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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우진 Jan 28. 2022

크리에이터에게는 '투자자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를 경영하는 마음 vs. 나를 기르는 마음


1. 크리에이터의 시대가 온다. 이 뉴스레터를 통해서도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지금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다. 인터넷이 등장하자마자 언급된 일이다. (나는 1994년에 이미 '사이버 스페이스와 디지털 민주주의 및 열린 시장'에 대한 책을 읽었다) 그저 크리에이티브를 향해 인터넷 환경이 계속 진화해왔을 뿐이다. 인터넷은 애초부터 크리에이터를 위한 기술적 기반이었으므로, 크리에이터의 시대란 것은 오래된 미래에 가깝다.


2. 여기서 크리에이터는 아티스트와 큐레이터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암묵적으로 아티스트, 크리에이터, 큐레이터의 개념을 구분해왔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이들은 굳이 구별될 필요가 없다. (물론 세부적인 차이는 존재하는데, 이건 조만간 따로 얘기하자) 새로운 개념이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크리에이터만큼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말도 없다.


3. 더불어, 디지털 환경은 언제나 질문을 본질적인 자리로 되돌린다. 크리에이터가 포괄적 개념이 되는 배경이다. 과거의 대중음악가는 팝 스타와 거의 같은 뜻이었다. 스타가 되기 위한 조건과 역량은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영향력이 큰 소수의 미디어와 게이트키퍼(혹은 큐레이터)가 그들을 스타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이런 구조에서 자본력이나 바이럴 같은 마케팅은 필수적이다. 스타가 아닌 대중음악가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의 음악성이나 영향력 역시 게이트키퍼들에 의해 평가되고 전달되었다. 한편 소설가는 어떤가. 미술가는 어떤가. 사진작가는 어떤가. 이들 모두 대중성, 시장성, 예술성이 게이트키퍼들에 의해 좌우되었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이 고도화될 수록 이러한 중간 매개자의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크리에이터 경제의 핵심이 D2C에 있다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4. 이런 맥락에서, 크리에이터는 재능과 역량 뿐 아니라 마음가짐이 반드시 요구된다. 이제 나는 그 얘기를 할 것이다. 특히 두 개의 마음에 대해서. 


5. 먼저 공감의 마음이다. 중간 유통자가 사라지면 커뮤니티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 커뮤니티는 그저 (잠재적)소비자가 잔뜩 모인 곳이 아니다. 특정한 취향, 태도, 안목과 문화를 공유하는 곳이다. 구심점은 크리에이터다. 다만 팬클럽 같은 건 아니다. 규모도 중요하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하면, 크리에이터의 메시지가 구심점이 되는 커뮤니티다. 이런 커뮤니티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필요하다. 이때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공감이다. 그래서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잘 듣는 것이다. 크리에이터는 잘 들어야 한다.


6. 다른 하나는 투자자의 마음이다.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한데, 나는 되도록 사업가와 투자자를 구분하려고 한다. 앙트프레너 아티스트, 즉 사업가형 아티스트라는 말이 쓰이지만 나는 이 말에 양가적인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티스트가 스타트업처럼 비즈니스 마인드, 성장 욕구, 미션을 가지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개념은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7. 크리에이터는 누가 시키거나 해야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 기반에는 즐거움이 있다. 이 쾌락의 동기로는 이타심과 공명심이 교묘하게 섞인다. 이를테면 '관종'이다. 그래서 크리에이터에게는 '계속 만드는 마음'이 중요하다. 계속 만들면서 성장하고 성장하면서 성취를 얻고, 그 과정에서 재능을 자원으로, 자원을 자산으로 만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8. 한편 크리에이터는 종종 n개의 캐릭터를 가지기도 한다. '차우진'이라는 개인에게는 '음악평론가'라는 정체성도 있고, '사진애호가'라는 정체성도 있고, '기획자'나 '작가'라는 정체성도 있으며 '비즈니스 자문가'로서의 정체성도 존재한다. 또한 요리를 하고, 집을 꾸미고, 고양이의 털을 빗기고, 연애를 하고, 가족을 챙기고, 수입을 걱정하는 '생활인'이라는 정체성도 있다. 이 여러 정체성이 상호작용한 결과가 바로 '크리에이터로서의 차우진'이란 존재다. 


9. 그렇다면, 내가 '사업가형 아티스트'로서 무엇을 해야할까. 나의 재능/자원, 그리고 정체성을 비즈니스로 전환하는 일이다. 이것은 지금 매우 필요하고 앞으로도 중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나는 이 각각의 정체성(혹은 부캐)을 먼저 키울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내가 나를 기른다. 그러나 양육보다 더 목적지향적이다. 이것이 바로 투자자의 마음이다. 


10. 내가 말하는 투자자는 어쩌면 '시드 투자자'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이러한 투자자에겐 두 가지 역량이 필요하다. 하나는 '수익성과 성장가능성을 판단하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비전을 찾아내는 안목과 통찰력'이다. 내가 나를 기른다는 것, 혹은 내가 나에게 투자한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다시말해, 사업가로서 내가 나를 경영하는 것과 투자자로서 내가 나를 기른다는 것은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11. 과거에는 정보와 지식이 중요했다. 배우고 익히고 경험하는 비용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와 지식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온전히 내 머릿속에 없어도 된다. 검색어를 찾는 역량과 흩어진 정보를 묶어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생긴다. 이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앞으로는 정보력이 아니라 지혜, 즉 안목과 통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질 것이다.


12. 크리에이터 뿐 아니라, 콘텐츠 비즈니스를 설계하는 미디어와 서비스 사업자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필요하다. 웹 3.0이라고 불리는 미래 인터넷은 기존의 중간자, 연결자, 매개자의 역할을 지워버리게 될 것이다. 그 빈 자리는 크리에이터 생태계-커뮤니티가 채우게 된다. 커뮤니티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거듭 강조하지만, 바로 메시지가 이런 구조를 만든다. 메시지는 업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크리에이터, 사업가, 브랜드는 모두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13. 지금은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지속성장성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본다. 어제 하던 걸 오늘도 하고 내일도 계속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보다 내일 더 성장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내가 크리에이터에게 사업가보다는 투자자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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