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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코 Nov 22. 2020

[오늘의 밀도] 3. 오피스 샌드위치

엄마, 회사 거의 다 왔어 끊을게


사람들은 적당히 아는 사이에는 그 집 장롱 안 이불 개수까지 알고 싶어 하지만, 그 보다 한 걸음만 떨어지면 내가 길을 걷다 코가 부러져도 그저 찰나의 놀람에 불과한 관계가 된다. 출근길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를 서둘러 마무리하며 저 멀리 회사 입구의 회전문을, 내 주위의 얼굴들을 확인한다. 한 발만 가까워져도 20년을 써온 우리 집 솜이불 냄새를 맡으려 드는 사람들과 오늘 밤 강변북로에서 3중 추돌사고의 피해자가 되어도 괘념치 않을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나는 가족의 존재마저 비밀스러운 특수요원의 마음으로 회전문에 몸을 밀어 넣는다.


사람에겐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페르소나가 있다고 믿고 있다. 그 수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모든 얼굴이 주인에게 공평한 사랑을 받지 않는다. 20층이 넘어가는 아파트도 드문 작은 지방의 도시, 아니 마을- 의 최씨네 둘째 딸의 페르소나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존재다. 푸석한 곱슬머리, 어눌한 사투리, 어딘가 내 몸에 맞지 않는 물려 입은 스웨터들, 버젓한 미술관 하나 없이 옆집 싸움구경이 낙이던 마을 사람들과 그 틈바구니에 서있던 나.

한강철교를 건너 한강의 북쪽 어귀에 내 삶의 터전을 이루었던 날, 가장 서둘러 내 방 옷장에 찔러 넣어둔 얼굴이었다. 내가 그 마을을 어떻게 벗어났는데, 네가 감히 여기까지 날 따라왔느냐 매섭게 꾸짖으며.


사원증을 목에 걸고 회사 로비의 천장을 올려다본다. 더 높이 가야 한다. 더 넓은 집으로 가서 더 큰 옷장을 구해야 한다. 2자짜리 장롱에 쑤셔둔 나의 얼굴들은 매일 열고 닫는 중에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좁아서 그렇다. 너무 금방 닿는 곳에 있어서 그렇다. 아주 넓은 내 삶의 영역을 확보하여 문을 닫고 또 닫아 잘 숨겨둘 것이다.

 



회사 건물의 1층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오늘은 점심식사를 챙길 시간이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이런 날에 조문객처럼 내 책상 주위를 훑고 지나가지만 내겐 그들과 다른 의미가 있다. 나는 말끔한 오피스룩을 입고 샌드위치를 고르는 시간을 사랑한다. 이건 도시의 음식이다. 집안의 남자를 하늘처럼 모시던 우리 엄마는 두 손에 음식을 쥐고 먹는 것이 얼마나 야만적인 행위냐, 흉을 보았지.



아니 나의 야만은 하는 일이 없는 날에도 오 첩 반상을 받아야 했던 아빠, 밥을 고봉으로 수북하게 먹고도 매 끼니 밥시간만 되면 배가 고프다며 화를 내던 아빠다. 그 끼니를 해다 받친 것이 엄마라서, 야만은 그 둘 공동의 죄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 삶에 필요한 것이 모두 끼워져 있다. 서울이란 도시는 훌륭하다. 샌드위치 한 개로 한 끼를 취하는 게 어느면이 야만이고 모자람인가. 나의 샌드위치는 노동의 고결함이다. 정장을 입고 벤치나 휴게실에 삼삼오오 모여 샌드위치를 먹고 금방 자리를 뜨는 모습 뒤엔 그릇 하나 씻을 것이 없다. 버려진 빵조각은 비둘기가 치워버리는 완벽한 화합에 감탄한다. 시간을 허투루 쓰는 일이 없는 것이다.


"루꼴라 햄 샌드위치 하나랑 아메리카노요"

"최과장~"


8층 사무실까지 올라가는 시간, 10분 남짓한 내 벌판 같은 자유를 침범한 자는 이름도 아니고 별명도 아닌 호칭을 아주 작은 돌멩이를 튕겨 머리를 맞추듯 가볍게 던진다. 아프거나 화가 나는 게 아니다. 그냥 거슬린다.


