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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우진 Mar 25. 2022

민희진 어도어 대표를 만났습니다

feat. 비애티튜드 매거진의 '아티스트 프로젝트' 민희진 편

지난 2월, 민희진 어도어(ADOR) 레이블 대표를 만날 자리가 있었습니다. <비애티튜드>라는 매거진에서 마련한 대담에 참석했는데요, 꽤 긴 시간 이어진 대화가 기사화되어 공유합니다. 저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의 인터뷰어가 함께 했고, 저는 주로 K-POP 산업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뉴스레터에는 제 질문만 발췌했는데, 본문 링크로 가시면 좀 더 입체적인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총 2부작으로, 4월 7일에 나머지 2부 기사가 발행됩니다. 그때 다시 공유할게요. ^^ 고맙습니다.



Part 1. 민희진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얼마 전 하이브 산하의 독립 레이블인 어도어ADOR를 이끄는 민희진 대표가 «버라이어티Variety»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영향을 미친 여성’ 리스트에 선정되었다. K팝 브랜딩 혁신가로서 ‘콘셉트’의 개념을 재정립한 그는 과거 소녀시대를 시작으로 새로운 걸그룹 시대를 열었고 샤이니, 엑소 등을 통해 혁신적인 아티스트 브랜딩을 제시했다. 2022년 어도어에서는 새로운 걸그룹 론칭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매체 노출을 극도로 지양한 까닭에 가장 최근 소스는 첫 방송 출연인 ‹유 퀴즈 온 더 블럭› 정도다. «비애티튜드»와 민희진 대표의 만남은 글로벌해진 K팝 산업의 중심에서 종횡무진으로 움직인 그의 시각을 깊이 있게 포착하는 흥미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https://beattitude.kr/issue-02/artistproject-minheejin-part1/

(차우진) 우리가 아는 희진 님은 SM엔터테인먼트의 아트 디렉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고, 하이브의 CBO, 그리고 현재는 어도어의 대표입니다. 대화에 앞서 아트 디렉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BO, 레이블 대표에 대한 용어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희가 알고 있는 것과 희진 님이 생각하는 간극을 줄이고 싶어서요. 

용어 정리를 위해 인터뷰 분량을 할애하고 싶진 않네요. (웃음) 제겐 직함이나 타이틀이 중요해지지 않은지 꽤 됐어요. 조직 내에서 역할은 분명 중요해요. 하지만 자발적이라는 전제하에 업무 수행 영역이 애초에 주어진 역할 이상의 것이 되는 순간, 타이틀은 이미 의미를 상실하고 오히려 걸리적거리는 방해 요소가 될 수 있어요.

물론 모든 사람이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해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역할의 확장은 기본적인 수행 영역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바탕으로 시작되죠. 명확한 목표나 목적을 성취하려면 본연의 업무 이상의 것들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역할의 확장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기 마련이고, 오히려 억지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상식적인 경우라면요. 그렇게 역할이 확장되기 시작하면 어차피 하나의 타이틀만으로는 표현이 어려워져요.

타이틀은 조직 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을 위해 필요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자체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개인의 의식 수준이겠죠.


(차우진) 한국 콘텐츠 산업의 빠른 성장을 목격하는 입장에서, 그 대표적인 예가 K팝이라는 점을 부인하진 못합니다. K팝의 성장은 다양한 아티스트 덕분이겠지요. 그렇지만 K팝 성공 공식에서 자주 말하는 시각적인 강점에서 희진 님이 차지하는 지분은 굉장히 크다고 느낍니다. 주류 K팝 디자인에도 어떤 흐름이라는 게 생겼고요. 스스로 생각할 때 K팝 산업에 기여한 바는 무엇이라고 분석하시나요?

저 스스로는, 그간 진행해온 업무 영역을 시각적인 부분에 한정하지 않아요. 앞선 언급처럼 저는 직함을 조직이 조직 관리를 위해 부여하는 분류명 정도로 생각해요. 실제 업무 영역을 포괄하지 못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요. 설명한다고 해도 각자가 지닌 기존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작용하기 때문에 완벽한 이해가 어렵기도 하고요.

사실 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원하는 결과를 획득하는 게 중요하죠. 영혼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어요. 제가 SM엔터테인먼트에 처음으로 입사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K팝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상당히 달랐어요. 당시의 고정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개성을 부여하고 싶었죠. 주류 아이돌 시장에 관심이 없었음에도 일에 뛰어들 수 있었던 치기가 여기서 비롯된 것 같아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 스스로는 ‘K팝 산업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는 개념에 의의를 둬요. 시각 요소와 디자인에 한정한 이야기는 다소 작은 개념이지만, 동시대성 측면과 가시성의 관점에서 여전히 주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 요소가 진정한 강점으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사실 시각 외의 영역에 대한 이해와 지능적인 융합이 필수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해요. 시각적인 부분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거죠. 업의 근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과 결합을 기반한 새로운 시도만이 오히려 새로운 시각 문화의 지평을 열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어요. 


(차우진) 레이블을 설립한 이유가 보이는 것 같네요.

그간 매니저, 연예인, 작곡가, 프로듀서가 주로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해왔어요. 매니지먼트 출신 대표가 음악이나 시각 분야에 관여하는 것이나, 작곡가 출신 대표가 매니지먼트, 시각 분야를 관장하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잖아요. 앞선 언급처럼 기존의 역할과 실제로 수행 가능한 역량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제가 레이블을 설립한 게 실상 놀라운 일도 아니에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이기 때문에 더 가능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해요. 

