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역사 (8) 쟁기(爭棋), 바둑계의 권력투쟁

(2016.05.12) 어성기(御城碁)와 토혈지국(吐血之局)

by 이재형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일본의 4대 바둑가문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자. 4대 바둑가문에 입문한 제자들은 오로지 바둑만을 두며 생활을 영위하였다. 사실상의 전문기사가 탄생한 것이다. 바둑이 집안 구성원들의 유일한 직업이었으므로, 개개의 제자들이 성공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바둑을 잘 두는 것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전국에서 모인 바둑영재들이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직업으로서 바둑을 배우고, 동문들과의 경쟁 속에서 직업으로서 바둑을 두게 된 것이다. 입신출세를 위해서는 가문의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다른 가문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야 하였다.

가문의 당주의 최대의 목표는 바둑실력으로 다른 가문을 압도하여 바둑계의 최고 관직인 기소(碁所, 고도코로)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기소가 되면 명예는 물론 바둑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고 많은 부(富)도 얻을 수 있으므로 이를 위한 경쟁은 치열하였다. 기소가 되기 위해서는 실력을 향상시켜 명인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집안 전체의 바둑실력을 높여야 하였다. 바둑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각 가문은 집단적 연구 등 끊임없이 실력 향상에 정진하였다. 바둑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수들의 바둑을 철저히 연구하여야 하였는데, 그러기 위해서 자연히 기보(棋譜)가 체계적으로 보관, 정리, 관리되었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과거의 기보가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는데, 일본에서는 많은 기보들이 남아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기소(碁所)가 되기 위해서는 바둑실력도 출중하여야 하지만, 인격적으로도 훌륭하다고 다른 가문으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였다. 기소가 되면 권력과 부를 동시에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각 가문의 당주들은 기를 쓰고 기소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권력과 명예와 부가 걸려있는 경쟁에서는 당연히 온갖 술수가 동원되는 것이 인간사 필연의 모습.... 명인 기소(名人碁所)를 둘러싼 경쟁에서도 바둑실력 외에 온갖 술수, 암투, 모략, 음모가 성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바둑 시합밖에 없었다.

우리가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서양 영화나 서부영화를 보면 분쟁을 결투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걸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서로 감정이 상해 양자 간 분쟁이 발생하였는데, 이걸 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총이나 칼이라는 무력으로 해결하는가라는 의문이다. 불합리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이유가 있다. 이 분쟁을 말로 해결하려고 하면 각자는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을 한다. 각자의 주장이 서로 대립되기 때문에 누가 옳고 그르고를 판단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때 결투를 하게 되면 누가 옳든 간에 그 승패가 분명히 결판나게 된다. 즉 복잡한 분쟁을 쾌도난마식으로 단순히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결투가 이용되는 것이었다.

41.jpg
42.jpg
44.jpg
동서양의 결투 장면들

이 시대 일본 바둑계도 마찬가지였다. 분쟁의 해결은 바둑 대국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러한 분쟁해결을 위한 바둑 대국을 쟁기(爭碁, ‘소고’ 또는 ‘아라소이 고’라고 한다)라 하였다. 특히 명인 기소를 둘러싼 분쟁 등 큰 분쟁의 해결은 최고 권력자인 쇼군(將軍)의 면전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를 어성기(御城碁, 오지로고)라 하였다.


바둑을 전업으로 하는 4대 가문이 출범함으로써 많은 천재기사들이 등장하였다. 4세 본인방 도책(本因坊道策, 혼인보 도사쿠)은 당시의 최고 실력자들과 싸워 상대를 모두 정선 이하의 치수로 조정하였다. 즉, 공식적으로 모든 기사들을 자기의 하수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도사쿠는 하도 바둑이 강하여 당할 사람이 없었기에 세상에서는 그를 실력 13단이라고 까지 하였다. 또 옆길로 잠시 빠지지만, 우리나라 이세돌 9단이 특히 싸움에서 너무 강하여 중국에서는 그를 전투 14단이라고도 한다. 또 이세돌의 바둑이 격렬하고, 변칙적이고 상식의 허(虛)를 찌르는 수를 많이 두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에서는 마왕(魔王)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본인방가에서는 일본 바둑 사상 최고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본인방 도적(本因坊道的, 혼인보 도테키), 본인방 수책(本因坊秀策, 혼인보 슈사쿠) 등 불세출의 기사들이 배출되었다. 본인방家 외에도 야스이(安井)家의 야스이 센치(安井仙知), 이노우에家의 赤星因徹(세키세이 인테쯔) 등 뛰어난 기사들이 배출되었다.

45.jpg
46.jpg
토혈지국 기보와 인테츠
50.jpg
48.jpg
47.jpg
어성기

명인 기소를 둘러싼 4대 가문의 알력과 암투, 그리고 쟁기의 처절함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이른바 토혈지국(吐血之局) 사건이다. 12세 본인방 장화(本因坊丈和, 혼인보 죠와)는 실력은 당대 최고였지만 명인 기소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갖은 책략을 동원하였기 때문에 바둑계에서 신임을 잃었고, 세간의 악평이 적지 않았다. 죠와의 책략에 당했다고 생각한 이노우에(井上)家에서는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하다가 마침내 죠와(丈和)와의 어성기를 성사시켰다.

이때 이노우에 家에서 대표선수로 투입한 인물이 바로 赤星因徹(세키세이 인테쯔).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그는 실력으로서는 당대 최고라 할 만하였다. 인테쯔는 불리한 시합 조건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죽을 각오로 죠와와 대결하였다. 바둑은 며칠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인테쯔는 결국 패하고 말았다. 인테츠는 그 분함과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피를 토하고 죽었다. 속설로는 바둑이 끝난 후 바둑판 위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것은 아니고 귀가 후 밤중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어성기(御城碁)는 쇼군(將軍)이 보는 앞에서 두어졌는데, 매년 1회 쇼군(將軍)이 거주하는 에도성(江戸城, 지금의 황궁)에서 이루어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분쟁의 결착을 위한 쟁기(爭碁)도 어성기로 두어졌으므로 그동안 총 약 550국 정도의 어성기가 두어졌다고 한다.

(계속)


keyword
이전 07화바둑의 역사 (7) 이에모토(家元)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