"안녕하세요 강팀장님"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어제 오후 회의 내용 보고서 쓰려고요. 이따 점심시간 후에 상무님 보고 드려야 하거든요"

"아아 최과장네 하고 있는 이번 프로젝트 본부장님이 기대가 크신가 보더라?"

"그런가요? 이제 시작단계라 저도 확신은 없지만 기획 자체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과장 이번에 고과 잘 나올 것 같아"

"그럼 좋죠. 근데 저보단 김과장님이 먼저 가셔야 하니깐..."

"에이, 김과장 요즘 평판이 별로야~ 지난번에 김과장 때문에 얼마나 애먹었다고"

"그래도 결과는 좋았잖습니까"

"최과장은 이해심이 너무 좋아 탈이라니깐"


"주문하신 아메리카노와 루꼴라 햄 샌드위치 나왔습니다"

"아 팀장님, 저거 제거예요. 받으러 갈게요"

"으응 그래그래~ 나는 여기서 마시고 갈 거니깐 최과장 먼저 올라가"

"네 알겠습니다. 이따 뵐게요"



샌드위치를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어디선가 또 작은 돌멩이 하나가 틱, 내 볼에 부딪힌다.

"최과장님 안녕하세요!"

이름도 별명도 아닌 그것이 가끔, 작은 온기를 가지고 내게 날아오는 순간들이 있다.

"태준씨 안녕하세요. 일찍 왔네요"

"네! 어제 회의했던 거 제가 정리를 좀 해뒀어요"

"태준씨가요?"

"네 과장님 이거 보고하셔야 하니깐..."

"태준씨 할 일도 많을 텐데"

"오늘 보고하셔야 하니깐 일찍 나오실 것 같아서 저도 빨리 왔어요. 안 늦어서 다행이다"

"고마워요. 혼자 해도 괜찮은데"

"과장님 혼자 하시지 말고 저한테 좀 나눠주세요. 저 일 잘해요"

"알죠 알아요 태준씨 많이 도움되고 있어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그거 샌드위치예요?"

"네. 점심 먹으러 나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사 왔어요"

"보고서 제가 도와드릴 테니깐 점심은 다 같이 먹으러 가요 과장님~ 빵 먹고 무슨 힘을 낸다고"

"하하 그럴까요"

 

엘리베이터가 8층에 도착하고, 핸드폰에 진동이 울린다


[샌드위치 같은 빵 쪼가리 말고 밥 챙겨 먹어 딸]


내 옷장의 문이 열리는 실수는 한순간이다. 샌드위치는 손바닥의 온기 만으로도 치즈가 녹아내리고 채소가 시들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샌드위치는 냄새를 풍긴다. 차가운 것은 주변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아서 꼭, 저만을 위한 거리가 필요하다. 도시는 사람이 넘치고 엘리베이터는 좁다. 목숨만큼 치열하게 얻은 사원증의 목줄이 타인의 손에 잡히지 않을 거리는 내 힘으로 지켜야 한다.

유리창 너머 서울의 풍경을 본다. 건물과 건물의 틈을 비집고 조각의 세상이 보인다. 내게 할애된 시선이 저기뿐이라면 나는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 오르락내리락하다 하루해가 져버리는 종달새의 하루 같은 도시의 삶은 조금만 헛디뎌도 추락이다.


"아... 아무래도 점심은 샌드위치로 해야겠어요"

"네? 왜요 과장님"

"회의 보고서 말고도 할 일이 좀 있네요 "

"아 그렇구나... "

"먼저 들어가세요. 저 잠시 연락할 곳이 있어서"

"네 과장님"


멀어진다. 내 돋아나는 곱슬머리를 볼 수 없는 거리로.

멀어진다. 혹시나 옮겨 붙었을 낡은 스웨터의 보풀을 찾을 수 없는 거리로.


[네 걱정 마세요]


밥 걱정, 그다음은 뭐가 될지 모른다.

나는 냄새나는 샌드위치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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