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9) 칭다오에서 둔황까지- 중국 횡단여행 (38)
구채구(九寨溝)는 중국 사천성(四川省) 북부에 위치한 세계적인 자연 관광지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아홉 개의 티베트족 마을'이 있는 계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경관으로 인해 예로부터 “황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보지 않고, 구채구를 보고 나면 다른 물을 보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해발 2,000m에서 4,500m에 이르는 고원 지대에 자리한 카르스트 지형의 협곡이다.
구채구 풍경구는 아주 넓지만, 관광객에게 개방된 곳은 구채구 공원의 계곡지역으로서, 석회암 지형 위로 형성된 호수와 폭포와 숲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은 석회암 지형이 마치 다랭이 논 같은 형상을 하여 층층이 이어져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가양각색의 다양한 폭포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호수와 샘으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보연, 물이 어떻게 이렇게 투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계절별로 뚜렷한 특징을 가지며 각각 다른 절경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중 단풍이 든 가을이 최고라 한다. 우리나라는 단풍의 최절정기가 10월 말이지만 여긴 지대가 높기 때문에 단풍이 빠를 것 같다. 그러기에 지금이 단풍이 절정기가 아닐까 기대하고 있다.
구채구는 Y자 형태를 띠고 있다. 입구에서 들어가 바로 곧은 부분이 수정구 (樹正溝)로서 구채구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메인 계곡이다. 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호수와 샘, 폭포, 그리고 티베트족 마을이 밀집해 있다. Y 자 모양의 왼쪽 상단 계곡은 측사와구(則渣哇溝)로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다. 구채구에서 가장 큰 호수인 장해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오른쪽 상단 계곡은 일칙구(日則溝)로서 가장 많은 절경이 밀집해 있어 구채구의 백미로 꼽힌다. 이곳에는 다양한 색채의 호수와 폭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구채구는 굉장히 넓고 길다. 입구에서 관광객에게 허용된 지역으로는 가장 먼 곳인 장해해까지는 35킬로 정도나 된다. 도보로 돌아보기에는 어려워 공원 내에 친환경 관광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구채구는 중국 최고의 관광지로서 연간 수천만명의 탐방객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수많은 해외관광객들이 찾아오며, 특히 우리나라 단체관광 명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방문에서 나는 외국인이라고는 서양 여자 두 명을 본 것이 전부였다. 한국 관광객은 한 사람도 못 봤다.
아침을 컵라면으로 때우고 오전 8시쯤 숙소를 나섰다. 구재구 입구까지는 2킬로 남짓이지만 힘을 아끼기 위해 차를 탔다. 곧바로 구채구 입구에 도착했다. 일기예보로는 오늘 하루 종일 비라고 했지만 날씨는 맑다. 구채구 입구에 해당하는 구채구 관광센터로 갔다.
중국의 명승지에 가보면 우리가 가졌던 상상은 항상 배신당한다. 구채구 들어가는 길은 숲이 우거지고 계곡물이 콸콸 흘러내리는 그런 곳으로 상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거대하고 화려한 현대식 건물에 자동화된 기계들이 즐비하게 설치되어 있다. 이 구채구 관광센터는 구채구 출입문임과 동시에 관리 운영 및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는 복합건물이다.
관광센터에 들어가니 이미 몇천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었다. 입구에는 8대의 자동개찰기가 설치되어 있고, 방문객들은 입장권 대신에 신분증을 갖다 대고 통과한다. 줄은 아주 길지만, 8대의 자동개찰기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으므로 대기 시간은 길지 않다.
입구를 통과하면 바로 버스 승차장이다. 버스 탑승권은 입장권을 예매할 때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며, 공원 내에서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다. 버스는 앞과 중간 부분에 각각 문이 있다. 이 문은 폭이 넓어 승객들이 세 줄로 탑승할 수 있다. 버스 승강장에는 3대의 버스가 동시에 정차하여 승객을 태운다. 앞뒷문으로 각각 3명씩 차에 오르므로 일 분도 안돼 승차를 완료하고 버스는 출발한다. 그러면 다음 버스 3대가 또 동시에 정차한다. 마치 오토메이션 대량생산 체제인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 많은 관광객들을 다 소화할 것 같지 않다.
관광버스를 탔다. 구채구는 Y자 모양이라 했는데, 어느 쪽을 갈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입구를 통해 들어와 앞에 서있는 버스에 올라타고 어디로 갈지 처분만 기다리는 거다. 구채구 공원은 너무나 넓기 때문에 도보로 돌아다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제일 높은 곳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가 내려오면서 경치를 즐긴다. 힘이 들면 버스를 타다가 또 걷다가 하면 된다.
버스가 출발했다. 곧 세워줄 걸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달린다. 중간에 가끔 정차하고 내리는 사람도 있는데 대부분은 그냥 타고 있다. 버스는 위를 향해 달린다. 한 30분은 달랐을까, 사람들이 모두 내린다. 우리도 따라 내렸다.
앞에 넓은 호수가 펼쳐져있다. 아주 투명하고 맑은 호수이다. 사진에서 본 구채구는 거의가 계단식의 샘들이었는데, 이렇게 큰 호수가 있을지 몰랐다. 이 호수는 ‘전죽해(箭竹海)’라 한다. 괴연 바다라 부를 만한 넓은 호수이다. 호수 주변에 화살촉으로 쓸 수 있는 대나무(箭竹)가 울창하게 자라나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전죽해로 왔으니 이곳은 구채구의 오른쪽 상단에 해당하는 일칙구(日則溝)이다.
고도를 확인하니 해발 2,700미터 정도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높은 곳까지 와 본 적이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이곳은 높은 지대라 고산병의 위험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물론 주위 사람들도 그런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보통 산 높이가 2,000 미타만 넘어도 관목이나 있을까 큰 나무는 보기 힘든데, 여긴 높이에도 불구하고 숲이 우거져있다. 주위는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들 산은 높이가 4,000미터도 넘을 것 같다.
도로를 제외한 구채구의 모든 탐방로는 모두 넓은 데크길이다. 그래서 걷기에 아주 편하다. 전죽해 탐방로는 도로 쪽 길과 숲 쪽 길이 있다. 우리는 숲 쪽 길을 택하였다. 그런데 이 쪽 길을 택하고 보니 해가 건너편에 있어서 사진을 찍으면 역광이다. 그래도 도로 옆을 따라 걷는 것보다는 숲 속을 걷는 것이 훨씬 낫다.
푸른 하늘과 푸른 호수, 그리고 푸른 산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호수 바닥에는 쓰러진 나무들이 보이는데, 물이 하도 맑고 투명하여 제법 깊은 수심에도 불구하고 마치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다. 호수옆 탕방길을 걷다 보면 조금의 각도 변화로 새로운 호수 풍경이 펼쳐진다. 거의 백두산 높이에 가까운 높은 산에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는 것이 경탄스럽다. 영화 <영웅>에서 주인공들이 이 호수 위에서 대결을 벌였다고 하는 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버스에서 승객들이 모두 내리는 것 같아 우리도 이곳에 따라 내렸는데, 이 위에도 원시삼림(原始森林)과 천아해(天鵝海)라는 명소가 있다고 한다. 새삼 스러이 다시 그곳에 올라가기도 그렇고 해서 우리는 여기서부터 내려가면서 관광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