제가 그리는 큰 그림을 온전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가 원하는 음악이 바탕이 돼야 해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캐스팅, 트레이닝, 디자인, 사업으로까지 이어져야 하죠. 그래서 레이블을 설립한 것이기도 해요. 청사진이 확실할수록 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봐요.


(차우진) 하이브는 ‘음악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사업의 방향성으로 잡고 있어요. 비즈니스는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을 통한 가치 창출’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희진 님이 CEO를 맡은 하이브 산하의 레이블 어도어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나요?

논문을 쓸 수도 있는 주제 같습니다. 문제가 없는 업계는 사실 존재하지 않죠. 주제가 무거워 단숨에 말하기 어렵네요. 제가 레이블을 설립한 이유이기도 해서 긴 설명이 필요한 내용이지만, 요약해보자면 기존 사업의 정형화된 루틴을 벗어나서(뻔한 말 같지만, 실제 현실에서 구현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문제죠), 용기 있게 새로운 활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해 대안적 출구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이브에서 의장을 맡고 있는 방시혁 님과 저는 비슷한 면도 있지만, 각자 추구하는 결은 달라요. 그 다름에 대한 필요와 인정이 있었기 때문에 제 레이블을 론칭하게 되었죠. 하이브의 CEO인 박지원 님도 동일한 생각이었고요.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기보다 조직 내 서로 다른 가능성이 공존할수록 성공의 확률은 높아져요.

산업이 어느 정도 고도화되면 기존의 안정적 방식에 안주하는 정체기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잘 알지만, 현재 K팝 신이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에요. 새로운 시도가 유의미해지려면 적기가 필요해요. 그래서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고요.


(차우진) 크리에이티브 산업에서 밸런스와 텐션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창의적인 사람은 현실 감각과 몽상가적 기질을 동시에 가져야 하죠. 크리에이터 민희진과 CEO 민희진은 밸런스와 텐션의 상관관계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조절하나요?

크리에이터로 존재하고 싶어 CEO가 되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기 굉장히 다른 역할입니다만, 또 엄청나게 연결되어 있어요. 자본으로 치환할 수 없는 상업 창작물은 생명력이 떨어져요. 마찬가지로 창작물과 이질적인 사업은 대성하기 어렵다는 선례를 무수히 봐왔고요.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상업물에서 창작과 자본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당연한 사실을 외면하는 순간, 모든 일이 꼬이더라고요. 

저는 CEO라는 타이틀 자체엔 관심이 없어요. 겪는 와중이지만 엄청난 책임감을 바탕으로 하는, 이전과는 또 다른 결의 괴로움과 피곤함이 가득한 역할이에요. 제가 원하는 의사결정을 위해 레이블을 설립했고 그래서 택할 수밖에 없었던 직책일 뿐이죠. 좋은 창작물이 효율적인 사업과 만나 상업적인 성공으로 꽃피게 된다면 얼마나 환상적인 일이 펼쳐질까,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날을 위해 오늘의 균형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차우진) 거칠게 정의하자면, K팝 산업은 ‘아티스트십을 프로듀싱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동의하시나요? 희진 님이 보시기에 K팝 산업은 과거 2010년대에 비교해 현재 2020년대에 이르러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나요? 가장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가파른 성장세만큼이나 K팝 산업에 대한 의의나 정의 또한 정말 다양해졌다고 생각해요. 이 또한 논문감이라 짧게 요약하기 어렵겠네요. 근 10년 새 참 많은 것이 빠르게 변했어요. 인식의 변화도 크게 달라졌죠. 따라서 투입되는 자본력도 향상됐고요. 제가 이직한 후 최근 3년간의 음반, 뮤직비디오 제작에 쓰인 예산 규모만 보더라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더라고요. 그런데 공급(제작)이나 소비 방식이 규모 외의 영역에 있어 급격히 달라진 위상만큼 크게 발전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바뀌었으면 하는 지점은 변화에 대한 수용력이에요. 언젠가부터 고착화된 패턴에 안주하며 일관된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마냥 비슷한 콘텐츠가 양산되고 소비되고 있어요.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마찬가지로 누가 더 문제냐고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도 같아 보여요.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지만, 노력하는 자는 조금이라도 다른 개념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도전에는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굶어 죽을 수도 있는 도전은 누구도 강요할 수 없어요. 소비 없는 공급이란 존재할 수 없죠. 그래서 앞서 공급자와 소비자 간 인식의 개선, 경쟁보다는 즐기는 자세에 대한 바람을 말씀드렸어요. 

코로나 시대의 비극인지, 심화된 반목이 개인적으로 참 아쉬워요. 사소한 일에도 과하고 심각한 잣대와 검열을 내세워 싸우는 모습을 거의 매일 목격하는 기분이에요. 넓은 포용력과 수용력이 생긴다면 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말이죠.

특히 문화 산업에서는 새로움을 수용하는 자세가 선행, 수반하지 않는다면 다양성 자체가 존재할 수 없어요. 비단 크리에이티브 영역뿐 아니라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당면한 기본 숙제를 외면하면서 미래의 이상을 논하는 것은 의미 없는 공염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https://maily.so/draft.briefing/posts/aa873c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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