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전반을 살았던 일본화가 후지타의 일생
후지타 쓰구하루(藤田嗣治)는 19세기말에 태어난 일본의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그는 주로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나중에는 프랑스로 귀화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활약하였는데, 특히 그는 고양이와 여성을 잘 그렸다. 그는 일본 회화의 기법을 서양의 유화에 접목시켰으며, “유백색 피부”라고 불리는 독특한 누드 조각상은 서양 미술계에서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1920~30년대에 파리에서 활동한 국제적 예술가 그룹인 “에콜 드 파리”(École de Paris)으 대표적 화가로 꼽히고 있다.
영화 <후지타>(FOUJITA)는 화가 후지타 쓰구하루의 전기 영화로서 2015년 일본과 프랑스가 공동제작하였다. 이 영화의 캐치프레이즈는 "파리가 사랑한 일본인 후지타를 아시나요?"이었다.
1920년대의 파리. 에콜 드 파리(École de Paris)를 대표하는 화가인 후지타 쓰구하루는 유럽 예술계에서 단단히 입지를 굳혔다. 동료 화가들이나 무용수 들과 방탕한 생활을 보내던 그는 그림을 아무리 잘 그려도 명성을 얻지 못하면 대성할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는 “후후”(적당주의자)라는 별명도 별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의 명성을 높이는데 도와준 페르난도를 버리고 새로운 애인 유키와 향락에 빠졌다. 그런 가운데 그의 그림은 점점 더 높은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는 모델인 키키에게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고, 바보 같은 소란을 거듭할수록 자신의 그림은 점점 더 아름다워진다.”며 뻐기기 일쑤였다.
1940년, 일본이 전쟁의 길로 폭주할 무렵 후지타는 일본으로 돌아온다. 그는 군부로부터 전쟁의지를 북돋울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는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라고 하면서 의욕적으로 전쟁을 고취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격렬한 공습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그가 거주하고 있는 도쿄도 공습의 피해를 받게 되었다. 그는 아내 기미요(君代)와 함께 시골로 피난을 간다. 그곳에서 후지타는 이웃 농부 가족들 속에서 풍요로운 자연의 품에 안겨 생활하는데, 여기서 그는 새로운 일본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전쟁은 결국 일본의 패배로 끝이 났다.
전쟁이 끝난 후 후지타는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다시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맹세한다. 그는 프랑스 랭스에서 교회의 설계에서부터 벽화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면에 걸쳐 작업을 관장하였다. 그 벽화에는 후지타와 기미요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후지타가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의욕적으로 작품활동을 한 곳은 랭스이다. 필자는 지난 5월 말 약 한 달간 일정으로 프랑스 여행을 하였는데, 랭스에서도 이틀간 머물렀다. 랭스는 프랑스 왕정 시절 왕들이 대관식을 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의 성당과 교회들은 국가에서 특별히 관리되고 있다. 이곳에는 수많은 프랑스의 역사 유물과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다. 이 영화를 여행 전에 감상했더라면 후지타 부부의 벽화가 그려진 성당을 찾아가 보았을텐테,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