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란저우에서 구채구로

(2025-10-08) 칭다오에서 둔황까지- 중국 횡단여행 (37)

by 이재형

(산속의 대도시 롱난으로)

란저우 역에서 롱난(隴南)까지 가는 7시 기차를 예약해 두었다. 롱난에서 구채구까지 가는 버스를 예약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일찍 롱난에 도착해야 여유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6시쯤 되어 호텔 앞으로 나가 택시를 기다렸지만, 이른 아침이라 차가 잡히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디디출행을 통해 차를 불러 란저우역까지 갔다. 란저우역은 이전부터 있던 오래된 역이었다. 고속철 역과 달리 좁고 사람들로 붐비기도 했지만 괜찮은 역사였다. 지금까지 기차여행이 늘 만차여서 끼여 왔는데, 오늘 기차는 승객이 적어 널널하다.


란저우 역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위는 깊은 산으로 변한다. 높은 산 사이로 기차가 달리다 보니 주위는 절경의 연속이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기차를 탔을 때는 거의가 광활한 평야를 달렸는데, 오늘은 또 이렇게 첩첩산중으로 변한다. 역시 넓은 나라이다. 10시 조금 못되어 롱난역에 도착했다. 아주 시골 도시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도시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낙후된 곳인 것 같다. 어느 정도 규모인 도시인가 찾아봤더니, 윽! 인구가 270만이나 된다. 대구와 비슷한 정도의 도시다. 중국은 정말 도시라면 가볍게 인구 몇백만은 되는 것 같다. 과연 인구대국이다.


(구채구행 버스를 타다)

고덕 지도를 보면 롱난에는 2개의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는데, 두 곳 모두에서 구채구행 버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그런데 역에서 멀리 떨어진 우두(武都) 터미널에서 타야 구채구 접근이 좋은 것으로 나타나있다. 구채구에도 2개의 터미널이 있어 하나는 구채구 풍경구 내에 있지만 다른 하나는 풍경구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구채구 시내에 있다는 것이다. 우두 터미널로 가야 구채구 풍경구까지 직행하는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고산으로 둘러싸인 롱난시

롱난 역에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안내 데스크를 찾아가 물었다. 그런데 자꾸 말이 엇갈린다. 알고 보니 역 바로 옆에 있는 터미널이 우두 터미널이었다. 터미널로 내려가니 승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남녀 몇 명이 매표소 옆 길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우리가 내려가니 그중 2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자 하나가 반가운 듯이 따라와 구채구에 가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자기를 따라오라면서 앞장서서 걷는다. 삐끼인가 생각하고 내키지 않았지만 따라갔다.


구채구행 버스는 한 시간 뒤에 있었다. 대합실에 승객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다. 버스표를 사고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니 버스가 온다. 버스를 타고 보니 좀 전에 내가 삐끼라고 생각했던 젊은 여자는 차장이었다. 잠시 그녀를 경계했던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구채구행 버스는 12시에 출발했다. 우리나라 일반고속버스보다 좀 못한 버스이다. 구채구까지 대략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구글맵으로 확인해 보니 약 280킬로다. 험한 산길을 어떻게 그 시간에 갈 수 있는지 믿기지 않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버스 시간이 7~8시간, 길게는 10시간 이상으로 나오는데, 확실히 중국은 교통 여건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것 같다.

구채구 가는 길의 도로옆 풍경

(고산지대에 잘 정비된 도로)

버스는 바로 고속도로로 오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산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고속도로는 높은 산 사이를 뚫고 뻗어있다. 그냥 높은 산이 아니다. 고속도로 바로 옆에서 그냥 곧장 까마득히 솟은 산들이다. 본격적인 산악지대로 들어가는 것 같다. 한 시간 이상을 달린 후 고속도로는 끝나고 일반도로로 연결된다. 그렇지만 도로상태는 좋다. 인공지능들은 모두들 아주 험한 구간이라 했는데, 모두들 잘못 알고 있다.


산은 점점 더 높고 험준해진다. 도로 옆으로는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거의 완공단계에 들어 선 것 같다. 이렇게 높고 험준한 산악지대에 고속도로를 놓을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다. 도로 주위의 산들은 높은 것은 3,000미터가 넘을 것 같다. 높은 산들이 많으니 경치도 절경이다. 경치를 감상하느라 버스 타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버스가 어느 산골 마을의 작은 터미널에 들린다. 알고 보니 이곳은 구채구 읍내의 버스 터미널로서 이곳에서 20분 정도 휴게시간을 가진 후 출발한다고 한다. 우리가 가는 구채구 풍경구는 이곳에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산속의 작은 마을인데 주위에 여러 채의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정말 중국의 고층아파트 붐은 못 말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51009_143000.jpg
20251009_143117.jpg
구채구 읍내의 고층아파트

(나도 모르게 진상짓)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버스에서 자꾸 “삐익삑”하는 불쾌한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금방 그치겠거니 생각했는데, 계속 들려온다. 차장에게 뭔가 조치를 취해달라고 하고 싶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몇몇 승객이 차장에게 이야기를 하니, 차장이 승객들을 향해 뭔가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다. 불쾌한 소리를 계속 참으며 가는 도중 근처의 승객이 내게 무슨 말을 건넨다. 안전벨트를 채우라는 거다. 귀찮지만 안전벨트를 하고 나니 그 불쾌한 소리가 멈춘다. 불쾌한 소리의 원인은 나였다. 내가 진상짓을 한 거다.


