전하고 돌아와서는 폭포를 마주 보며 도시락을 먹고 오후 운전을 마치고 퇴근. 빈 도시락을 들고 쓰러진 우편함을 세우며 아침의 그 문으로 들어온다. 아내와의 저녁 식사 후 애견 마빈과 산책하다 동네 바에 들려 시시닥거리는 그런 일상이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달라지는 건 아내의 꿈 얘기, 버스 승객들의 수다, 단골 바에서의 소소한 사연들. 그런 일상을 그는 연필을 눌러가며 그의 비밀 노트에 시로 담는다. 매일매일 평범함속에 빛나는 일상을 보석 같은 언어로. 

패터슨이 점심을 먹던 패사익 폭포 앞. 

Poem

I'm in the house.

It's nice out: warm

sun on cold snow.

First day of spring

or last of winter.

My legs run up

the stairs and out

the door, my top half here writing...


나는 집에 있어요.

바깥이 좋네요. 따뜻하고

차가운 눈 위의 태양.

봄의 첫날

또는 겨울의 마지막에

나의 다리는 

계단 오르내리고 

문 밖에 나온 나의 상반신은

시를 쓰고 있고...


다락방에서 시 쓰던 의사 윌리엄스


내가 패터슨을 방문한 날은 햇살이 눈부신 5월의 휴일이었다. 어디선가 졸업식을 마친 이들이 알록달록한 가운을 입고 햇살보다 눈부신 젊음을 기록하는 중이었다. 난 거대한 소리의 패터슨 폭포에 앉아 영화 속의 시를 읽는다. 


230년 역사의 수력 면방직공장, 밀 방앗간


이 영화 속 패터슨의 많은 시는 19c말에 이 지역에서 나서 자란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작품이다. 윌리엄스는 소아과 의사였다. 1883년 페터슨 위에 있는 러더퍼드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 의대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수련을 받지만 다시 고향에 돌아와 소아과의사로 평생을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 왕진 가방을 들고 동네 환자들을 보러 다녔고 집에 돌아와선 다락방에 올라와 시를 썼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윌리엄 칼를로스 윌리엄스는 가장 아프고 낮은 이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시에 담았다. 그가 평생 써온 글은 말년에 시인 최초의 내셔널 북 어워드 수상을 안겨줬고 퓰리처상을 받게 했다.  


이 시인을 사랑한 감독 짐 자무쉬는 버스 기사 패터슨에게 시인의 모습을 대입시킨다. 젊은 기사는 왕진 가방 대신 도시락 가방을 들고 다락방이 아닌 어두운 지하실 책상에서 일상의 민낯을 시로 기록하게 한다. 


평범한 것의 소중함 


극 중 나른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패터슨은 전역한 해군이다. 군대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원래 그의 성격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감독은 설정한 평범치 않은 주인공 전직은 직장 동료를 옥죄고 있는 아이의 보철비와 집 모기지, 자동차 값 같은 평범한 삶 전반을 초연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를 대신해 아내의 꿈 이야기와 뒷좌석 승객들의 수다, 하다못해 그의 작품을 찢어놓은 


 감독 영화 <Paterson>의 무대가 되었던 도시 Paterson. NJ transit 23번 버스 운전사 아담 드라이버의 잔잔한 일상처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 속에 왁자지껄 모여사는 곳. 300년 된 수력발전의 흔적과 그 폭포와 아이들과 졸업을 축하하는 젊은이들이 오래된 시골 도시의 오후를 에너제닉하게 만든다. 영화 속 승객들의 잡담처럼. 패터슨이 버스 운행을 끝내고 나와 시를 쓰던 저 벤치엔 평범한 패터슨들이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피크닉을 즐기고 낮잠을 잔다. 


미국 건국 아버지 알렉산더 해밀턴이 명명한 최초의 혁신도시 Paterson

Another One


When you're a child 

you learn

there are three dimensions:

height, width and depth.

Like a shoebox.

Then later you hear 

there's a fourth dimension:

time.

Hmm.

Then some say

there can be five, six, seven...

I knock off work,

have a beer

at the bar.

I look down at the glass

and feel glad.


다른 하나


어렸을 때, 

배웠지. 

세 가지 차원이 있다는 것을

높이, 너비, 깊이.

마치 신발상자처럼 말이야.

그리고 나중엔

네 번째 차원을 알게 된다. 

바로 시간.

흠.

그리고 누군가 말하지 

5, 6, 7차원...

일을 마치고 

나는 술집에서 

맥주를 마신다.

잔을 내려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오직 사랑하는 자만이...


영화는 말한다. 뻔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당신이 바로 시인이라고. 매일 보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들을 만나기 위해 나도 패터슨에 가 뉴저지 트렌짓 23번 버스 타본다. 그 낡고 오래된 도시에서. 그리고 나에게 빈 노트를 선물하고 싶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한다는 말과 함께. 일상에 복잡해진 머리를 흔들고 패터슨처럼 중얼거리고 싶다. Best plan is no plan이라고. 

패터슨 시, NJ (Google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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