(구채구의 숙소 도착)

구채구에 도착하였다. 지도를 확인하니 숙소는 터미널에서 산 위쪽을 향하여 1.5킬로 정도의 거리이다. 캐리어를 끌고 가기에는 좀 멀다. 택시는 좀 보이는데, 오후 시간이기 때문에 모두 내려가는 차이다. 택시를 잡고 숙소가 있는 관광촌으로 가자고 했다. 구채구 풍경구 앞을 통과하는데, 구채구에서 나오는 사람과 차들이 얽혀서 난리도 아니다. 겨우 힘들게 그 구간을 빠져나와 호텔이 있는 관광구로 들어갔다. 그곳도 차와 사람이 뒤엉켜 복잡했다.


기사는 그 속을 뚫고 호텔 바로 앞에 차를 세워준다. 요금은 8.5위안, 택시 기사는 이 짧은 거리를 오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또 장거리 손님을 놓쳐버렸다. 기사는 웃는 얼굴로 트렁크의 짐을 내려준다. 미안해서 20위안 주겠다고 했지만, 기사는 부득부득 미터기 요금대로만 지불하라고 한다. 아주 호방하게 잘생긴 청년이었다.

20251009_152128.jpg
20251009_173257.jpg
구체구 관광촌 입구

숙소는 구채구 입구 옆을 지나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관광촌이다. 호텔과 음식점과 슈퍼로 가득 잔 곳이다. 1980년대의 설악동이 연상된다. 입구에는 천당구(天堂口)라는 표지판이 서있다. 옛날의 설악동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화려하지만 향락업소는 없는 것 같다. 분위기로 봐서는 밤새 시끄러울 것 같았는데, 아주 조용했다. 투숙한 호텔은 1박에 6만 5천 원 정도였는데, 말이 호텔이지 관광지의 조그만 숙소이다. 객실은 20개도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방은 깨끗했고, 무엇보다 직원들이 아주 친절했다.


(기상예보는 비소식인데 어떡하나?)

구채구에서는 3박을 할 예정이다. 당초 구채구에서 3박, 황룡에서 2박을 한 후, 시안으로 가려고 했으나 기차표를 못 구해 란저우와 둔황에서 각각 하루씩 더 보냈기에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구채구에서 3박을 하면서 내일은 구채구, 모레는 황룡을 구경한 후 다음날 시안으로 갈 계획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언제라도 바꿀 수 있다.


도착하자마자 먼저 날씨부터 확인해 보았다. 이런! 오늘부터 나흘간 내리 바가 온단다. 강수확률을 보니 거의 90%이다. 낭패다. 이걸 어떻게 하나. 비를 맞으며 관광을 할 생각은 없다. 비가 온다면 관광을 포기한다. 정 안되면 관광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한 닷새 정도 눌러앉을 수밖에 없다.


구채구는 완전 예약제이다. 현장에는 아예 매표소 자체가 없다고 한다. 트립닷컴을 통해 예약을 하였다. 두 사람 입장료가 10만 원 조금 넘는다. 그동안 중국 명승지 입장료에 하도 단련이 된 터라 이젠 이 정도는 그냥 덤덤하다.

20251009_173257.jpg
20251009_173305.jpg
구채구 관광촌

(관광촌 산책)

저녁에 관광촌 안을 산책하였다. 좁은 길에 차들이 엉켜 난리도 아니다. 이곳에 들어선 업종은 딱 4개이다. 숙박업소, 식당, 슈퍼마켓, 기념품점, 그 외는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노래방이나 유흥음식점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그런 업종은 하나도 없다. 간단한 시천요리로 저녁을 먹고 내일 산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샀다. 관광촌 한 구석에 과일 노점상이 몇몇 있었는데, 과일이 싱싱하고 아주 좋다. 관광지라 좀 비싸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현저히 싸다. 유흥업소가 없어서인지 저녁시간이 끝나면 조용하다.


내일 시간 여유를 갖고 관광하려면 일찍 입장해야 한다. 시계를 6시에 맞춰두고 잔다. 연 3일째 새벽에 일어나는 셈이다.

관광촌 옆을 흐르는 계곡

중국단상(29): 변화된 중국 도시


필자가 이번 중국여행 이전에 마지막으로 중국에 간 것은 7년 전인 2018년이었다. 5박 6일의 일정으로 상해에 갔었는데, 상해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아시다시피 상해는 중국의 경제 중심지로서 가장 발달된 도시이다. 동방명주를 상징으로 하는 푸동지구의 첨단적 신도시, 휘황찬란한 와이탄 거리는 물론 구도심도 화려한 고층빌딩이 즐비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고층빌딩군이 그 나라의 발전상태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의 주요 도시를 방문하면 이러한 빌딩군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 빌딩의 뒤를 돌아가보면 지저분하고 낡은 골목 등 도시의 진짜 얼굴이 나타난다.


상해도 마찬가지였다. 휘황찬란한 빌딩 뒤를 돌아가면 낡고 지저분한 거리가 그대로 잔존해 있었다 마치 화장을 한 깨끗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목에는 꼬질꼬질한 때가 끼어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번 중국여행에서도 방문한 도시들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런데 이전과 달랐다. 대로변의 화려한 고층빌딩은 물론 그 뒷골목도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예전의 지저분하고 낡은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중국 도시들이 정말 현대적인 도시로 변했다는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